껴안고 살아야 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무탈하고, 매일의 일과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을 뿐인데, 불현듯 불안이 엄습한다. 그 일과들 사이에서 사소하지만 그냥 지나치기에는 뭔가 석연찮은 일들이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면, 그 아무것도 아닌 일들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그럼 나는 태곳적에 길을 잃은 아이처럼 불가항력 상태가 된다. 그리하여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어둠의 나락으로 빠져 든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를 이 나이에도 여전히 모르겠다.
결국, 이내 곧, 나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풍선이 되고 만다. 압력이 높아지고 공황이 점점 더 스며들면, 괜찮아질거야, 가 아니라, 하릴없이 불안하다, 불안하다를 되뇐다. 나는 부정적인 것들을 더 불러들인다. 그러다가 불안의 완급을 넘어, 롤러코스터를 타 듯 조급해지기까지 한다. 이제 세상은 어둠보다 더 짙은 칠흑으로 덮이고, 나는 자꾸 발아래 뭔가에 걸려서 넘어진다.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소리도 안 나온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왜 이러는가. 이미 가진 것이 너무 많은 나는 이러면 안 되는 거라고 누군가 그런다. 에라이, 그런 하나마나한 소리를 위로라고 할 거면, 꺼져라.
사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일 것이다. 가장 잘 알기 때문에 나를 극복하고자 이런 말도 안 되는 온갖 방어기제를 이용하여 나를 보호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죽고 싶다가도 살고 싶고, 살고 싶다가도 죽고 싶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다가, 번아웃이라는 우울증 뒤로 숨어버린 것이다. 이 끔찍한 비밀을 언제쯤 승화시켜서, 나는 나를 꺼내 해방시킬 것인가.
부디, 이 블랙독을 여기에 끄적거리다가, 내일은 또 사라지기를 오늘 밤 기도한다. 내 사랑스러운 딸아이가 엄마의 이런 바닥을 보지 않기를, 진심으로 신에게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