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국어 시험지

이건 교육이 아니라 방치입니다

by 이은서

일반학교 특수학급으로 자리를 옮긴 첫해,

나는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막막할 때마다 선배들의 조언을

절대적인 정답으로 믿었다.

첫 중간고사가 다가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 우리 반 아이들 시험은 어떻게 하나요?"

"원래 반 친구들이 보는 시험지 그대로 펴놓고 같이 앉아 있으면 돼요. 그게 통합교육이고 다들 그렇게 해요."


그 명료한 대답에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편안한 하루를 보내고 싶어 의심하기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시험 시작 20분 후,

5학년 담임 선생님이 우리 반 아이의 손을 잡고

특수학급 문을 두드렸다.

선생님의 손에는 빽빽한 지문이 가득한

5학년 국어 시험지가 들려 있었다.


"선생님, 아이 수준에 맞춰 직접 문제를 내서 시험을 치르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당황한 나는 "선배님들이 다들 본 반 시험지로

참여한다고 하셔서..."라며 관행이라는

비겁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선생님의

다음 말씀 앞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글자조차 읽지 못하는데 이 시험지를 펴주고 40분간 앉아 있게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교육이 아니라 방치죠. 아이가 '나도 풀 수 있다'는 성취감을 느끼게 해 줘야죠."


선생님이 떠난 복도에 우두커니 서서

크나큰 부끄러움과 마주했다.

아이에게 5학년 시험지는 읽을 수 없는

암호였을 것이다. 친구들이 사각사각

답을 적는 동안 느꼈을 아이의 소외감을

외면해 버렸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몰려왔다.


시간이 흘러 기말고사가 가까워졌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든 학년이 섞여 있었고, 같은 학년이라도

수준이 천차만별인 아이들의 시험지를

개별화 교육 계획(IEP)에 맞춰 학년별, 과목별,

수준별로 따로 만들기 시작했다.

늦은 밤까지 텅 빈 교실에서 이원목적 분류표와

씨름하며 몇 번이나 자문했다.


'내 수고가 정말 가치가 있는 걸까?'


가끔은 쓴소리 했던 5학년 선생님이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시험 당일,

아이들의 표정을 보며 깨끗이 씻겨 나갔다.


"선생님, 이거 제가 배운 거예요!"

"이거 아는데..."


얼핏 보면 유치원 학습지 같은 시험지였지만,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서툰 글씨로 답을 꾹꾹 눌러쓰며

연필 굴리는 소리를 내는 아이들.

친구들과 함께 연필을 잡고 정답을 찾는 행위 자체가

아이들을 덜 외롭게 만드는 길이었다.



초등학교에서 일제고사가 사라질 때까지

이 고단한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는 성적 처리도 안 되는 시험에

왜 진을 빼느냐며 혀를 찼다.

하지만 시험지 한 장이 아이의 자존감을

단단하게 세워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거를 수 없었다.


내 수고가 더해질수록 아이들은

학교라는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고

당당히 제 자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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