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리 가요, 나도 할 수 있어요

사랑의 적절한 거리

by 이은서

특수교사로 살아가며 마주하는 숙제 중

가장 어려운 것은 아이와 적절한 거리를 두는 법이다. 아이가 내 시야에서 멀어지면 무시당하지는 않을까,

소외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초임 시절의 나는 아이를 믿어주는 법을 모르는,

지독하게 서툰 사랑꾼이었다.


5학년 아이들의 1박 2일 수련활동.

우리 반 아이 중 세 명이나 참여하는

활동이라서 나도 동행했다.

프로그램이 시작되자 일반 학급 선생님들은

수련원 지도사들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근처의 대기공간으로 이동을 했지만 나는 남은 채

강당 뒤에 서서 아이들의 활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든 튀어 나갈 준비가 된 5분 대기조처럼 말이다.

조별로 모여 조기를 꾸미는 시간, 친구들 틈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정민이가 눈에 띄었다.

나는 자석에 이끌리듯 다가가 아이 옆에 주저앉았다. 정민이의 손에 크레파스를 쥐여주고 귓속말을 건넸다.


"여기 이름 써야지. 선생님이랑 같이해보자."


내 개입 덕분에 정민이는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고,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평화에 안도했다.


두 번째 활동은 레크리에이션 댄스 시간이었다.

수백 명의 아이가 엇박자로 스텝을 밟기 시작하자

강당은 열기로 가득 찼다. 정민이는 동작이 서툴렀다. 방향을 틀지 못해 친구와 부딪칠 뻔한 순간,

나는 다시 아이 곁으로 달려갔다.

손을 잡아 박자를 맞춰주려던 찰나,

늘 내 손을 먼저 잡던 아이가 처음으로

내 손을 밀어냈다. 그러고는 어눌하지만

명확한 문장으로 내게 말했다.


"서, 선생님... 저... 저리 가요. 나, 나 할 수 있어요."


울컥한 마음이 썰물처럼 밀려왔다.


'내가 너 소외될까 봐 온종일 동동거렸는데...'


하지만 서운함은 금세 부끄러움으로 변했다.

친구들 곁으로 달려간 아이를,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맞이해 주었다.


"야, 이쪽으로 돌아야지!"라며 옷소매를 당겨주는

친구들의 투박한 격려. 그 속에서 정민이는

내가 개입해서 만든 완벽한 동작보다 수만 배는 더

역동적이고 주체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있어야만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교육적인 배려가 아니었다. 내 역할은 아이가

위험에 처하기 전까지 묵묵히 기다려주는

인내여야 했다.


과도한 책임감을 내려놓고 강당 밖으로 걸어 나갔다.

곁에서 내 모습을 바라보던 동료 선생님이 건네준

믹스커피 한 잔을 마시며

멀리서 아이들의 활동을 바라보았다.

우리 반 아이들의 스텝은 여전히 꼬이고

엉키고 있었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당당하게

자기 자리를 사수하고 있었다.


"나도 해요."


이 말은 자신을 온전한 인격체로 믿어달라는

외침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아이들의 선택에

바로 개입하지 않고 기다리는 법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직접 부딪히며 멍들고 웃을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주는 여유. 그것이 내가 베풀어야 할

사랑의 적절한 거리임을 깨달았다.


별이 아름답게 빛났던 수련원의 밤하늘처럼,

내 아이들도 각자의 궤도에서 스스로 빛나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냉장고 문에 매달린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