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하는 곳은 학원이다. 재수학원. 입사한 지는 이제 이 년이 조금 넘었다.
면접을 볼 당시, 원장님이 그러셨다.
“김이슬 씨는 얼마나 일할 생각이죠?”
그래서 그랬다.
“최대한 오래요. 오래 일할 수 있으면 저도 좋으니까요.”
고백하자면 이 말은 절반만 진심이다. 절반은 구라인 셈.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면 들수록 상대의 직업을 묻는 일이 적어진다. 나이를 물으면 물었지, 어떤 일 하세요? 묻기는 싫은 것이다. 별 관심도 없을뿐더러 굉장한 실례처럼 느껴진달까.
그렇게 느끼는 데에는 다름 아닌 내가 직업에 관한 질문을 받는 걸 꺼리는 게 한몫하는데 이건 현재도 진행 중인 나의 진저리나는 고질병, 자격지심에서 비롯된다.
자신을 작가라고 소개하는 일은 어째서 창피할까. 어째서 무언가를 더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걸까. 방송 작가나 카피라이터라면 그러지 않을 일이 왜 그냥 작가일 땐 최선을 다해 상대를 설득하고 싶게 하나.
내게는 분명한 직업이 필요했다. 부연설명이나 잠깐의 침묵, 그러다 터지는 상대의 외마디 ‘우와...’까지. 이런 일련의 과정이 필요 없는 직업 말이다.
그래서 나는 대답한 거다. 오래 일하면 나도 좋다고. 직업란에 작가 대신 다른 걸 적을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딸의 분명한 직업은 엄마에게도 필요했다. 어쩌다 첫 책을 계약하고, 몇 달을 새벽까지 씨름하던 원고가 드디어 책이란 물성으로 온·오프라인 서점에 깔리던 그 날까지도 내 엄마, 순자씨는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 나는 그녀 몰래 계약서를 썼고, 혹여나 방문 틈새로 불빛이 새어 나갈까, 이불을 뒤집어쓴 채 글을 썼다.
그만큼 글쓰기는 엄마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이었다. 이 책 한 권으로 하루아침에 작가가 될 거라 착각하지 않았는데도 말할 수 없었다. 그녀가 어디 가서 우리 딸이 책을 냈다고 떠들까 봐서, 우리 딸이 쓴 책을 사람들이 읽고 또 좋아한다고 자랑할까 봐서. 그리고 동시에 아무에게도 자랑하지 않을까 봐, 내 비밀이 순자 씨의 비밀이 될까 봐.
얼떨결에 하나 있는 딸이 자기 몰래 책을 냈단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밤낮으로 내 이름과 책 이름을 검색했는데 책의 판매 순위가 점차 아래로, 두 자리에서 세 자리로, 그러다 결국은 순위 밖으로 밀려난 뒤에야 순자씨는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기도했다. 이 모든 게 제발 조용히 지나가게 해달라고.
내가 학원에서 일을 시작한 뒤, 외할머니와의 통화에서 순자씨는 그랬다. 네. 이슬이, 학원에서 일하게 됐어요. 응. 잘하고 있어요. 걱정 마, 엄마.
작가란 직업은 늘 내게 부업이었다. 말 그대로 세컨드 잡. 절대 본업은 못되었다. 그리고 나 역시 딱 그만큼만 글쓰기에 공을 들였다. 어디 가서 나를 작가라고 소개하지 않는 일은 늘 나와 글쓰기를 평행선에 두었고 그 말은 나란히 걷지만, 서로에게 완벽히 흡수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끈질기게 생각하기로 한다. 작가로 살지 말지 여전히 결정하지 못한 채로 대신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을 적더라도, 지독하게 열심히 쓰는 것밖엔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하는 고 박완서 작가님처럼.
그러니 이제라도 생각하기로 한다. 지루한 평행선이 아닌 분명한 교차점에 대해, 내 소중하고 창피한 밥벌이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