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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레나 Mar 04. 2023

도시인의 월든

도서관에서 늘 800번과 900번대 서가만 기웃거리며 책을 편식하다가 오랜만에 다른 사람이 추천해 준 책을 읽게 되었다. '도시인의 월든' 


어릴 때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을 사서 읽어본 적이 있었는데(지금은 아마 언니네 책장에 꽂혀 있을) 그 책이 좋았는지 어땠는지 느낌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작가가 숲 속에 오두막을 짓고 살면서 자연을 애찬 하는 그런 내용이다는 정도로 기억 속에 남아있다. (곧 다시 읽어보고 싶다.)

(바쁘다는 핑계로) 작가에 대한 정보 검색이나 어떤 내용의 책일지 생각해 보는 것조차 미루고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을 읽기를 정말 잘했다.


허를 찌르는 구절이 너무 많았고, 내가 읽어본 그 어떤 책들보다 내게 큰 깨우침을 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수도 없이 읽었던 달라이라마나 법륜 스님이 쓰신 책 등을 읽었을 때와 비교해도!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의도가 내게 너무 잘 전달되었고 나는 (앞으로 쭉 이런 상태일지 장담은 할 수 없지만)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너무 특별하거나 대단한 일을 하려고 하지 말고 나의 단점과 모순까지도 포용하며 가볍게 그러나 충실하게, 즐겁게  '나'로 살아가야겠다.


나는 평소에 내가 생각하는 것들(일을 그만두고 시골에 들어가 살고 싶다거나, 너무 열심히 일을 하고 잘하려고 경쟁하는 분위기가 불편하다는 생각 등)을 입 밖으로 잘 꺼내지 않는다. 말을 시작했다가도 상대방이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는 둥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치면 '내 생각이 틀렸나?', '내가 너무 이상만 높고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걸까?' 하며 내 생각을 반성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 생각을 사회 분위기나 주변 사람들의 의견에 맞게 반성하고 고치려고만 했지 내가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고 살아가지 못한 것 같다.

왜 내 생각이 맞는지, 틀렸는지를 그렇게 판단하려 들었는지 모르겠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오롯이 나만의 생각인데 말이다.

가끔 내가 하는 생각이나 말에서 모순되는 점을 발견하면 나는 깜짝 놀라면서 얼굴이 달아오르곤 했었다. 너무 부끄러워서 말이다. 그런데 작가는 월든을 인용하며 '모순까지도 포용하는 삶', 나의 단점이나 모순까지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라고 말한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완벽하게 살고 싶어서 늘 아등바등하던 내게 작가가 그래도 괜찮다며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이제 누가 나의 모순에 대해 지적을 해도 얼굴 붉히며 변명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주택에서 살아보기로 큰 결심을 하고 전세 계약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나에게 우려의 말을 건네던 많은 사람들의 말이 맞고 내가 틀렸을까 봐 계약을 하고 난 뒤에 한 달 동안 밤잠을 설쳤었다. 주택에 살면서도 내가 꿈꾸던 완벽한 삶을 위해 지나치게 애쓰고 끙끙댔던 것 같다. 작가는 삶에 있어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과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을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 실패도 삶의 일부이고 실패를 하고 예전으로 돌아가더라도 그전과는 다를 것이라고 말이다.  


집안일에 대해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잘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래서 여러 번을 읽어 보았는데 작가가 말하는 '집안일의 중요성'과 '하찮음'과 '꾸준함', '놀이처럼 하는 일'이 이해가 될 것도 같다. 예를 들어, 새 학기가 시작된 오늘, 나의 마음은 너무 분주했다. 새 학기가 시작된 날이라고 해서 내가 무언가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바쁘게 할 일이 많고 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하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작가의 말이 뼈를 때린다.) 나는 요리를 미루고 아이와 함께 하는 일들을 미루고 있었다. 내 욕망이 향하는 사회적 성공을 위한 일이나 중요한 일들을 할 때에도 그 결과에 완벽하게 무심하면서도 집중할 수 있는 태도를 매일 실천할 수 있도록 연마하는 수단으로 집안일을 택했다는 작가의 말이 너무 와닿았다. 나는 집안일이 작가만의 명상법과도 같은 것이라고 이해했다. 매일 꾸준히 무심하고도 집중하여 집안일을 할 수 있다면 새 학기 시작과 더불어 잘하고 싶어 초조함에 들뜨는 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더 즐겁고 담담하게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크게 보면 수많은 마음과 명상 관련 서적에서 전달하는 메시지들과 다르지 않기도 하다. 그런데 작가가 하는 말들은 더욱 설득력이 있다.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나처럼 살라고 말하지 않으면서 시도하고 실패하며 깨달은 것들을 담담하게 풀어서 말하는 것이 너무 와닿았다. 사실, 주변에 집값과 애들 사교육, 뒤처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나는 크게 관심이 없지만 그런 이야기들에 둘러싸여 있다 보면 마음이 동하고 불안해진다.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었는데 박혜윤 작가의 글을 읽고 너무 좋았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존중해 주는 모습도 배울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다른 책인 <숲 속의 자본주의자>를 같이 읽어 보았는데 그 책을 읽으니 <도시인의 월든>에서의 작가의 생각이 더 이해되는 느낌이었다. 책장에 꽂아두고두고두고 읽으며 곱씹을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내가 작가처럼 아이를 키우고 시골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지만 삶에 대한 태도는 같을 수 있으니깐 늘 관심을 가지고 읽어봐야겠다. 월든도 다시 읽어보기!





그러니까 내가 글을 통해 늘 하려는 이야기는 '나'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 주어진 나의 정신상 태나 주변 환경을 바꾸려고 애쓰지 않는 것이다. 때때로 아쉽게 삐걱거리는 집이나 좀처럼 바뀌지 않는 내 단점을 그대로 안고서 살아보는 것이다. 그것도 꾸역꾸역 견디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285p)



그 어디로도 떠나지 않고 해 볼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지금의 나를 더 잘 알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소로에게서 무언가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아마 그것 하나일 것이다. 부족한 나를 평가하지도, 내가 되어야 하는 모습에 집착하지도 말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켜본다. 내가 외부의 조건들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세세히 관찰한다. 그런 과정을 거친 후에 찾아오는 변화는 보다 자연스럽고 쉽다. 어떤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나를 안 뒤에 내린 선택들은 나를 내 삶의 저자로 만들어 준다. (8p)


시시한 나만의 일상에서부터 정신을 차리지 않는다면 다른 무슨 더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까? (41p)


일단 믿음을 가지고 산다. 살다 보면 기존 믿음에 반대되는 사실을 발견하거나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면 기존의 믿음에서 물러나 이런 경험에 비춰 다시 나의 일상과 선호를 평가해 보는 것이다. 평가를 하는 것만으로도 좋다. 다시 원래의 믿음으로 돌아가더라도 절대로 똑같진 않을 테니까. (47p)


소로는 우리가 소중한 것이라며 다 함께 받들고 이루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는 선행이나 공동체, 혹은 부유함 같은 것들 때문에 우주가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세상을 지탱하는 것은 다 다르게 살아가는 견고함이다. 내가 온 마음을 다해서 나만의 사람을 살아가려는 그런 견고함 말이다. (67p)


자신만의 삶을 찾고 싶은 사람은 남들이 이기적이고 무책임하다 불러도 그 시선을 견뎌내면서 나아가면 된다.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반박하는 대신, 소로처럼 하는 것이다. 가볍게 넘기고 무겁게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한다. (68p)


정해둔 꿈이나 성공이 없는 것은 때로 다른 기회를 열어준다. (77p)


사회에서 가장 신성한 법칙보다 더 높은 '나 자신의 존재 법칙'이란 바로 이렇게 매 순간 새로운 길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비난과 웃음 앞에서도 자신만이 살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지, 그런 평가들 앞에서 항변하고 반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소로는 말한다. (84p)


이 거대한 세계 앞에서 자기 결정권을 가진 현대의 인간이 어떤 세계관과 인간관을 가지느냐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야말로 선택의 문제다. (92p)


내가 남들의 비난에 조금이나마 덜 상처를 받게 된 배경이 있다. 남의 비난을 무시하거나 반박하지 않고 그냥 '나'이면 된다는 것을 나는 오랜 시간에 걸쳐 깨달았다. (99p)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지킬 수가 없어요. (108p)


인생에서 슬럼프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활기차게 생산적으로 살아가는 것만이 삶이 아니니까. 무대공포증도 명성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실패나 절망도, 어차피 한 번인 삶의 일부다. (109p)


타인과의 괴로운 관계에 대처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내 안의 구경꾼인 또 다른 나를 길러야 한다.

나쁜 일도 좋은 일도 눈앞에 벌어지는 연극처럼 바라보는 것. (117p)


내 인생의 목적이 지금 이곳에 없는 무언가를 얻거나 도달하는 것이 아닌, 매 순간 달성할 수 있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 집안일을 완벽한 수준에 도달할 만큼 하기보다는 어느 순간이라도 싫어지거나 힘들지 않고 영원히 즐겁게 할 수 있는 상태로 살아간다는 게 내게는 더 엄청난 야망이다. (199p)


하고 싶은 것이나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어도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같이 궁리한다. (202p)


남의 일을 방해하지 않는 정도에서 일차적으로 만족하고, 그 후에는 최선이나 최고보다는 내 단점도 함께 수용하면서 적당히 일을 하려고 한다. 어쩐지 이제는 무슨 일도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똑 부러지게 일 잘하는 사람이 되려고 하지만 않으면 말이다. (23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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