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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라 Feb 15. 2021

글쓰기와 달리기의 공통점 5가지

달리며 생각해본 글쓰는 행위

난생처음 ‘달리기’를 하고 있다.

벌써 두 달이 훨씬 넘었다. 주 3회 매일 시간을 늘려가며 훈련을 이어가는 중이다. 초보 러너를 위한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하여 8주간 프로그램을 따라가는 중이다. 최종 목표는 30분 쉬지 않고 달리기.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평일에 운동을 하는 건 힘든 일이다. 그래서 빼먹지 않으려고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바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선다.

겨울은 달리기에 좋은 계절은 아니다. 때로는 한파로 때로는 눈이 와서 못하기도 하고 미세먼지가 많아도 달리기 쉽지 않다.

어쨌든 그래도 꾸준히 달리려고 노력 중이다. 안 따라주는 몸을 이끌고 오늘도 달렸다.


오늘 달리기는 벌써 7주 차 훈련이다. 10분을 달리고 3분 걷다가 다시 12분을 뛰었다. 숨이 넘어갈 것 같아 중간에 잠깐 멈춰 남은 시간을 봤다. 아직도 2분이 남았다.

환장하겠네.

이내 될 대로 돼라 식으로 천천히 발을 내디뎌 본다.

느리게라도 일단 달리자.


그렇게 가뿐 숨을 내쉬며 달리는 동안 문득 ‘달리기’라는 게 마치 ‘글쓰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꼴딱 꼴딱 숨이 넘어가던 기나긴 12분 동안 내가 생각해본 둘 간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았다.



1. 시작하기 전, ‘무지하게’ 하기 싫다


그냥 싫은 게 아니다. 무지하게 싫다.


달리기든 글쓰기든 시작을 하기까지가 가장 힘들다.


운동복을 입고 집을 나서기까지 생각이 참 많아진다. ‘오늘은 날씨가 안 좋은 거 같은데’, ‘오늘은 어제 무리해서 쉬어야 할 것 같은데’, ‘시간이 애매해서 꼭 오늘 안 뛰어도 될 것 같은데’ 등등. 오만가지의 ‘오늘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유’가 잔잔한 수면 위로 하나 둘 떠오른다.


수면 위로 떠오른 부표들을 모두 무시하고 일단 나가면 그때부터는 어쨌든 뛰게 된다. 방금까지 떠올렸던 고민들은 이내 잡생각이 되고 사라지고 만다.

일단 뛰는 것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가장 힘든 것 첫 문장이다.


그날 쓰고 싶은 내용도 쓰고 싶은 말도 없어 하루쯤 거르고 싶다. 오늘 쓰지 않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어 보인다. 내 글의 첫 독자인 내가 쉬어가고 싶으니 굳이 글을 생산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흰색 빈 화면에 깜박이는 커서를 보고 있자니 숨만 막힐 따름이다.


첫 문장이다. 일단 첫 문장을 쓰는 게 중요하다. 그럼 두 번째 문장도 써진다. 물론 말이야 방귀야 싶은 문장이지만 말이다. 그럴 땐 지우고 다시 첫 문장을 쓰고 두 번째 문장을 쓰면 된다. 그러다 보면 글을 쓰는 일이 그렇게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깨끗한 문장이 나오지 않아도 부끄러워하지 않다 보면 이내 ‘처음 쓴 것’보다는 나은 글이 되어있다.

일단 쓰는 것이다.



2. 한계점에 다다르면 두 개의 자아가 나에게 말을 건다


“이걸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달리고 있거나 글을 쓰고 있을 때 혹시 이런 말이 들린다면 드디어 서로 상충하는 자아가 등장한 것이다.


글을 쓰다가 갑자기 현타가 오는 경험, 해보지 않았나. 매일 글을 쓰다가 문득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회의가 드는 경험.

굳이 힘들게 글을 쓰며 살지 않아도 행복하게 잘 살 것 같은데 왜 힘들게 고생을 사서 하냐는 생각 말이다.

늘 했던 것 같다.


이번에 12분을 내내 달리는 동안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이런 질문이 수도 없이 스쳤다.

‘평생 달려본 적 없으면 그냥 그렇게 살 것이지 이 추운 날 뭐하는 짓이람.’

내 안의 자아가 계속 말을 걸어온다.


오늘은 설 연휴를 지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무척 바쁜 날이었다. 원래는 새벽에 글을 써야 했지만 연휴 동안 깨진 리듬이 그렇게 허락하지 않았다. 오전 오후 내내 바쁘다가 저녁에도 바쁘고 도통 글을 쓸 시간이 나지 않았다.

‘살면서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내가 직업 작가도 아니고 생업이 있는 사람이 어떻게 개인 사정도 봐주지 않고 매일 글을 써.’

내 안의 ‘자아노무시키’가 살아났다.

이노무시키.


원래 가지고 있는 자아보다 이렇게 한 번씩 등장하는 ‘이놈의 자아’가 문제다. 가끔 나타나지만 내가 가진 ‘원래의 자아’ 보다 더 세고 더 질기다.

하지만 두 개의 자아가 싸우고 있다면 일단 축하할 일이다.

이는 내가 드디어 어느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말이니까.


달리기를 하다 너무 힘이 들어서 욕이 나오는 지경에 이르자 자신이 없어졌다. 다음 훈련은 이보다 강도가 더 세지기 때문이다. 지금도 힘든 데 더 달릴 생각을 하니 겁부터 났다. 겁이 나든 말든 시간은 흐르고 다음 훈련이 다가왔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뛰었다. 매번의 훈련을 마치면 도장을 찍어주는 데 그 도장을 다 모으는 게 내 목표이기 때문이다.

도장 말고는 별생각 없이 정해진 코스대로 한발 한발 가다 보니 어느새 이만큼 와있었다.

3분 뛰고 욕이 나오던 내가 12분을 뛰고 있다.

한계점은 다시 말해 더 큰 성장을 앞에 두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두 자아의 싸움에서 ‘이놈의 자아’를 이기기 위해 나는 내 ‘원래의 자아’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모든 행동은 어떤 영광을 보려고 하는 게 아니잖아. 달려야 하니까 달리고, 써야 하니까 쓰는 거야.”


행동에 명분은 없는 법이다.



3. 어느새 무념무상을 경험한다


달리다 보면 너무 힘이 들어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을 때가 있다.

아직도 제한 시간이 끝나지 않았는지 따위의 잡생각이 들지 않는다.

일단 발을 내딛으면 알아서 다음 발이 내디뎌지고 아무 생각 없이 달린다.

그러다 보면 끝이 나있다.

나중에 진짜 내가 30분을 쉬지 않고 달리게 되면 이런 경지는 자주 올 것 같다.

그때가 빨리 오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글쓰기를 할 때도 가끔, 아주 가끔은 무념무상을 경험한다.

다음 문장을 뭘 써야 할지, 다음 문단을 어떻게 쓰며, 전체적인 개요는 어떻게 잡을지..

너무 생각이 많아 한 글자도 쓰기 힘든 경험을 하기도 하지만 아주 가끔은 무념무상으로 글이 술술 써질 때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키보드에 생각나는 대로 쓰고 있는 때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쓴 글은 쓰고 나면 개운하다. 그 글은 상대적으로 덜 부끄럽다. 내 안의 감정을 모두 쏟아부은 느낌이다.

하지만 그런 경험은 자주 오지 않는다.


달리기는 몸이 반응한다. 이에 비해 글쓰기는 정신이 개입한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무념무상의 상태는 달리기에서 더 자주 더 쉽게 오는 것 같다.

일정한 시간과 일정한 패턴이 반복될 때 무념무상의 달리기를 경험하는 횟수가 늘어간다.

글쓰기 역시 내가 좀 더 훈련을 해서 일정한 시간과 패턴을 몸에 익힌다면 무념무상의 글쓰기를 더 자주 느끼지 않을지 살짝 기대를 해볼 따름이다.


달리기와 글쓰기는 나에게 점점 하나의 의식(儀式)이 되어가는 듯하다.

이런 느낌이 싫지는 않다.



4. 끝낸 후 끝 모를 성취감이 몰려온다


말해 무엇하랴.

이 부분은 다들 짐작할 것이니 넘어간다.



마지막으로, 새로 시작할 때 위의 과정을 그대로 다시 겪는다


웃긴 것은 달리기와 글쓰기 모두 이런 과정을 다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무념무상의 경지에 끝을 모를 성취감까지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달리기를 그리고 글쓰기를 시작하려고 하면...


‘무지하게’ 하기 싫다.


관성에 따라 혹은 습관에 따라 하기는 하지만 아주 가끔씩 어쩌면 제법 자주, 또다시 시작하기 전 ‘무지하게’ 하기 싫다.


내 안에 깊숙한 반골 기질을 다시금 느끼며 살살 나를 달래볼 수밖에.

다시 튀어나온 ‘자아노무시키’를 다시 멋들어지게 한판으로 뒤집을 수밖에.


그렇게 난 오늘도 무지하게 하기 싫은 달리기와 글쓰기를 무사히 마쳤다.

위의 과정을 한 바퀴 돌아 이제는 끝 모를 성취감을 느끼며 달콤한 잠이나 자러 가야겠다.


내일도 달린다.

내일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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