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세라 Jan 17. 2020

유럽에서 만난 평범한 일상, 특별한 인연

여행지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기억은 지금도 나에게 그 순간을 선물한다

"왜 자꾸 우리를 쳐다보지?"


스페인 세비야, 숙소 근처 한 카페.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들어왔지만 스페인어로만 되어있는 메뉴판에 당황했다. 눈치껏 주문을 했는데 엉뚱한 게 나온 거 같아 다시 한번 당황했다. 당황의 연속에 우왕좌왕하고 있자니 옆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스페인 아저씨가 거슬린다. 우리가 카페에 들어온 순간부터 내내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나는 조금 짜증이 나서는 왜 그러지 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 아저씨와 눈을 마주친 순간,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마치 우리가 바라봐주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바로 먹던 빵을 들어 앞에 놓인 소스를 발라 입을 크게 벌리고 먹더니 이렇게 먹는 거야 하고 알려준다. 아니, 아저씨 저희는 지금 그게 아니고요, 우리가 주문한  이게 아니거든요. 우리도 손짓, 발짓해가며 표현을 했지만 아저씨는 우리가 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더 열심히 알려준다. 계속 입을 과하게 벌리며 앙하고는 먹어 보이고는 우리에게 권하는 아저씨. 우리가 먹을 때까지 계속 알려줄 기세다. 맙소사! 게다가 너무나도 순박하게 웃고 있다. 맙소사!

그냥 먹자. 우리는 얼른 빵을 대충 한입 베어 물고는 아저씨와 눈을 마주치고 웃어줄 수밖에 없었다. 아주 맛있다는 제스처도 몸으로 크게 크게 표현하면서. 굿굿!



나중에서야 그때 먹은 음식이 '빤 꼰 또마떼'라는 스페인의 대표 음식이라는 걸 알았다



우리는 아직도 그때 우리가 뭘 주문했는지, 왜 다른 음식이 나왔는지 잘 모른다. 아마도 그 카페에서는 아침 메뉴는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았을까 짐작만 할 뿐이다. 어쨌든 그때 먹었던 메뉴는 우리가 주문한 것보다 가격이 더 저렴했고, 맛도 무척 좋았던 기억도 난다.

그 대신 한 가지 알 수 있었던 사실은 스페인 남부 사람들이 참 순박하고 친절하다는 것이다. 흔히 스페인 사람들에 대해 우리와 성향이 비슷해서 그들에게 '한국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는 말들을 많이 들었는데 스페인 남부를 여행하며 그 후기가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가 되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경험이다. 내가 이 세비야 에피소드를 이야기했을 때 내 직장 동료 중 한 명은 동의하지 않았으니까. 그 친구는 세비야 한 음식점에서 몇십 분이 지나도록 주문을 받으러 오지 않아 무시를 당했던 경험이 있었다. 유럽에서는 흔히 손님이 와도 몇십 분이 지나야 주문을 받고는 한다. 혹시 그래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지만 그 친구는 그때 종업원들이 자기보다 늦게 온 사람들 주문은 받았다는 말을 하는 걸 보니, 뭐가 진실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그 친구 기억에 스페인은 불친절하고 불쾌한 나라였다. 나는 운이 좀 좋은 편이었나 보다. 그런데 운이 너무 좋았나 보다. 내가 만났던 친절했던 스페인은 세비야 아침의 그 아저씨만이 아니었다.



사람으로서 서로에 대한 예의와 존중은 
언어가 달라 말이 통하지 않아도 모두 전해진다.

이번에는 말라가다. 바르셀로나에서 비행기로 이동했다. 그날 아침 허겁지겁 공항에 늦을까 급하게 가느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우리는 말라가에 도착하자마자 신시가지 입구에 있는 아무 식당에 들어갔다. 손님이 많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때 먹었던 오징어 튀김이 새삼 맛있어서 놀랐던 기억도 덩달아 난다. 우리는 배를 채우자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을 지도를 보고 고민하다가(당시 우리는 용감하게도 유심도 없이 돌아다녔다!) 식당 주인아저씨한테 물어보기로 했다. 지도를 보여주며 여기 어떻게 가야 하냐고 말이다. 주인아저씨는 당연히 주변 지리를 잘 알 줄 알고 물어본 건데... 이 아저씨, 지도를 유심히 보더니 젊은 직원을 부르기 시작한다. 둘이 한참을 뭐라 뭐라 이야기를 하더니 도통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모르셔도 괜찮은데. 다른 사람한테 물어볼게요, 이제 그만 지도 주시지. 장사도 하셔야죠...

이분들, 반드시 알아내서 나에게 알려줄 기세다. 한참의 상의가 끝나고서야 아저씨는 지도에 대고 손가락으로 이렇게 저렇게 알려주셨다. 열심히 스페인어로 말이다. 스페인어를 전혀 못하는 나는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내가 잘 알아듣도록 여러 번 이야기를 해주신다. 괜히 미안해졌다. 그리고 따뜻하게 고마웠다.


나는 한국에서 외국인이 길을 헤매고 있으면 영어에 자신이 없어 그냥 지나치고는 했는데, 스페인에서 언어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사람으로서 서로에 대한 예의와 존중은 언어가 달라 말이 통하지 않아도 모두 전해지고 있었다.



스페인어로 열심히 설명해주시던 식당 주인아저씨. 고마웠어요!



다시 세비야.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는 구글맵 없이 종이 지도를 보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세비야에 도착해 숙소를 찾아 좁은 골목길 사이로 구불구불 계속 들어갔다. 그리고 금세 이 좁은 세비야 골목길에서 길을 잃고 만다. 우리는 서로 지도를 자기가 보겠다며 길에 서서 근심에 쌓여있는데 갑자기 천사 같은 분이 나타나 우리에게 말을 건다. 웨어 아 유 고잉? 스페인에서 들은 가장 깔끔한 발음의 영어였다. 놀라서 돌아보니 한 아저씨가 자전거를 끌며 지나가는 길이었다. 우리가 호텔 이름을 말을 하니, 대뜸 자기를 따라오라는 아저씨.

우리 앞에서 자전거를 끌며 우리가 잘 따라오는지 간간히 뒤를 살피기까지 한다. 그리고는 목적지에 도착하자, 여기야 하고는 쿨하게 갈 길 가는 아저씨. 아저씨 등 뒤에 대고 우리는 여러 번 고개를 숙여 땡큐땡큐 감사인사를 해야 했다.



여행지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기억은 지금도 나에게 그 순간을 선물한다


그들을 만났던 스페인 여행은 내 허니문이었다. 우리 둘 모두 처음 가본 유럽이었다. 그 뒤로 우리는 이듬해 이탈리아를 가게 되고, 이후 2년 뒤 다시 프랑스, 또 그 이듬해였던 작년 독일까지 총 유럽 4개국을 여행한다.

어느 한 나라 좋지 않은 나라가 없었고, 다시 한번 가보고 싶지 않은 나라가 없다. 지금도 예전 사진을 보면 다시 그 기분이 생각나고 다시 그곳에 있고 싶다. 유럽은 한 번 경험하고 싶은 곳이 아니라 계속 있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그곳엔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림 같은 풍경과 믿기지 않는 신선한 공기, 압도적인 건축물과 오랜 세월을 말해주는 문화유산들, 보고 감탄하고 기분 좋은 것 천지인 유럽이지만 그것만 있었다면 우리가 또다시 여행지로 출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림 같은 풍경, 신선한 공기, 멋진 건축물과 문화유산을 배경으로 그곳엔 사람이 있었다. 그래, 바로 사람들 말이다.


내가 가본 네 나라 중 주관적인 느낌으로 덜 끌리는 나라가 이탈리아다. 나도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유럽에서도 가장 유명한 관광지가 있는, 뭐로 보나 관광의 나라, 이탈리아인데 말이다. 평소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이기도했다. 물론 지금도 이탈리아 여행 사진을 보면 감정들이 살아난다.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 비추던 저녁노을은 그곳을 천국으로 만들어버렸고, 피렌체 두오모 성당 돔에서 바라봤던 피렌체 풍경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만, 지금까지도 나에게 가장 멋진 풍경이었다.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바라본 야경은 누구와 오래도록 사랑하고 싶게 만들었고, 가장 가보고 싶었던 도시 베네치아는 그 자체가 낭만이었고 환상이었다. 맛있는 음식까지 더할 나위 없었다. 그래 그렇게 하나하나 생각해보면 좋았었다. 다만, 그저 평소에 이탈리아 여행을 떠올리면 가슴에 느껴지는 감성이 별로 없다.

아마 그 여행에서는 사람이 빠졌기 때문인 것 같다. 이탈리아는 유명한 관광지인 만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늘 '관광'에 노출이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관광객을 상대하는 사람들, 아니면 관광객들. 거리에서 가장 많은 한국말을 들었던 유럽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이탈리아의 일상과 생각을 교류할 기회가 적었다. 아마 이런 경험은 내가 여행 내공이 많이 없어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탈리아는 꼭 한 번 다시 가보고 싶다.


개인마다 여행에서 가장 감동하는 부분은 다르다. 난 그것이 사람이었나 보다. 유럽 곳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기억은 다시 그 순간 그곳의 내음을 느끼게 하고 내 감정을 기억하게 만든다. 스페인에서 만난 그 정 많던 사람들은 낯선 여행지에서 긴장하고 움츠렸던 내 어깨를 한순간에 녹였고, 새벽녘 파리의 빵집에서 만난 동네 주민들이 구슬 굴러가듯 내던 "봉!쥬~"하는 인사는 꼭 다물고 있던 내 입술에 따뜻한 미소를 번지게 했다.


그 따뜻한 기억에 계속 미뤄오던 그간의 내 여행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보려고 한다.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여행기를 과연 내가 잘 쓸 수 있을지 걱정에 앞선다. 아니 그보다 몇 년 지난 여행을 잘 기억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그 고민에 몇 달 미루고 있자니 '그때 그 사람들'이 자꾸 떠오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기억을 꺼내 든다.

내가 여행지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기억은 지금도 나에게 그 순간을 선물하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