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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라 Feb 19. 2020

독일 여행 첫날, 버거킹에 간 사연

불편해도 괜찮아, 행복을 택한 사회

독일 여행 첫날, 우리가 버거킹으로 향한 사연

독일 여행 첫날 저녁. 우리는 무엇을 먹었을까. 학센? 슈니첼? 아니면 소시지? 아니, 버거킹 와퍼세트였다.

숙소 주변 마트에서 몇 가지를 사 와 간단히 해결하려고 했던 우리는 마트로 향했던 발걸음을 주변 버거킹으로 돌려야 했다. 이미 주택가로 들어온 이상 시내에 나가기도 어려웠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내가 여행지에서 미국의 프랜차이즈를 갔던 적이 딱 한번 있었다. 신혼여행 때 '새신랑'이 도저히 입맛이 안 맞는다며 맥도널드를 가자고 애원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새신랑'이 굶어 죽을까 봐 갔지만, 이후 여행에서 'NO프랜차이즈'의 원칙은 신랑이 굶어 죽거나 말거나 어길 수 없는 나만의 원칙이었다. 신랑도 이제는 내 원칙을 지켜주기 위해 라면과 햇반을 캐리어에 켜켜이 쌓아가는 나름의 생존전략이 생겼다.

우리 신랑도 넘지 못했던 원칙이 가뿐히 깨져버린 이유는 바로 독일의 마트 운영 시간 때문이었다. 그곳은 저녁 7시가 되면 마트의 문을 닫는다.

여행지에서 버거킹 간 일이 우울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정산용 영수증 사진을 제외하고 그 어떤 사진도 남기지 않았을 줄은 이번 글을 적기 전까지 몰랐다


여행지 삼시세끼 법칙이 마주한 독일의 저녁 7시 법칙

독일의 저녁 7시 법칙은 우리에게 참 가혹했다. 우리는 나름 여행지에서 삼시세끼를 해결하는 방식이 있다.

아침식사. 숙소 주변 카페에서 간단히 커피와 빵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 저렴한 가격에 맛난 음식들도 좋지만 아침 카페 분위기에 한껏 들떠 기분 좋은 에너지로 충전하고 하루를 시작하기 좋다.

점심식사. 여행 일정 중에 주변 맛집을 검색해 두거나, 그도 여의치 않으면 그냥 눈에 보이는 곳에 들어가는 편이다. 대체로 맛집 검색에 부지런하지 못하다.

저녁식사. 하루 여행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가면서 마트에 들러 몇 가지 재료를 사 와 차려먹는다.

호텔이 아닌 현지인들의 집을 숙소로 이용하면서 그 지역 마트에서 식자재를 사 와 간단히 요리를 해 먹는 데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생소한 재료들을 구경하면서 장을 보는 일은 여행지의 또 다른 설렘이다. 그러면서 물가를 비교하게 되었는데 유럽 마트 물가가 한국에 비해 그리 높지 않다는 사실에 한번 더 놀란다. 특히 과일이 정말 저렴하다.

이 삼시세끼 법칙을 독일에서는 따르기 참 힘들었다. 조금이라도 여행지에서 지체하면 7시가 넘어버려 마트는 여지없이 닫아버리니 당황스러웠다. 그리니 자연스럽게 불만이 섞인 의문이 생겼다.

"아니, 무슨 마트가 저녁 7시면 문을 닫아, 여기 사람들은 안 불편한가?"

유럽 마트 물가는 한국에 비해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특히 과일은 정말 저렴하다.

 



언빌리버블 코리아 매직! 유럽에는 그런 거 없다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처럼 편한 나라가 없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지하철에서도 터지는 인터넷은 이미 옛말이고, 24시간 운영하는 음식점과 편의점. 한강 부지에서도 시켜먹을 수 있는 치킨과 자장면에 이제는 어떤 음식이든 집까지 배달되는 그야말로 코리아 매직이다. 게다가 이제는 전날 밤 11시까지만 주문하면 다음날 새벽 문 앞에 도착해있는 신선한 식재료를 마주하는 세상이니. 언빌리버블 코리아 매직, 대한민국 만세다.


유럽 여행을 하며 잠시 경험을 해보니 그들의 예찬이 결코 빗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럽 여행을 떠나기 전 알아두어야 할 흔한 팁 중 하나는 주문 매너다. 유럽에 가면 음식점에 들어가 마음대로 아무 테이블에 앉아서는 안되고 종업원에게 몇 명이라고 이야기를 한 후, 종업원의 안내에 따를 것. 주문하겠다고 종업원을 부르지 말고 올 때까지 기다릴 것. 다 먹었다고 계산하려고 카운터로 성큼성큼 가지 말고, 종업원을 부르지도 말며 종업원이 올 때까지 기다릴 것. 내 맘대로 쉽게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못한다. 손님이 왕이 아니라 종업원이 왕이다.

우리도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다. 이탈리아 여행 때 일이다. 식당에서 식사를 다 하고 테이블 위 빈 접시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종업원이 계산하러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일정 상 다음 여행지로 빨리 움직여야 하기도 했다. 성격이 급한 신랑은 조금 기다리는가 싶더니 이내 못 기다리겠다며 자꾸 어깨를 들썩였다. 기다리자, 불러봤자 안 온다, 오히려 기분 나빠서 더 안 올지도 몰라. 내 설득이 별 효력이 없었다. 결국 우리 남편은 종업원이 자기를 언제 봐줄까 하며 계속 그를 주시하더니 눈이 서로 마주치자마자 손을 들었다. 그러자 그 종업원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남편을 향해 똑같이 손을 들고 Hi 하고 인사를 한다. 당연히 한참 후에 왔다. 내 뭐랬나, 기다리지 좀.


7시가 되면 마트 문을 닫아버리고, 음식점에서는 종업원이 왕인 문화. 코리아 매직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영 어색하고 불편하다. 유럽 여행에서 자꾸 24시간 편의점이 생각나고, 음식점에서 마음껏 부르던 이모님이 그립다.



우리의 편리함을 위해 타인의 고된 삶을 강요하지 않는 사회

마침 어제 뉴스에서 인터넷 설치 기사의 작업 환경을 다룬 보도를 봤다. 몇 달 전 한 설치 기사분이 작업 중 목숨을 잃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몇 달이 지났지만 일하는 환경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고 있었다. 줄 하나에 의지해 높은 전봇대에서 작업을 해야 하고, 하루 열 곳이 넘는 AS 방문을 위해 30분 겨우 짬을 내어 점심을 먹는 환경. 어쨌든 우리는 당당하게 요구한다. 도대체 언제 오시나요? 빨리빨리 모든 게 이루어지는 나라. 우리의 편리함의 이면에는 누군가의 고된 하루가 있다.


점심시간, 회사 근처 식당. 사람이 너무 많다. 빨리 자리에 앉아 아주머니를 부른다. 아주머니는 한꺼번에 들이닥친 손님들 주문받으랴, 반찬 리필해주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문자가 왔다. 어제 주문한 물건이 오늘 도착할 거란다. 택배를 어디에 둘까 물어보니, 그중 가장 편한 현관 앞을 선택한다. 몇 시간 뒤 현관 앞에 택배를 두었다고 문자가 왔다. 집에 오니 밥 차리기 귀찮다. 배달 음식을 시킨다. 얼마 뒤 라이딩 아저씨가 얼른 음식을 쥐어주고는 냉큼 달려 나간다. 또 배달할 게 있나 보다. 낼 아침에 먹을 빵을 사두는 것을 깜박했다. 아직 밤 11시 전이니 새벽 배송으로 받을 수 있게 주문을 한다. 한밤 새벽, 내 빵은 안전히 올 것이다. 자정 넘어 잠이 안 온다. 맥주나 한 잔 할까 하며 집 앞 편의점을 간다. 어두운 거리 밝게 비추는 한 곳 창문으로 알바생이 보인다. 우리의 일상에 여러  마주친 타인의 고된 하루가 저만치 보인다.


우리의 삶에서 편리함을 좀 걷어낸다면 누군가의 고됨도 좀 걷어낼 수 있지 않을까. 저녁 7시 마트 앞에 걸린 저 Closed 사인은 '이제 지금부터는 나도 당신처럼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 내일을 위해 쉬는 시간이에요'라는 의미일 것이다. 음식점에서 식사를 다 마치고도 종업원이 올 때까지 여유롭게 기다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저 사람들은 자신이 왕이 아니고 저들도 종이 아니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삶의 방식에 눈길이 갔다. 자신의 편리함을 위해 타인의 고된 삶을 강요하지 않는 그 사회의 성숙도가 그저 부럽고 또 부러웠다. 서로가 조금씩 불편을 감수하고 조금씩 더 행복한 사회, 내가 살고 싶은 사회이다.



불편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상

저녁 7시, 우리는 독일의 한 숙소에서 잘 구운 소시지와 라면을 안주 삼아 맥주를 한 잔 하고 있다. 이날은 마트 문이 닫히기 전에 여행 일정을 마무리하고 장을 본 뒤 한상 차린 날이다. 고된 일정이었다. 독일 여행에서 우리는 이들의 저녁 시간에 금방 적응했다. 그날 일정이 늦어지면 아예 식사까지 하고 들어오고, 너무 피곤하면 저녁 6시쯤 일정을 마쳤다. 피곤한 날의 일정을 마치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마트 마감시간을 고려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불편하다고 투덜대더니 어느새 적응을 한 것이다.

일정을 일찍 마친 날 신랑과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가 길어진다. 여행지에서 파자마 차림으로 몇 시간이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집에 있는 것처럼 마음이 편하다. 이쯤 되자 마트의 이른 마감시간은 더 이상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행복을 연습하는 중이었다.

그저 당연한 일상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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