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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라 Jan 17. 2021

지금도 귀를 맴도는 봉쥬르

“봉주르는 상대의 인격을 인정하는 것이다”

파리 아침을 활짝 여는 소리, 봉쥬~


프랑스 파리, 아침 7시를 조금 넘은 아침.


여행의 설렘이 가득한 채로 파리 뒷골목의 차가운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다. 그 기분을 가득 내 품에 안고 골목 가득 풍기는 빵 냄새를 쫒아갔다.

크로와상 하나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빵집 구석에 자리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1유로도 하지 않는 갓 나온 크로와상을 마주하니 저절로 웃음이 난다.

그 행복을 더 크게 느끼려 입을 최대한 크게 벌려 앙하고 크로와상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낯선 이국에서 느꼈던 긴장감도 모두 풀려버린다.


그제야 내 뒤로 들리는 기분 좋게 오가는 음성.

봉쥬~

봉쥬!


이른 아침,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러 빵집에 들어서는 현지인들이 쉬지 않고 들락날락거리는 곳에서 나 혼자 여유롭게 커피를 홀짝이고 있다. 그러자니 연이어 들리는 사람들의 인사말이 가게 문에 달린 종소리와 함께 주변에 울려 퍼지는 것을 보았다. 그들 모두는 하나같이 가게 문을 들어서며 직원을 향해 인사를 한다. 아침 기운을 퍼트리듯 기분 좋게 하이톤으로 통, 하고 치며 샤르르 흐르는 소리.

봉! 쥬~



기분 좋게 들리는 프랑스 인사말, 봉쥬~


여행지에 가게 되면 그 나라 말은 몰라도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따위의 간단한 인사말은 외우고 가기 마련이다.

그동안 나도 많은 여행지에서 ‘올라’, ‘본주르노’, ‘할로’ 하면서 일주일 남짓 오지랖 넓게 여기저기 인사를 하고 돌아오곤 했다.


프랑스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봉쥬!

하지만 내가 느낀 프랑스 인사말은 조금 달랐다. 프랑스 인사말이 부러웠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봉! 하고 높은음에서 시작해서, 쥬~ 하고 자연스럽게 흐르는 그들의 억양과 발음이 내내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그냥 지나쳐 듣기에는 지나치게 음악 같이 들렸다. 그 자체로 기분이 좋아지는 마법 같은 단어였다.

상대의 눈을 보고 웃으면서 짧고 강하게 음악처럼 들리는 인사말. 나도 여행 내내 그들처럼 명랑하게 흉내를 내곤 했다. 봉! 쥬~



봉주르는 상대의 인격을 인정하는 것이다

<프랑스 아이처럼> 중



프랑스 여행 후 우연히 프랑스 육아법을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우리나라에서 방영된 것을 알았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였던 <프랑스 아이처럼> 열풍으로 우리나라에서 프랑스식 육아에 관심이 많아진 까닭이었다. 호기심이 생겨 책을 읽어 보았다.


이 책은 미국인인 저자가 프랑스 이민 생활을 하며 직접 보고 겪은 프랑스 육아에 대해 다룬 책이다. 아기가 밤새 보채지 않고 잘 자고, 식당에서도 부모 옆에 앉아 말썽 부리지 않고 식사를 하고, 어이없는 떼를 쓰지 않으며, 부모의 ‘안돼’라는 말에 좌절하지 않는 아이를 길러내는 프랑스 육아법을 이야기한다.

훗날 내가 육아를 하게 되는 날 이 책을 다시 읽으리라 생각할 정도로 프랑스 육아법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오래도록 나에게 울림을 주고 기억에 남은 부분은 바로 ‘인사 문화’에 대한 것이었다.


책 <프랑스 아이처럼>에 프랑스의 인사 문화에 대해 가늠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어른이 되면 서로에게 봉주르라고 인사하는 게 당연하다.
종종 파리에서 푸대접을 받았다는 관광객들은 십중팔구 봉주르를 건네지 않은 게 틀림없다. 택시를 타거나 식당에서 직원이 테이블로 다가왔을 때, 옷가게 직원에게 사이즈를 물어보기 전에 봉주르라고 먼저 말하는 게 필수다.

봉주르는 상대의 인격을 인정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그저 서비스 종사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개인으로 바라본다는 신호다. 다정하면서도 분명한 말투로 봉주르라고 인사한 뒤 상대방의 태도가 눈에 띄게 편안해지는 것을 보면 정말 신기할 정도다. 비록 내가 쓰는 억양이 완벽하진 않지만 서로 교양 있는 대면을 하게 될 것이라는 신호다.

(중략)

아이에게 봉주르를 시키는 것은 어른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아이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 감정과 요구를 가진 사람이 자기만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아이에게 인사 예절을 가르치는 프랑스인들의 가치관을 이야기한다. 사회적 약속,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도 인사 예절을 가르칠 필요는 있지만 프랑스는 거기서 더 나아가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고 상대도 나와 같은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파리 빵집에서 들었던 활기찬 봉! 쥬~ 그 노랫말 같던 인사는 단지 내가 프랑스를 동경해 여행지에서 느낀 환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분명 의무적으로 인사하지 않았다. 책에 쓰인 대로 ‘다정하면서도 분명한 말투’로 인사를 하는 게 나에게도 느껴졌던 것이다.


왜 유독 그들의 인사가 나에게 깊게 남았는지 설명이 되는 구절이었다.


프랑스 여행을 가기 전 콧대 높은 그들에게 무시를 당할까 위축된 게 사실이지만 실제로 프랑스에서 그런 것을 느끼지 못했다. 아마도 내가 들뜬 마음에 누구에게나 ‘봉쥬~’하고 인사를 해서 그런 게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프랑스 여행에서 마주쳤던 사람들의 눈빛과 인사가 떠올랐다. 관광객인 나에게도 내가 웃은 만큼 맑게 인사를 하던 그들의 모습 말이다.


그 후 나는 이곳, 우리나라에서도 인사를 의례적인 예의로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 이상의 의미, 상대의 인격을 인정하고 개인으로 바라본다는 의식으로 실천하기로 했다. 다만, 아직까지는 노홍철이 하듯 상대의 눈을 마주치고 미소까지 띠며 인사를 하지는 못하지만, 차차 사회가 그런 인사까지 받아준다면 나도 준비는 되어있다.


아직도 그 아침 파리의 작은 빵집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가 귀에 맴돈다.

봉! 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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