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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라 Jan 22. 2021

프랑스 니스, 이름 그대로 Nice

나에게 평생 기억될 추억을 준 고마운 여행지

니스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아름다웠다.

공항에서 숙소가 있는 시내까지 가는 버스에서 내다본 풍경은 그야말로 ‘Nice’였다. 반짝이며 춤을 추는 지중해가 숨이 막히도록 아름다웠다.


사실 니스는 내 여행 계획에는 없던 곳이었다. 프랑스 파리를 목적지로 왕복 비행기를 끊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여행 계획을 짜는 것에 관심 없던 신랑이 갑자기 성화다. 파리만 다녀오기 아쉬우니 다른 도시를 가자는 것이다. 그 신랑 때문에 온 곳이 이곳, 니스였다.


파리에 도착하고도 니스로 가는 비행기 탑승구로 향하며 뭐하러 이렇게 힘들게 도시를 끼워 넣었냐며 툴툴댔었는데 오기를 잘했나 보다. 신랑이 강조했던 말이 생각난다. “지중해는 한 번쯤 봐야지!”


니스가 좋던 말던 그래도 몸은 힘들다고 난리다.

우리는 니스에 도착하기까지 먼길을 돌고 돌아 몸이 무척이나 힘든 상태였다. 2번의 경유, 그리고 경유지, 하노이에 잠시 머물렀던 레이오버로 인천 공항을 떠난 지 거의 33시간 만에 니스에 도착했다.


그 33시간 동안 잠이라고는 좁은 비행기 안에서 잔 쪽잠이 전부였다. 나는 그래도 비행기를 타는 것 또한 즐기는 사람이라 정신력으로 잘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옆에 슬쩍 보니 자기가 니스를 가자고 한 책임감에 힘들어도 아무 말 못 하는 신랑이 죽을상이다. 그 모습에 속으로 웃음이 났지만 어깨를 두드려 줬다. “니스 좋다, 그렇지?”



버스에서 내려 구글 지도를 켜고 33시간 긴 여정의 최종 목적지, 우리 숙소를 찾는다. 우리는 그때 처음 에어비앤비를 이용해 봤다. 이유는 여행 경비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서다.


니스는 대표적인 휴양 도시답게 물가가 높은 곳이다. 숙소도 비싸다. 하지만 조금만 더 찾아보면 좋은 숙소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나와있는 곳이기도 하다. 숙소 물가를 이끌고 있는 것은 바로 해안가에 자리 잡은 오션뷰 숙소들이다. 나도 여행 준비를 하면서 지중해를 배경으로 한 숙소 후기를 봤는데 좋긴 좋더라. 그만큼 비싸지만. 나는 여행에 있어서 실용주의자인 만큼 그런 데 돈을 쓰지 않기로 한다. 대신 시내 안 쪽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하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여기를 찾게 된 것이다.


숙소에 도착해 초인종을 누르자 인기척이 느껴진다. 좀 긴장이 된다.

문이 열리고 나자 안에서 하얀 곱슬머리에 큰 이목구비를 가진 한 할머니가 나오셨다. 우리를 보고 두 팔 벌려 환하게 웃는 미소에서 편안함이 느껴진다. 생전 처음 보는 할머니이지만 마치 우리 할머니처럼 푸근한 인심이 느껴지는 인상이다. 세월을 말해주는 얼굴의 주름이 미소에 자연스럽게 스민다. 할머니의 환대를 받으니 여행에서 가장 힘들다는 숙소 찾아가는 길이 성공했다는 안도감이 든다. 내 경직되었던 얼굴 근육도 풀린다.

“봉쥬르~” 환하게 웃는다.


여행을 하다 보면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난다.

즐기러 오는 게 여행이라지만 그 과정 하나하나는 생존에 가깝다. 이동을 하고 잘 곳을 찾고 먹을 곳을 찾는 여정인 셈이다.


특히 숙소를 찾기까지의 여정은 가장 신경이 곤두서고 힘든 일이다. 이 낯선 도시에 분명 나의 쉴 곳이 있다고 손에 든 바우처는 말해주건만 그곳을 찾아가는 길은 무섭고 긴장된다. 그 감정은 여행지에서 멋진 것을 봤을 때 느끼는 감동보다 더 오래 그리고 더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아직도 나는 바르셀로나에서 스마트폰도 없이 종이 지도를 보고 숙소를 찾았던 일, 세비야의 미로 같은 좁은 골목에서 방향 감각을 잃고 숙소를 잃어버렸던 일, 로마에서 숙소를 찾는다고 우범지역으로 유명한 테르미니 역을 세 바퀴나 돈 일, 이 일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다 보니 숙소에 도착하면 모든 긴장이 풀려 버린다.


이번 니스 여행에서 숙소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제는 미리 유심을 준비해 구글 지도를 펼쳐 든다. 큰 길가를 따라 걷다가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 오른쪽으로 트니 바로 거기에 우리 숙소가 있었다. 다만 이곳이 나의 첫 에어비앤비였고 무인 체크인이 아니라 호스트가 체크인을 도와준다는 게 조금 신경 쓰이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낯선 이의 얼굴을 마주 보기는 부담스럽다. 특히 말이 안 통하는 외국인을.


하지만 그런 우려는 할머니를 마주하자 눈이 녹듯 사라졌다. 못해도 70대 정도는 되어 보이는 이탈리아 할머니이었는데, 아직도 호스팅이 몸에 익은 않은 듯 조금 버벅거리신다. 더 친근하고 더 마음이 놓이고, 오히려 그런 모습에 정말 가정집에 왔구나 싶다. 능숙하게 일이 처리되는 호텔 카운터 앞에서 버벅거리는 건 나였는데 말이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마주 보고 있는 건넛집 현관문을 열어주면서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신다. 응대를 하기 위한 영어 몇 마디를 열심히 외우신 것 같다. 나도 내가 할 줄 아는 정해진 영어 몇 마디로 땡큐, 땡큐 하며 할머니 설명을 듣는다. 할머니 집과 에어비앤비 집이 마주 하고 있어 무슨 일이 생기면 할머니가 바로 올 거라고 한다. 그럴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어쨌든 안심이 된다.


집은 작은 부엌과 다이닝룸, 그리고 침실 하나로 구성이 되어있었다. 이 정도 시설에 이 가격이라니, 잘 골랐다. 신랑도 좋아한다. 이 할머니는 소일거리로 에어비앤비를 하는지 다른 곳보다 더 싼 가격으로 운영을 하신다. 그렇담 그냥 마음 좋은 천사 할머니? 아니, 슈퍼호스트이시다. 은근 이 바닥에서 좀 하시는 분이다!


짐을 던져두고 침대에 쓰러진다. 33시간 만의 푹신함, 이대로 잠들고 싶다.

하지만 시간이 돈인 여행지에서 그럴 수는 없는 일. 샤워를 하고 숙소를 나섰다. 큰 길가로 나와 걷는데, 뭐가 좀 이상하다. 왜 이러지? 그냥 나도 모르게 저절로 웃음이 난다. 뭐에 실성한 사람처럼.

“흐흐흐흐...”


처음이다. 이렇게 웃음이 나기는.

보통 우리는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감탄사를 내뱉곤 한다. 하지만 이렇게 웃음이 저절로 난다는 건 내 감정을 내 몸이 표현하기도 전에 새어 나오고 있다는 방증이겠지.


그냥 좋다. 이 모든 것이 좋다. 따뜻한 햇볕과 공기에 실린 지중해 향기가 나를 실성한 사람처럼 웃게 만든다.


나에게 니스는 철자 그대로 Nice로 기억될 것 같다.

니스에서 처음 만난 Nice 할머니, 니스에서 처음 본 Nice 풍경, 니스에서 처음 느낀 Nice 공기.


꾸역꾸역 왔던 니스였지만 내가 살면서 꺼내보고 또 꺼내볼 Nice 한 선물을 많이 준 고마운 니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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