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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라 Jan 28. 2021

파리의 작은 브런치 카페 속 다양성

육아 전문가 아빠 그리고 게이 커플

파리 여행 5일 차, 주말 아침이었다.

그날 아침 겸 점심으로 브런치를 먹기로 했다.

파리에서 맞이하는 주말이니 모처럼 검색을 해서 유명한 브런치 가게를 하나 골랐다.

파리에 핫한 동네, 마레지구로 갔다.


아담한 가게, 친절한 직원


파리에서 맞이한 주말, 좀 특별한 아침식사를 위해 마레지구로 갔다


가게는 테이블이 서너 개 정도 있는 공간이었고 한쪽 벽에는 바 테이블이 있는 다소 좁은 공간이었다. 이 좁은 가게에 사람이 제법 많다. 확실히 검색하고 오니 사람이 북적인다. 우리는 다행히 빈자리가 있어서 한 자리를 차지했다. 직원이 다가와 메뉴를 고르는 것을 도와준다. 나와 눈높이를 맞추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주문을 받는다. 그의 명랑한 기운과 표정이 아직도 생각난다.


아침을 기분 좋게 먹어야 하루 운이 풀린다. 오늘은 운이 좋겠는걸. 파리에서의 기분 좋은 주말 아침이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 그리고 그들의 눈빛을 익히는 걸 좋아한다.

내가 살고 있는 한국과는 다른 분위기를 충분히 느끼려 주위를 둘러본다.

가게를 찬찬히 둘러봤다. 우리 말고 두세 테이블에 사람들이 더 있다.



작은 브런치 카페 속 다양성


1.

저쪽 테이블에 앉아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한네 살쯤 됐을까. 너무 예쁘다.

곱실거리는 머리에 조그만 얼굴, 통통한 볼, 큼직한 눈망울과 위로 솟은 속눈썹.

자꾸 눈이 간다.


아이는 아빠로 보이는 남자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이는 식당에서 보채지도 않고 제 자리에 앉아 자기 앞에 놓인 음식을 제 손으로 잘도 먹는다. 아이의 아빠도 아이를 간간히 보며 식사를 한다. 둘이 앉아 식사를 하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아빠의 케어가 서툴지 않아 보인다.


내가 평소 생각하는 식당 속 가족의 그림은 아이가 부모와 같이 있든지 아니면 엄마와 같이 있는 거였는데 아빠가 아이를 잘 다루고 있어서였을까. 혼자 아이를 데리고 식사를 하는 모습이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


아이 아빠의 육아 스킬이 보통이 아니라고 깨달은 건 그들이 식사를 다 하고 일어났을 때였다.


그날 비가 오다 말다 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들이 식사를 마치고 카페를 나설 때쯤 다시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는데 아이 어떻게 해. 비 다 맞겠네.’


내 걱정이 무색하게 아이 아빠는 표정에 동요 없이 그저 하던 대로 아이의 분홍색 옷을 여미어 주고, 카페 앞에 세워둔 자신의 자전거 잠금장치를 푼다.

그리고 뒷좌석에 아이를 안전벨트로 단단히 고정하고 아이에게 헬멧을 씌우고는 쿨하게 자전거를 타고 간다.

이 정도 비는 아무런 장애물이 아니라는 듯, 자전거로 뚫고 가는 아빠의 쿨한 육아가 그의 육아 역사를 대변해주는 것 같다.


그들에게 엄마의 존재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이 나라에서 이미 큰 관심사가 아닌 것 같다.


나로서는 퍽 흥미로운 그들이었다.

아빠 혼자 능숙하게 아이를 데리고 식사를 하러 나온 거며, 아이 역시 자기가 ‘아이’가 아니라 한 ‘인격체’로 인지한 듯 전혀 아빠에게 보채지도 아빠를 괴롭히지도 않는 모습, 그리고 비가 오든 말든 자기 갈길 가는 그들 부녀.


요즘 말로 ‘개멋있다.’



저 쿨함이 너무 멋있다!



2.

우리 옆쪽 바 테이블에 한 커플이 들어와 앉는다.

둘이 눈에서 달달함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니 사귄 지 얼마 안 된 커플인가 보다.

바 테이블에서 서로에게 몸을 돌리고는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그 커플.

좋을 때다.


서로 다리를 마주하고 포갠 모습이 서로를 얼마나 원하는지 보여준다.

너의 왼다리, 나의 오른다리, 너의 오른다리, 나의 왼다리.

다리 네 개가 완전히 서로 겹쳐져 틈이 없다.

나도 저렇게 신랑이랑 앉아보지 못했는데, 주변 시선은 아랑곳없다.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는 커플.

둘은 남자다.

오 마이 갓.


혹시나 내가 잘 모를 수도 있어서 확인차 신랑에게 물어봤다.

“오빠, 남자 둘이 저렇게 다리 서로 포개는 거 가능한 일이야?”

“미쳤어? 게이야.”


그들의 당당한 애정 표현이 내심 부럽다.


생각해보니 내가 게이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나 사실 게이였소.’하고 커밍아웃을 한 어떤 개인, 그러니까 게이 ‘한 사람’ 이미지다.

이렇게 둘이 꿀 떨어지는 눈으로 마주 보는 이미지가 아예 머릿속에 없었다.

주변에서 애정표현을 하는 게이 커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는 카페에서 여느 커플처럼 게이 커플도 데이트를 하는 걸 흔히 볼 수 있는 일인가 보다.

그들을 슬쩍슬쩍 보는 건 나뿐, 주변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나만 촌스럽게 뭐하는지 모르겠다. 아직 우리 사회가 촌스러운 건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신랑도 나한테 저런 눈빛으로 바라본 적 없었던 거 같은데.

촌스러운 티 안 내려고 했지만 그들의 눈빛에 자꾸 눈길이 간다.


요즘 말로 ‘개부럽다.’






여행을 하면서 좋은 점은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삶과 그 나라에 스며있는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멋있는 건축물, 유명한 그림, 맛있는 음식보다 사실 더 생각이 나는 건 그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내가 사는 곳에서 쉽게 보지 못했을 ‘육아 전문가 아빠’ 그리고 ‘꿀 떨어지는 게이 커플’.

이 둘을 주말 아침 브런치 카페에서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나라, 프랑스였다.


‘다양성을 품고 있는 사회’는 어쩌면 ‘다양성을 넘어선 모습’ 일 때 진짜 나오는 게 아닐지 생각해본다.

그 브런치 카페에서 그들의 다양성에 넋이 나가 촌스럽게 눈을 이리저리 돌리던 건 나뿐이었다.


다양성을 넘어 모든 삶이 평범해진 사회, 그 사회가 ‘개멋있고, 개부럽던’ 파리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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