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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라 Feb 05. 2021

그때 먹은 소시지가 두고두고 생각나던  이유

여행에서 중요한 ‘바로 지금’

독일 여행 첫날,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마침 2주에 한 번 열리는 벼룩시장이 있던 날이었다.

마인 강변을 따라 길게 늘어선 가판대에 물건들이 나열되어 있고 그 뒤로는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상인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물건은 너무 낡아 누가 살까 싶은 것도 있었지만, 잘 찾아보면 제법 보물로 보이는 물건도 있었다.

사람들은 열심히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는지 찾고 상인들은 열심히 그들이 원하는 게 이거라고 손짓한다.

한 번 걸쳐봐, 한 번 신어봐, 한 번 들어봐 그 한 번이 족쇄가 될까 찡긋 웃어 보이고는 도로 내려놓는다.

고층 빌딩이 차갑게 서있는 프랑크푸르트에 이곳만큼은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





벼룩시장에 푸드트럭이 보였다.

소시지를 빵에 끼워 파는 샌드위치 같은 음식이다.

마침 배도 고파서 푸드트럭으로 향했다.

하필 메뉴판이 죄다 독일어다. 독일에 왔으니 당연한 것인데 그래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다.

대충 눈치껏 주문을 하고 받아 들었다.

음식을 건네주는 주인아주머니가 푸드트럭 한쪽에 케첩과 머스터드를 가리키며 뿌려 먹으라 알려준다.





독일에 도착해 처음 먹어보는 음식.

식당에서 먹는 음식은 아니니 공식적인 첫 음식이라고 말하기는 뭐하지 않냐며 어쩌고 저쩌고 중얼중얼, 별 기대 없이 한 입 물었다.

오.마.이.갓.

겉면이 딱딱하게 바짝 마른 소시지를 입안에 넣자 육즙이 팡하고 터진다. 딱딱한 촉감은 어디 가고 세상 촉촉하다.

소시지를 감싼 투박하게 생긴 빵은 쫄깃함이 남달라 육즙과 함께 입안에서 섞이며 씹을수록 고소함이 베어 나온다.

이 빵도 이 메뉴 지분을 반 정도는 차지할 것 같다.


눈이 동그래지고 콧구멍은 크게 벌어져 입으로는 계속 감탄사를 쏟는다.

푸드트럭 앞에서 잠시 이성을 잃었다. 우리가 봐도 웃기다.

신랑은 한술 더 떠서 하나 더 먹겠단다.

나도 살짝 흔들렸지만 잠시 나가 있던 이성을 찾아 신랑을 말렸다.


“푸드 트럭에서 무슨 배를 채워. 이 정도면 됐어. 다른 더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자.”


이후 나는 독일 여행 내내 나의 이 주책맞은 ‘이성’을 두고두고 질책했다.

거기서 내 이성이 등장할 타이밍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 아무 기대 없이 먹었던 그 푸드트럭 소시지가 독일 여행지에서 먹은 어떤 음식보다도 맛있었다.

이후 도시마다 보이는 푸드트럭을 볼 때면 어김없이 기대를 하며 사 먹었지만 프랑크푸르트 벼룩시장에서 맛 본 소시지가 단연 으뜸이었다.



지금 그리고 다음


여행지에서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바로 ‘다음에’라는 것 같다.

기대 없이 찾아온 우연 앞에서 그 우연이 다음에도 찾아올 거라는 착각으로 우리는 더 중요해 보이는 다른 ‘어떤 것’을 하게 된다.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카페를 보고 ‘지금’은 갈 길이 있으니 ‘다음’에 커피를 마시자고 미루지만 더 이상 길에 카페가 나타나지 않아 난감하다.

예쁜 기념품을 보고도 ‘지금’은 짐이 되니 ‘다음’에 사자고 하지만 아까 본 그 물건은 더는 찾기 힘들다.

여행지는 정해진 일정이 있다 보니 ‘지금’과 ‘다음’ 간에 선택을 어쩌면 더 자주 하는지도 모르겠다.

당장 눈앞에 있는 것보다는 앞으로 나타날 것이 더 대단할 것이라는 착각에 종종 빠지게 된다.


인생은 여행이라고 한다.

이 긴 여행에서 늘 ‘지금’보다는 ‘다음’을 너무 쉽게 선택해왔다.

대학에 가면 뭔가 있을 것 같아 하루 종일 공부만 하던 고등학교 시절, 그나마 친구들과 야자를 땡땡이치던 기억이 없었다면 내 고등학교 시절은 통째로 날아갔을 것이다.

그렇게 간 대학에서는 또 다른 ‘그다음’, 바로 취업을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다시 미룬다.

취업을 하고 그다음은? 계속 ‘그다음’이 생기는 우리 인생사다.


예전에 윤여정 씨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1947년생 70대 여배우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어우 싫어, 나는 지금이 좋아. 그때 다시 돌아가서 치열하게 살 거 생각하면 싫어, 싫어.”

그 말에 끄덕끄덕 고갯짓을 하던 나 역시 치열했던 10대와 20대가 잠시 생각나 살짝 몸이 부르르 떨렸다.



심심한 하루가 모여 인생이 된다


가끔은 이 무난한 30대의 삶이 너무 심심하게 느껴진다.

아무 할 일 없이 흘러가는 하루가 밋밋하다.

뭐라도 해볼까 싶어 영어 회화책을 집었다가 며칠 하고는 도로 책을 던져버리는 한없이 가벼운 이 나약함이 한심하다.

그래도 영어 회화책 대신 커피잔을 들고 허공을 보며 멍하게 맛보는 커피 맛은 좋다.


‘다음’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불안하다.

아직 ‘지금’을 즐기는 법을 몰라 이리 어색하고 아직도 헤매나 보다.

‘다음’을 위해 거창하게 부산을 떨다가 이내 정신을 차린다.

지금은 그저 ‘지금’을 즐기는 법을 터득하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무난하고 밋밋하고 심심한 ‘하루’가 하나하나 모여 ‘인생’이 된다.

우리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것은 아무렇지 않게 흘러간 그 하루, 바로 지금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음’에 먹은 학센보다 ‘지금’ 먹은 푸드트럭 소시지가 더 생각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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