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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라 Feb 19. 2021

독일 마트에서 300원 벌어볼까

공병 수거, 시민에게 의무만 지우지 말고 편의를 제공하자

독일 마트에 있는 빈병 수거 기계


독일 여행 중에 마트에 갈 때면 우리는 빈 페트병을 꼭 챙겨야 했다.

마트 한편에 빈병 수거 기계가 있는데 그곳에 페트병을 넣으면 200~300원 정도를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돈 없는 여행자에게 페트병은 돈이었다.


독일 마트에 늘 있는 빈병 수거기계. 여기에 병을 넣으면 마트에서 바로 할인권으로 쓸 수 있는 표가 나온다. 0.25유로, 우리돈 300원 정도. 적지 않은 돈이다.


가져온 페트병을 넣자 기계가 병을 왔다 갔다 굴리면서 값을 매긴다. “가만있어보자. 이건 얼마를 줄까.” 고민을 하는 감정사 같다.

그리고는 화면에 “응 이건 어떤 어떤 페트병이네, 그럼 얼마!”

이렇게 값을 알려준다. 더 이상 넣을 병이 없으면 버튼을 누르면 되고 그러면 영수증처럼 생긴 작은 표가 나온다. 거기에 내가 환급받을 가격이 쓰여있다.


오래된 독일 여행 사진을 뒤져 빈병 수거 기계를 이용했던 사진을 찾았다. 받은 표에 0.25유로라고 적혀있다. 우리 돈 330원 정도. 페트병이 여러 병 모이면 결코 적지 않은 돈이다.


독일의 ‘판트’라는 제도, 꽤 신박해 보인다


독일 마트에서 페트병이나 병에 든 음료를 사면 일정 금액의 보증금이 붙는다. 나중에 빈병을 마트에 있는 수거 기계에 넣으면 구입했을 때 냈던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독일의 ‘판트’라는 빈 병 보증금 반환제도이다.


몇 번 이용해 보니 이거 참 신박한 방법이다.


일단 기계를 이용하면 되니 가게 점원이 관여를 하지 않아 마트 운영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그덕에 공병을 가지고 가서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또 기계에서 돈이 바로 나오는 게 아니라 일단 표가 나온다는 점도 눈이 갔다. 카드를 쓰는 시대에 잔돈은 받아도 처치 곤란이다. 이 표는 해당 마트에서 바로 사용이 가능하다.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계산원에게 제시하면 그만큼을 전체 금액에서 빼주고 최종 금액을 결제하는 식이다. 일종의 할인 쿠폰인 셈이다. 물론 계산원에게 현금으로 받겠다 하면 돈으로도 받을 수 있다.


자연스럽게 페트병은 더 이상 재활용을 해야 하는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절대 그냥 버릴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쉽게 말해 길거리에 버려진 페트병도 돈으로 보이게 만드는 아주 신박한 방법이다.


실제 독일에는 길거리에서 페트병을 모아 몇 푼 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다고도 들었다.



우리 집 분리수거함에 새로 생긴 ‘투명 페트병 수거함’


작년 12월부터 투명 페트병 분리 배출 제도가 생겼다. 이제는 투명한 페트병은 플라스틱으로 버리는 게 아니라 따로 모아 버려야 한다. 그렇다고 그냥 버려서는 안 된다.


버리기 전 3단계 과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일단 내용물을 모두 비우고, 라벨을 제거한 후 찌그러뜨려 뚜껑을 닫고 전용 배출함에 분리수거해주면 완벽하다.


<출처 : 환경부 홈페이지>

 

투명한 페트병은 재활용률이 높은 항목이다. 유색 플라스틱보다 재활용 과정이 간편해서 다양한 제품으로 재활용이 가능하다. 투명 페트병만 잘 분리 배출해도 고품질의 재활용 원료를 연간 10만 톤 확보할 수 있다고 한다.


환경부는 이번에 몇 가지 제도를 더 발표했다. 일단 페트병 분리 배출이 쉽도록 페트병의 라벨을 떼기 쉽게 강제하는 조항을 만들었고 유색 페트병 사용도 금지시켰다. 그 덕에 녹색 페트병을 고집했던 칠성사이다, 처음처럼 등 제조사에서 투명한 페트병으로 교체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오랜만에 속이 시원한 환경 정책이다.

이런 환경 친화적인 움직임에 모두 동참할 필요가 있다.

지금이라도 우리나라 환경부가 일을 하는 것 같아 다행이다.


다만 아직도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지한 정책이라는 점에서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 일단 환영. 하지만 디테일이 부족하다. 완벽해 보이지는 않는다.



사람은 자신에게 이익이 될 때 움직이는 법이다


투명 페트병 분리 배출이 시행된 지 두 달이 되어가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아파트 분리수거대에는 안내문이 적혀있지만 투명 페트병 수거함 안을 들여다보니 좀 안됐다는 생각까지 든다.


청주시 한 아파트 단지의 ‘투명 페트병’ 전용 수거 마대, 하나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출처 : 뉴시스>


나도 마침 지난번에 회사에서 회의를 할 때 작은 물병을 하나씩 놓았는데 회사에는 투명 페트병 분리 배출 의무가 없다. 그냥 쓰레기통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독일에 머물렀던 일주일 간 여행자의 입장에서도 페트병 분리배출 제도를 잘 따른 것에 비하면 참 대조가 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 독일 국내 환경문제에 일조하고 왔는데 말이다.


나는 독일에서는 여행객이면서도 환경 운동에 동참할 만큼 시민의식이 높았던 거고 한국에서는 회사에서 페트병을 쓰레기통에 넣을 만큼 시민의식이 낮아진 걸까.


만약 우리나라에 관광하러 온 사람들이 열흘 간 돌아다니며 생수를 사면 어떻게 버리고 갈까, 분리 배출을 할까.


이건 개인의 시민의식에서 답을 찾아서는 안 될 문제다.


내가 독일에서 자발적으로 음료를 마시고 생긴 페트병을 모아 마트에 가서 직접 분리 배출한 건 여행 경비를 몇 푼 아껴보겠다는 의지였다.

독일 내 페트병 재활용률을 신경 쓰고 독일의 환경 문제를 걱정해서가 아니었다.

물론, 기계에서 환급받을 수 있는 표가 나오고 그걸 받아 들었을 때 잠깐 도덕적 우월감에 취하기도 했으나 그래도 결국은 돈이 나를 움직이게 한 것이다.



오해는 말라, 보증금 제도가 만능이라는 말이 아니다


얼마 전 2022년 6월부터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를 실시한다는 기사를 봤다. 독일 여행 중 감탄해 마지않았던 바로 그 보증금 제도와 맥락이 같다.


나는 이 뉴스를 보고 좋아했을까.


아니, 정반대로 탁상행정으로 밖에 안 보이는 정책에 짜증이 났다. 이 제도는 모두를 지치게 하는 정책이 될 게 뻔히 보인다.


요지는 카페에서 일회용 컵으로 주문하면 일정 금액의 보증금을 부과하고 나중에 컵을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준다는 것인데 결국 업주와 소비자에게 모든 짐을 떠맡기는 꼴이다.


물론 일정 정도 보증금을 받고 일회용 컵 회수에도 도움은 되겠으나 이 역시 디테일의 차이, 완벽해 보이지 않는다.


돈이 걸려있으니 시민들의 자발적인 의지는 일단 만드는데 성공은 하겠으나 일회용 컵을 어떻게 회수하고 어떻게 환불해줄지 고민은 없어 보인다.

직접 일회용 컵을 들고 그 컵을 산 카페에 가지고 가서 잔돈을 받는 그 수고로움 보다는 차라리 편함을 택해버리는 일은 생기지 않을지, 결국 보증금은 환불 대상이 아닌 또 다른 지출이 되는 건 아닐지, 이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말이다.

결국 업주와 소비자만 번거롭게 생겼다.


우리나라에서도 마트에서 공병 수거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마트나 편의점에 맥주병, 소주병 등을 가지고 가면 마트에서 해당 금액의 잔돈을 준다. 사람이 직접 하고 그래서 갈등도 많이 생긴다.

아래는 네이버에 ‘공병 수거’로 검색하면 나오는 지식인 답변에 달린 댓글이다.

마트는 공병을 직접 관리하느라 힘들고, 소비자는 눈치가 보여 괜히 쭈뼛되게 된다.

이러니 녹음해서 신고하라는 팁까지 주는 것 아닐까.


네이버 지식인 캡쳐. 환경을 위한 행동을 하면서 쓸데없는 사회적 비용을 치른다.


정부가 모든 의무를 시민들에게 지우니 생기는 부작용이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환경을 위한 행동을 하면서도 갈등과 스트레스라는 쓸데없는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그런데 또 일회용 컵도 그럴 기미가 보이니 뉴스를 보고 한숨이 나올 수밖에...



내가 독일에서 재활용을 하며 감탄했던 이유는 그들의 ‘보증금 제도’가 아니었다. 마트에서 혼자 알아서 일처리를 하던 ‘공병 수거 기계’ 때문이었다.


마트 점원도 소비자도 누구도 번거롭지 않다. 들어온 병을 관리할 필요도 없고 눈치를 볼 일 도 없다.

병을 어디에서 샀건 아무 마트나 들어가 공병을 몇 개고 제한 없이 기계에 넣으면 당장에 바로 쓸 수 있는 ‘할인 쿠폰’이 나오니 수고로움이 크지 않다.

환경을 실천하는 이 ‘아름다운 행동’에 그 어떤 것도 방해하지 않는다.

그러니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공병을 수거한다.


우리도 ‘보증금 제도’가 또 하나의 규제가 아니라 ‘아름다운 행동’이길 원한다. 이 행동에 그 어떤 것도 방해하지 않게 좀 더 디테일하게 정책을 다듬어 주길 바란다.



이 ‘아름다운 행동’은 사람들의 ‘시민의식’에만 의지하기보다는 ‘이익’에 초점을 둘 때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제도’가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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