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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tsbie Oct 10. 2021

언론인을 위한 작문

한터 수상작

언론인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거쳐간다는 한겨레 배움터. 간간히 열리는 온라인 백일장에서 운 좋게 수상했던 작문입니다. 봉준호의 '마더'를 어렴풋이 떠올리며 글을 썼는데, 잘 담겼을지 모르겠네요. 


PD이든, 기자이든, 언론인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독자를 감화시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는 요즘입니다. 그 방식이 어떻게 되든 말이죠. 결국 언론인은 독자를 끊임없이 상정해야 하는 게 숙명이네요.


전 또다시 다른 글을 쓰러 갑니다. 또 부지런히 쓰고 읽어야지요.




주제 : 다음 5개의 문장을 포함하여 작문하시오

→ 시작은 언제나 계속된다.

→ 어머니의 칼끝에는 평생 누군가를 거둬 먹인 사람의 무심함이 서려 있다. 

→ 나는 고양이다.

→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어머니가 눈 앞에서 칼을 푹푹 찌르고 있었다. 어머니의 얼굴은 울그락 불그락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의 칼 끝에는 평생 누군가를 거둬먹인 사람의 무심함이 서려 있었다. "괜찮아..괜찮아.." 벌벌 떨리는 어머니의 음성 속에서도 당신의 속에서 얼마나 묵혀있었는지도 모를 한이 서려있어, 나는 작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때는 10년 전 즈음이었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던 그 때의 나는 눈부시게 빛났었다. 각종 상장이란 상장은 다 휩쓸었고, 매년 반장도 도맡아 했다. 쉬는시간마다 운동장의 에이스라고 불리며 이곳 저곳을 뛰다니기도 했다. 그런 나를 어머니는 늘 자랑스러워 했다. 어떤 모임을 가도 내 자식은 천재라고 늘 추켜세웠다. 그러나 최고가 최악으로 바뀌는 건 한 순간이었다. 남은 시간 3초, 건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난 워낙 잘 뛰니까. 빠르게 질주하는 순간, 빨간 불로 바뀌었고 가까운 거리에서는 오토바이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렇게 난 큰 사고를 당했다. 오토바이에 몸이 부딪혀 붕 날라가는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집에 가서 뭐라고 말해야 하지'


하반신 마비라는 판정을 받았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시작이 언제나 계속되듯이, 인생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와달라고. 망가져버린 인생을 리셋할 기회를 달라고. 끝없는 비관에 빠져버린 내 옆에 더 안달이 나게 된 건 우리 어머니였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라는 말이 있듯, 어머니의 기억 속 완벽한 천재였던 나는 이렇게 무기력하게만 앉아있으면 안 되는 거였다.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많은 곳을 다녔다. 백화점에 가서 가장 비싼 바지를 사 나에게 꾸역꾸역 입히셨고, 대치동 학원가를 기웃거리며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강의실을 수소문했다. 어머니 앞에서 나는 그저 고양이일 뿐이었다. 휠체어에 가만히 앉아 물어다주는 생선을 기다리는 새끼 고양이. 

"딸 이제 완벽하지? 엄마한테 말하면 다 괜찮아져."

학원 친구들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본다고 몇 마디 늘어놨더니, 학원을 대번에 옮겨주신 어머니가 한 말씀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어머니의 열정이 커질 수록 내 안의 냉정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


노력은 지난했지만 변화는 없었던 탓이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난 장애인 수급을 받고 있는 처지였다. 직장도 구하지 못했다. 그간 내 안에선 무기력함이 커질 대로 커져버렸고, 이는 어머니의 열정과 반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열심히 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엄마.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국 뒤에는 '쟤는 장애인이잖아'라는 말이 따라붙는다고!"

하지만 어머니의 눈에 나는 여전히 눈부시게 빛나는 원석이었고 다시 지혜의 시절을 되찾을 수 있는 자식이었다.

"아냐, 우리 한 번만 더 해보자. 나 죽고 나면, 네 몸은 네가 챙겨야지. 계속 하다보면, 언젠가 다 괜찮아질거야"

이번에는 자식의 취직을 돕겠다며, 온갖 현직자들을 만나며 입사 방법을 알아보고 계셨던 어머니였다. 나는 10년 전 어린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려버렸고, 그런 나를, 어머니는 말없이 다독여주실 뿐이었다.


정체 모를 인형을 가져온 건 그 다음 날이었다.

"딸, 용한 무당에서 받아 온 인형인데 이 칼로 인형의 다리를 쿡쿡 찌르면 네 다리에 앉아있는 악귀가 죽는대."

그러면서 나에게 같이 암실로 들어가 향을 피우며 의식을 거행하자고 하시는 것이었다. 금방이라도 빨갛게 터져버릴 거 같은 어머니의 얼굴에 마지못해 따라 들어갔다. 불을 끄고, 부적을 인형에 붙이고. 어머니의 모든 행동이 물 흘러가듯이 자연스러웠다. 그러고는 곧, 어머니는 칼로 인형을 찌르기 시작했다.

"괜찮아..괜찮아.."

떨리는 음성이었지만, 칼끝만큼은 오차없이 정확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그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어머니가 지금 찌르고 있는 건, 인형과 악귀뿐만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찌르는 건, 휠체어에 앉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나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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