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직장인들의 커뮤니티 링크드인에 흥미로운 게시글이 하나 올라왔다.
"요즘 95년생은 이래요 VS 95학번의 생각"이라는 글이었다. '95년생'은 평생 직장에서 뼈 빠지게 일해도 강남 아파트 1채도 못 산다며, 사이드잡과 퍼스널 브랜딩이 필수라고 이야기했다. 직장 내의 일로써는 맘껏 돈을 벌지 못하고 승진은 꿈도 안 꾼다는 푸념의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95학번이 보낸 답신은 다음과 같았다.
"직장 내의 사람들과 네트워킹을 하고, 추가적인 업무를 찾아 승진의 기회를 노리는 사람도 많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95학번은 직장 내에서 노오력을 하면 커리어적 성공을 이룰 수 있다고 답했다. 인터넷에서 일어난 이 설전은 X세대와 MZ세대 간의 충돌로 회자됐다.
요즘 각 기업마다 MZ세대들을 연구한다고 한다. '직설적 표현' '워라밸'로 대표되는 MZ세대들은 조직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기성세대들에게는 일종의 공포의 대상인 것이다. 심지어 어떤 작가는 '90년생들이 온다'라며, 이해할 수 없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마치 재난처럼 묘사하기도 했다. 이런 현 시대의 상황은 정확히 30년 전, X세대의 등장을 상기시킨다. 당시 그들은 서태지와 아이들로 대변되는 반항적 문화와 규범을 거스르고 표현하는 개성어린 모습에 미지수 'X'를 붙여 명명됐다. 현 기성세대인 X세대도 한 때는 '철부지 개성 넘치는 청년'으로 취급받던 시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X세대들은 MZ세대들을 가리키며 이해할 수 없는 '철부지 청년'이라고 말하곤 한다. 세대 갈등을 겪었던 세대가 시간이 흘러 또 다시 세대 갈등을 반복하고 있다는 구절은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반복의 원인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한 세대를 알파벳으로 명명하고, 정체성을 해석하려고 하는 성급한 판단의 오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오류를 인지하지 못한 채, 30년 전부터 지금까지 한 세대를 알파벳으로 분류했다. 현재 20대 청년들을 'MZ세대'라는 키워드만으로 이해하려고 할 땐 이런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요즘 MZ들은 워라밸이 제일 중요하니까, 너도 일찍 퇴근하고 집 가는 게 편하지?"
이 말은 젊음을 불사르며 일에 전념하고 있는 많은 청년들을 부정하는 말일 수도 있다.
인간은 당연하게도 다원적이며, MZ세대 안에서도 'MZ세대'의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도 많다. X세대들도 똑같이 베이비부머 세대들에게 알 수 없는 미지수 'X'라고 평가되고 반항적이라는 속단과 고정관념 속에서 판단되어 왔다. 이렇듯 한 세대를 너무나도 쉽고 간편하게 알파벳으로 명명하는 순간, 집단에 속한 개인의 이해는 삭제된다.
앞서 언급했던 링크드인 '요즘 95년생 VS 95학번'의 글에 이런 댓글이 달렸었다.
"나는 96년생인데 95학번 말에 더 공감가" "나는 양측 다 공감된다"
"양쪽 의견 잘 들었지만, 둘 다 내 직장 동료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등의 댓글들은 MZ세대와 X세대로 표현되는 양분적 구조, 흑백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개별적인 사람들의 목소리에 주목해야 한다. 알파벳으로 뭉뚱그려 특징을 규정하는 일보다는 분명 품이 많이 들어가고 어려운 일일테지만, 해내야 한다. 이 세상이 간단한 세상이 아니며, 다양함이 공존하고 있다는 세상임을 직시해야 한다.
X세대와 MZ세대는 이해할 수 없는 다른 별에서 태어난 게 아니다. 그들 모두 젊음과 개성의 시대를 살고 있거나 살아왔으며, 다양한 가치의 공존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언론은 다양한 개인들의 이야기가 주고 받아지는 공론의 장을 열어, '그들의 가치관'이라고 말해져 오던 것을 '누군가의 가치관'으로 치환할 때이다.
(언론고시를 준비하며 썼던 글을 변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