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지뷰잉과 연관하여
바야흐로 콘텐츠 폭식의 시대이다. 이전에는 주말 저녁 친구들과의 약속도 빼가며 예능을 보던 게 익숙해진 세대가 이제는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골라서 시청한다. 바뀌어버린 미디어 환경에서 주목해 볼만한 것은 넷플릭스의 등장이다. 넷플릭스는 막대한 자본력과 수많은 시청 데이터를 바탕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해내고 있고 수많은 시청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빈지뷰잉’이다. 콘텐츠를 몰아서 폭식하듯이 시청한다는 뜻의 이 단어는 넷플릭스가 한 번에 시즌의 전 회차를 공개하는 방식을 취하면서 만들어진 시청 문화다.
빈지뷰잉에 대해 옳다, 그르다, 가치 판단을 내릴 순 없다. 이미 새롭게 만들어진 시청 문화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콘텐츠를 즐기는 방식이다. 하지만 빈지뷰잉이 어떤 콘텐츠에 적합한지 분석은 해볼 수는 있다. 그래야 tvN이 제작하는 콘텐츠가 새로운 시청문화에 잘 맞는지, 그 여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시청자들이 빈지뷰잉을 하는 넷플릭스의 콘텐츠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다음 회차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자극적이라는 점이다.
클릭 한 번으로 다음 시청을 할 지 말 지 결정이 되는 시청 환경 속에서, 창을 닫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속도감 있는 전개와 자극적인 스토리텔링이 필수다.
그렇지 않은 한, 시청자들은 시즌 1의 3회까지 꾸역꾸역 시청하다가 GG를 외치고는 곧바로 다른 콘텐츠를 탐색하게 되곤 하니 말이다.
넷플릭스 코리아의 최근작인 ‘인간수업’ ‘D.P.’ ‘오징어 게임’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들 콘텐츠는 모두 ‘인간 본성의 추악함’을 소재로 자극적인 장면들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있다. 다소 노골적인 시청자 모객 전략이라고 볼 수 있지만, 많은 시청자들이 밤을 새가며 콘텐츠를 정주행하고 있다는 것은 전략이 제대로 먹혀들었다는 방증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반면 빈지뷰잉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콘텐츠들이 있다. 일주일의 기간을 두고 시청함에도 불구하고 한 회차가 충분한 스토리라인을 갖고 있어 시청의 만족감을 제공하는 콘텐츠들이 바로 그렇다. 이런 경우에는 매주 기다림의 여유와 생각을 환기시킬 정도의 시간들이 오히려 콘텐츠의 맛을 살린다.
넷플릭스들의 콘텐츠와 비교하여 분석하면 더욱 명확해진다. 넷플릭스의 몇몇 콘텐츠들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불분명하거나, 연기자의 행동이 이해할 수 없다던가,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밋밋하게 흘러가던가 등의 경우가 빈번하다.
실제로 많은 대중들이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들을 '용두사미'같다고 평가한다. 초반 이목을 잡아끌기 위해 자극적인 소재로 빈지뷰잉을 유도했지만, 후반으로 갈 수록 한 회차에 담긴 이야기들을 불충분하게 꾸린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청자의 입장에서, 소위 그렇게 ‘재미 없는 부분’들은 빠르게 1.5배속을 하거나 15초 뒤로가기를 누르며 다음 회차로 넘어가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될 건 없다.
반면 TV에서 방영되는 콘텐츠들은 그렇지 않다. 당장 지금 방영되는 회차가 충분히 재밌고 스토리 라인의 구성이 좋아야 다음주에도 시청자들을 콘텐츠로 끌어모을 수 있다. 그렇기에 넷플릭스의 콘텐츠들과 비교했을 때 한 회차에 들어간 노력이 훨씬 돋보인다. 꼼꼼한 설정과 스토리 전개 과정, 흥미진진한 사건까지 한 회차에 담겨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다행히, 시청자들은 여전히 이런 콘텐츠들을 원한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매주 기다려야만 볼 수 있는 콘텐츠들을 즐기고 있으며, 심지어는 빈지뷰잉을 하는 시청자들도 몇몇 콘텐츠들에 대해서는 매주 기다리는 여유를 기꺼이 갖기도 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일주일의 기다림이 시청의 재미를 극대화 해주는 장치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
기존의 레거시 미디어는 빈지뷰잉을 공략한 콘텐츠를 만들기 보다는, 빈지뷰잉을 하지 않는 시청 습관을 공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런 시청 습관에 있어서는 조금 덜 자극적이고, 덜 공격적이더라도 은근하고 따뜻한 재미에 가치를 두는 방송사의 지향점이 빛을 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미도와 파라솔은 자극적인 소재 하나 없이 일상의 평범한 이야기로도 재미를 끌어냈다.
어쩌다 사장에서 조인성과 차태현은 원천상회를 서툴게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애청자들을 만들어냈다. 유퀴즈 역시 마찬가지다. 프로그램이 순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나가자는 지향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세 콘텐츠 모두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자극적이고 거친 요소는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한 회차마다 충분히 전달하는 따뜻함과 한 회차만 봐도 느낄 수 있는 시청의 만족감으로 사람들을 매주 불러모았다. 화려하고 툭 튀는 것만이 주목받는다고 여겨지는 세상에서 본인만의 스토리 텔링 방식으로 꾸준히 시청자들에게 어필한 콘텐츠들이다.
넷플릭스는 계속해서 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양산하며 전작의 자극성을 극복하려 하고 있다. 한 밤으로 끝나버리는 짧은 쾌락의 여운은 길게 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반해 몇 개월 동안 꾸준하게 방영되는 콘텐츠들은 그것만의 맛이 있고, 여운이 있다. 레거시 미디어만의 완결성 있는 콘텐츠 제작 능력으로 빈지 뷰잉이 되지 않아도 충분한 프로그램들을 꾸준히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새로이 변화한 미디어 시청환경에서 레거시 미디어가 내세울 수 있는 경쟁우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