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히르 Nov 02. 2017

#20-1,  오헨로 쉬어가기 1

룰루랄라~~ 친구를 맞으러 가는 길

2015년 11월 3일 화요일 맑음


엔코지-스쿠모역-우와지마역-마츠야마역-마츠야마공항-도고유린소


39번 엔코지(延光寺) 바로 앞의 시마야료칸을 나서니 완연한 가을 아침이다.

엔코지 뒷편의 멀리 보이는 산 위로 솟아오르는 일출이 따뜻한 빛을 쏘아준다.


오늘은 길을 서두를 일이 없는 한가로운 일정이다.

약 8킬로 거리의 스쿠모역(宿毛駅)까지만 걸어가서  버스를 타고 우와지마까지, 우와지마에서 기차로 마츠야마역까지 간 후에 공항가는 리무진버스를 타면 될게다.


어제 만난 후루타상도 오늘은 도쿠시마로 돌아간다고 하셨는데 숙소를 나서도록 보이질 않는다. 아침식사 후에라도 인사를 했어야 했나 하면서 56번 국도로 접어든다.

구글맵은 쭉 56번 도로를 따라 안내하는데 한참을 걷다보니 왼쪽으로 꺾어지는 도로에 헨로표지판이 보이길래 아무생각없이 그리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웬걸 작은 마을을 뱅뱅 돌다가는 안되겠다 싶어 다시 56번 도로로 돌아와보니 후루타상이 앞서 걷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쫓아가서 다시 함께 걷는 길, 도중의 휴게소에서 잠시 쉬어가기도 한다.


후루타상은 스쿠모역보다 한 정거장 전의 히가시스쿠모역에서 도쿠시마까지 기차를 탈 예정이었지만 아직 시간이 있으니 스쿠모역까지 바래다 주시겠단다.

스쿠모역에서 버스시간표를 보니 우와지마행 09:47 버스가 20여분 후면 출발이겠다. 후루타상 사진을 담고, 오사메후다도 받는다. 녹색인 걸 보니 오헨로미치를 4번이상은 도셨던 듯하다. 그래서 저리 선한 얼굴이셨을까. 연세를 잘 가늠할 수는 없어도 아직 현역이신 걸 보니 적어도 60은 넘기지 않았을텐데 나도 저 나이에 저리 편한 얼굴이 될 수 있을까 싶다.

후루타상은 오사메후다에 전화번호를 적어주시곤, 오헨로미치를 마칠 무렵에 꼭 전화하라고, 하루정도 도쿠시마 안내를 해주겠다고 간곡하게 말씀하신다. 타인의 친절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지만 이분은 웬지 저의를 의심치않아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후루타상을 떠나보내고 무심히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무더운 기세가 한풀꺾인 시코쿠의 11월 햇살이 따사롭다. 우와지마행 09:47 버스까지는 10여분이 남았는데 다시금 후루타상이 아메리카노커피를 사들고 나타난다. 고맙고 또 반갑고 만나자 하루만에 이별이라는 게 살짝 아쉽다.

그러나 어느 한쪽만이 아니고 둘다 이번 걸음은 여기까지, 짧든 길든 쉬어가는 걸음이니 다음에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해보기로 한다.


일본의 교통시스템, 스쿠모에서 우와지마까지는 시외버스일텐데 요금체계가 나름 합리적이다.

탑승하면서 탑승지의 번호표를 뽑아서 이동한 거리만큼의 요금표시가 버스 앞 유리창 전광판에 뜨면 하차시에 번호표와 요금을 지불하면 된다. 스쿠모가 종점이므로 1번 번호표가 뽑히고 우와지마까지의 요금이 1800엔으로 뜬다. 교통비가 우리나라의 배 이상이지만 일본의 물가야 짐작했던 터라 많이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스쿠모 시내를 통과하다보니 마츠리가 한창이다. 특유의 마츠리 복장에 현혹되지만 주말에 돌아오면 이미 축제는 끝나 있을 것 같아 또 아쉽다.

우와지마까지의 버스노선에 앞으로 걸을 40번 간지자이지(観自在寺), 41번 류코지(龍光寺)까지의 순례길도 이어진다. 사코상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할 수는 없으므로(?) 휴식 후의 일정은 우와지마에서 스쿠모까지가 아니라 간지자이지 입구까지 버스로 이동 예정이다. 그러므로 이 구간, 약 20여 킬로는 세번째로 걷지 않은 길이 되겠다.


우와지마역까지 약 한시간 반이 걸려서 도착하고, 우와지마역에서 마츠야마역까지는 JR요산선 특급열차로 또 한시간 반쯤 걸려서 도착한 시간이 오후 한시쯤, 마츠야마 공항에서 아시아나가 도착하기까지는 시간이 널널하다.

마츠야마역의 다이소에서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때우다 가성비짱인 장갑도 발견한다.

사진을 찍을때 늘 아쉬운 것이 장갑, 자외선 차단이나 손의 보호, 한파를 막기 위해서도 필수인데 장갑을 끼면 셔터 작동시 미세한 떨림이 발생할 수도 있고, 수동렌즈 조작도 불편하다. 스마트폰을 조작하려면 아예 벗어야 하는 것도 더 불편하고...

그런데 이 장갑은 엄지, 검지, 중지까지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 나오도록 재단되어 있고 심지어 손바닥 미끄럼방지까지 되어있는데 가격은 100엔대다. 사코상 것도 하나, 친구 것도 하나, 내 것은 여분으로 두켤레를 구입한다.


쇼핑을 실컷 하고도 시간이 남아 공항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20일을 꼬박 30여킬로씩 걷다가 오늘은 이른 아침 두시간밖에 못 걸었으니 공항까지 6킬로를 걷는다해도 무리는 아니다.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마츠야마 시내를 한시간 남짓 걸어서 마츠야마 공항으로 친구를 맞으러 가는 길이 눈부시다.

마츠야마 작은 공항에서도 한참을 어슬렁거린다. 아시아나가 들어오는 화요일엔 무료셔틀이 운행되기도 한대서 공짜표도 얻는다. 친구가 돌아가는 금요일에 도고온천이 있는 마츠야마 시내에서 무료리무진버스 타는 승강장도 알아보고, 친구를 기다리는 시간이 마냥 행복하다.


툴레 50리터 배낭과 에어캡에 싸인 니콘 바디만 들어있는 거대하지만 가벼운 박스가 통관에 걸려서 뜯고 하느라 늦게 나온 친구와 재회한다. 눈물날만큼 반갑고 고맙다.

서둘러 무료셔틀버스에 올랐는데 무료라선지 승객들을 기다리느라 이삼십분을 더 허비하고 나서야 마츠야마시내로, 도고온천 근처의 숙소 도로유린소로 향한다.

도고유린소(道後 友輪荘)는 오헨로 지도책에 나오는 숙소여선지 도고온천을 찾는 한국인은 로비에서도 식당에서도 보이질 않는다. 식당에서 저녁과 함께 친구가 챙겨운 참이슬로 소맥을 제조해서 마시는 맛도 특별하다.


오랜만에 대욕탕에서 온천도 하고, 밤늦은 시간까지 친구랑 맥주를 홀짝이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잠이 든다.




도고유린소 (2식포함) 7150엔

음료 844엔

식사 344엔

버스 (스쿠모-우와지마) 1800엔

기차 (우와지마-마쓰야마) 2990엔

총 13128엔


매거진의 이전글 #20, 고치현의 마지막날, 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