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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히르 Jul 29. 2017

#20, 고치현의 마지막날, 비  

도쿠시마의 후루타상과 함께 걷다 (for #39)

2015년 11월 2일 월요일 비

안슈쿠(安宿) - 32km - 39 延光寺(Enkōji)


시작이 반이라더니 걷기 시작한지 꼭 20일만에 절반, 반환점을 돌다


39번 엔코지 가는길은 안슈쿠의 토사시미즈시 북동쪽에서 서북방향으로 내륙을 관통해서 하타군을 지나 스쿠모시까지 가는 30여킬로 여정이다. 38번 곤고후쿠지로부터는 가장 빠른 길로 가도 55킬로가 넘는 먼 거린데 어제 25킬로를 버스로 되돌아 왔으니 남은건 30여킬로, 오늘 하루면 도착은 하겠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길을 걷다가 스마트폰을 떨어뜨려 금이 가고, 신발에 비가 스며들지 않게 덧입은 스패츠는 끈이 헤져서 반동강이 날 지경이다. 줄곧 포장도로라서 빨리 닳은 것도 같고 신발 바닥에 홈이 파인 등산화였으면 괜찮았을텐데 바닥이 일자에 가까운 트래킹화다보니 고무밴드가 견디지를 못한 것도 같다. 그동안은 다행히도 비도 태풍도 다 비껴갔는데 남은 절반 일정동안도 날씨가 도와줬으면 참 좋겠다.

 

21번 국도에 들어서면서 니부카와온천호텔에 예약을 넣었다. 

오늘만 걷고 나면 내일 친구를 만나 모레는 니부카와온천에서 ゆっくり 쉴 수 있겠다

오늘은 엔코지 앞에 있는 시마야에서 묵고, 내일은 스쿠모역까지 약 8킬로만 걸은 후에 버스로 우와지마까지, 우와지마에서 기차로 마츠야마까지 가는 걸로, 공항에서 친구를 픽업한 후에 도고온천으로 이동, 도고유린소에서 1박하고 모레는 이마바리역 근처에서 놀다가 이시츠지산 아래의 오랜 온천호텔에 투숙하는 걸로 일단은 일정을 잡아 두었다. 

일정을 잡기까지 도와준 한국의 오헨로상 선배(갓 스무살 나이에 친구와 둘이서 시코쿠의 여름 순례를 감행했다는) 롭상에게 무한 감사드린다. 


비가 내리는 와중에 두시간을 걷는 동안 순례자는 한명도 못만나고 트럭 서너대가 쌩하니 지나쳐갈 뿐이다.

아니, 길동무가 있긴 했다. 길에 있어도 되는지 모를 붉은 게 한마리가 비를 맞고 있었는데 가까운 곳에 바다는 커녕 개울도 없는 곳이라 이 비가 그쳐서는 안될 것 같은 심정이 된다. 


10킬로쯤 걸었을까, 오헨로휴게소가 나온다. 이제껏 본 휴게소 중에서 제일 럭셔리한 휴게소다. 이지적으로 보이는 초로의 신사 지킴이도 한분 계신다. 작은 냉장고와 전기포트를 구비하고 있다. 냉장고 안에는 페트병에 든 생수, 녹차, 캔커피 등이 가득차 있고, 탁자 위에는 과자 몇 종류와 귤도 있다. 커피믹스도 있어서 뜨거운 커피 한잔을 얻어 마신다.


오셋타이의 정수로, 비교적 젊은 편인 30대 정도로 보이는 오헨로상이 컵라면을 먹고 있다.

장발족에 차림새도 심상치 않은 이분, 노숙이라도 하는지 거대한 배낭에 텐트와 침낭도 실린 듯하다. 

깔끔떠는 성격은 아니어도 냄새에 취약한 나, 11월에 접어들었는데도 하루 걸으면 땀으로 샤워하는데 며칠간 씻지않은 듯한 냄새를 풍기지만 오헨로미치기 때문에 이해해줄 수 밖에 없다.


헨로관련 책자도 꽤 있어서 뒤적뒤적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초로의 남자분이 한 분 더 오신다.

오늘같이 비내리는 날에도 걷는 분이 있어서 다행이랄까. 포장도로라도 내륙 산길을 내내 혼자 걷는가 싶었는데 혼자만은 아니라서 안도한다.

다같이 휴식을 취하고, 화장실을 여쭈어 헨로휴게소 왼편을 올라 가정집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다시 출발한다. 

젊은 오헨로상이 먼저 출발하고, 늦게 오신 헨로상(후루타상)과 같이 출발하는데 얼마 안가서 젊은 오헨로상을 추월한다. 다리를 살짝 저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저마다의 삶의 무게가 다른 건 알겠는데 오헨로미치에서 안락한 숙소에 들지 못하는 건 또다른 무게감으로 느껴진다.

여행지에선 도미토리, 게스트하우스에 주로 묵지만 온전히 걷는 순례길에선 숙소의 따뜻한 욕조와 정갈한 식사가 정말 절실하다. 그게 아니었으면 진즉에 어디라도 탈이 났을 것 같다.


비로 흙더미가 내려앉아 유실된 길을 복구하기도 하는 공사구간도 지나고 どぶろく祭り(막걸리축제?)중인 미하라무라(三原村)도 지난다. 사코상과 헤어진 길을 후루타상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는다. 미하라의 대형마트를 지날 무렵이 점심시간이라선지 후루타상이 마트로 이끄는데 들어가봐도 막걸리축제기간이란 게 무색하게 별로 땡기는 게 없다. 어제 점심, 저녁을 너무 거하게 먹은 탓도 있는지 배도 물도 안고프다.


후루타상보다 먼저 마트를 나와 걷는다. 비는 그쳤는데 이제까지의 고치현과는 다르게 내내 구불구불 내륙 산간지방을 걷는 길이다. 미하라촌을 벗어나서 시미즈가와소와 헨로휴게소를 지나치면 우메노키공원(梅の木公園)이 내려다보인다. 시미즈가와(清水川)와 나카스지가와(中筋川)가 만나는 곳 즈음인데 한가롭게 거닐어도 좋을만큼 제법 넓은 면적이다. 주변에 큰 마을도 없는 터라 공원에서 사람들이 노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이름으로 짐작컨대 공원가의 잎이 다 떨어진 나무들이 매화나무가 아닐까 싶다.


작은 우메노키터널을 지나면 왼쪽으로 저장된 나카스지가와의 물과 멀리 댐이 보인다. 왼쪽으로 직진하면 바로 댐이 나오고, 오른쪽엔 댐에 딸린 공원 전망대가 있다. 일단 전망대 위로 올라서 댐을 내려다보는 재미도 쏠쏠한데 문제는 내려가는 길이다. 댐으로 바로 연결되는 계단의 입구는 나무 사다리모양의 문으로 막혀있고,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가서 돌아가는 길은 너무 멀다. 배낭만 아니라면 돌아가는 길도 문제 없으련만 배낭을 핑게로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일본인들은 하지 않을 행동, 월담을 넘고 만다. 다행이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화장실을 다녀오니 댐 주변의 정자모양 쉼터에 두 명의 오헨로상이 와있는데 한분은 오전에 만난 후루타상이고, 다른 한분은 일주일전에 오오~ 국민숙소 토사에서 만난 이외수 판박이시다.

후루타상이 마트에서 샀는지 찹쌀모찌떡 두알과 귤을 건네주신다. 점심도 걸른 걸 눈치채셨나보다. 모찌 한알을 먹고 배낭은 던져둔 채 댐 주변을 돌면서 열심히 폰사진을 찍는다. 일본에서 보는 댐이 신기하기도 하고, 그래 너희들이 얼마나 잘 지어났니 하는 심정으로 산업스파이라도 된 양 폰카질을 하고 돌아오도록 후루타상이 아빠미소를 하고 기다려준다. 이외수 판박이님은 떠난지 오랜 듯하다.

무안해서 이래뵈도 사진작가라고 우물거린다.

후 : 카메라는 어쨌니.

나 : 고장나서 한국으로 돌려보냈는데 내일 친구가 가지고 들어와요. 그래서 오늘까지만 걷고 내일은 마츠야마로 친구 마중하러 가요.

후 : 나도 오늘까지만 걷고 내일은 도쿠시마로 돌아가. 이번에는 휴가랑 주말 포함해서 5일동안 걷고 있단다. 보통은 와이프랑 같이 걷는데 이번에는 와이프가 휴가를 못내서 혼자 와야 했어.

나 : 댁이 도쿠시마군요. 시코쿠에서 오신 분은 처음 뵙네요.

후 : 응. 집이 1번 료젠지와 88번 절 중간쯤이야. 너가 88번까지 마치고 연락하면 하루쯤 도쿠시마를 안내해 줄 수도 있으니 꼭 연락해.

나 : 아~ 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39번 엔코지까지 걷는다. 얘기하다보니 숙소도 같은 곳으로 예약이 되어있다. 

엔코지에서는 안내도 맡아 주시는데 참배순서는 일일이 예를 표하지는 못하지만 이제까지 알고 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내가 쓰고있는 모자는 벗어야 한단다.

순례자들이 쓰는 스게가사에는 코보대사를 나타내는 범어가 있어서 절에서건 스님앞에서건 참배시에도 벗지 않아도 예의에 어긋나지는 않지만 스게가사가 아닌 모자는 절안에서 벗는게 예의라고...


엔코지의 우물, 거북이상에 대해서도 무슨 설명을 곁들이는데 도무지 못알아 듣겠다.

나중에 검색을 해보니,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져 온단다.

「엔코지는 토사로 서남단, '수행 도량' 마지막 영장이다.
현재 산 이름, 절 이름의 유래에 관해서는 용궁성의 기원에서 해답을 찾는다. 시대는 헤이안 중기 연희 11년(911) 무렵, 용궁 살고 있던 붉은 거북이가 등에 구리 범종을 짊어지고 왔기에 승려들은 당장 이를 에 시주하 그동안 산 이름, 절 이름赤亀山 延光寺로 바꿨다. 이 범종은 '연희 십일년 설날…' 문구가 새겨진 높이 33.6cm, 구경 23cm의 자그마한 종으로, 메이지 초기에는 고치현 의회 개원과 폐막의 신호로 울려졌다도 하며 국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기록을 절의 기원으로 되돌리면 진키 원년 교키 보살이 쇼무 천황(재위 724~49) 칙명 받아, 순산, 액막이 기원하고 약사 여래상을 주조하여, 이를 본존으로 본방 십이방을 건립한 것이 개창으로 되어있다. 당시 약사 여래 서상을 따서 거북이학산(亀鶴山), 원호는 시약원(施薬院), 사명 보광사(宝光寺.다카미츠지?)라 부르며  본존 태내에교키 보살이 터득했다는 부처의 사리를 비장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코보대사 이 절 찾은 것은 엔랴쿠 연간(782~805)으로 간무 천황(재위781~806) 칙명에 의한 기원소로 재흥, 일광, 월 보살상을 안치하고 칠당 가람을 갖췄다. 이때 스님이 석장으로 땅을 짚어서 우러나온 영험한 물이 오늘에 전해지는 ' 씻는 우물'이다.

출처 : 四国八十八ヶ所霊場会

http://www.88shikokuhenro.jp/kochi/39enkoji/index.html


어스름이 내리는 저녁, 비내린 엔코지의 마당에는 노란 은행나무잎들이 무수히 떨구어져 있다. 

11월이 되서야 바야흐로 가을로 접어드는 시코쿠, 잠시 쉬어가기 전날이라선지, 고치현의 마지막 절이라선지 인적이 드문 영내를 아쉬운 듯 서성거린다.



흐린 날이라 일찍 어둑어둑해졌어도 숙소에 든 시간은 4시밖에 안되었다.

세탁기를 돌리고, 씻고 나오니 바로 식당으로 내려오란다. 5시에 벌써 저녁식사가 한창이다. 

단체식당에는 4인용 테이블 두개가 차려져 있고, 내가 제일 늦게 내려왔는지 일곱 자리는 이미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맨 안쪽 구석자리가 비었는데 맞은 편은 후루타상이다. 건너건너에는 낮에도 만났던 이외수 판박이님도 와 계신다.

시마야의 저녁 상차림은 가짓수로 승부하는 것처럼 메뉴가 다양하다. 게다가 후루타상이 시원한 맥주까지 권한다.

다시 느끼는 거지만 이분 참 일본사람 같지 않다. 시코쿠의 숱한 숙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겸상을 했어도 술권하는 아저씨는 처음이다. 그것도 가만히보니 옆에 앉은 아저씨한테는 아니고 나한테만 권한다. 술을 사양하지 못하는 나, 얼마 지나지 않아 술잔을 비우는데 이분께서 니혼슈 두잔을 주문해서는 또 한잔을 내민다. 체면이 있는지라 맥주잔에 반잔만 따르고 마저 드시라고 건네드린다. 



옆 테이블에서는 아저씨들 몇분이 서로 자기가 준족이라고 자랑질이 열심이다. 누구는 하루에 40킬로를 걷네, 누구는 45킬로를 걷네 하면서... 후루타상이 나를 대신해서 한마디 거드는데 내가 하루 35킬로씩 걷고 있다고 수퍼우먼이라고 치켜세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외수 판박이님은 인정하겠다. 그를 처음 만난게 국민숙소 토사에서 지난주 화요일 저녁이었으니 오늘까지 6일을 걸었을텐데 나보다 25킬로를 더 걸었으니(버스로 이동한 거리) 하루에 4~5킬로씩은 더 걸은 셈일게다. 준족이 아닐 수 없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毎日40キロ以上'는 오바다. 35~40킬로쯤 걸었을테지...


이외수 판박이님이 뭐라뭐라 하는데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으려니, 후루타상이 나보고 하는 소리라며, 이제부터는 납경책을 도둑맞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단다. 에히메현 이후에는 납경책만 전문적으로 훔쳐다가 파는 사람이 간혹 있으니까 배낭을 팽개쳐두고 사진만 찍으러 다녀서는 안된다고 이외수판박이님이 나를 꼬집어 주의를 주고 있다나...

믿기지 않지만 일본인이 하는 말이니 주의해서 나쁠건 없겠다. 꼬박꼬박 300엔씩 내고 납경을 받은 건 차치하고라도 납경책을 잃어버리는 건 내가 걸어온 거리를 잃어버리는 듯해서 너무 싫을 것 같다. 도대체 순례자를 상대로 그런 해괴한 짓을 하는 사람이 있다니, 이곳이 일본이어서 더 믿기 힘들긴 하지만 조심은 해보련다.


후루타상이 주는 술을 홀짝홀짝 과음을 하고 말았다. 맥주 한잔에 도수를 알 수 없는 니혼슈를 한잔 반이나 마셨다. 내일부터 휴가(?)라 느슨해진 것도 같고, 후루타상이 일본인답지 않게 사람을 편하게 무장해제시키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한없이 선량해 보여서 그럴까. 일본인같지 않게 치밀해보이지 않아서일까.


휴가를 앞두고 새삼스레 걸어온 길과 남은 길을 재어 본다.

570킬로쯤 걸었다! 휴식을 취하고 나선 다시 역으로 마츠야마-우와지마-40번 절까지 기차와 버스로 올거니까 600킬로, 절반을 마친 셈이다. (걷지 않은 길이 늘고 있다. 13번 다이니치지까지의 10여킬로, 아시즈리에서 안슈쿠까지 25킬로, 그리고 스쿠모역에서 40번 간지자이지(観自在寺)까지 20킬로, 합치니 5~60킬로나 된다.) 

순수한 아루키헨로는 요원한가도 싶지만 형식에 목숨걸진 않기로 한다.


출처 : 四国お遍路.net

http://www.shikoku88.net/



시마야료칸 (2식포함) 6600엔

납경 (39번) 300엔

총 6900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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