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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히르 Jul 11. 2017

#19, 벗을 떠나 벗에게로~

아시즈리, 땅끝에서 머무르지 못하는 슬픔을 딛고 (for #38)

2015년 11월 1일 일요일 흐림

28km - 38 金剛福寺(Kongōfukuji) - BUS - 안슈쿠


고치현, 수행의 도장에서 수행처럼 걷다


안슈쿠에서도 이른 아침을 먹는다. 걷기 시작한지 19일째, 이런 바른생활이 없다.

출발부터 사코상이 엉뚱한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어제 숙소 뒷편 골목길로 와선지 숙소 앞 대로에서 방향감각을 잃은 듯 어제 온 방향으로 되돌아갈 태세다. 나보다 더한 길치라니 참 어이없기도 즐겁기도 하다. 잘못 들어선 김에 편의점에서 군것질거리도 사고, 난 또 그 와중에 장갑을 떨구고 그걸 주우러 왔다리갔다리 둘다 참 부산맞은 아침이다.


오늘은 드디어 아시즈리 땅끝으로 곤고후쿠지까지 약 88킬로의 대장정을 마감하는 날이기도 하다. 오헨로미치 중에서 가장 긴 여정을 마치는 날이라니, 3일동안 어느 한 곳에 닿기 위해 한발한발 디뎌온 걸음이라니 새삼스럽게 감동적인 기분이 된다. 

고치현이 끝나간다는 아쉬움도 있다.


바닷가 해안도로를 따라 걷는 길이 참 좋다. 구름을 낮게 드리운 하늘도 좋다. 

걷기여행이라선지 군데군데 숙소 안내판이나 광고판이 나오면 꼭 핸드폰에 담게 된다. 웬지 안심도 되고 내가 묵지는 않더라도 다른 이들에게 참고가 될 것도 같다. 아시즈리 가는 길에 토사시미즈시 해안에서 살짝 들어간 곳에 오키노하마(大岐の浜)라는 민슈쿠가 있었어. 위치도 평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하고 시코쿠를 가겠다는 이에게 일러줄 수도 있지 않은가.




아시즈리에서 1박을 하게 될 사코상과는 달리 버스로라도 안슈쿠로 돌아와야 하는 난 마음이 급하다. 참, 이 길에서 혹시 박선생님을 다시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도쿠시마현 끝무렵에 헤어져 75킬로 거리를 기차로 가셨으니 아시즈리에서 묵고 나오는 길이라면 재회할 수도 있을 듯한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에 사코상한테 자꾸 세뇌를 시킨다. 하루 거리를 버스로 돌아가서 내일 39번 엔코지(延光寺)를 마치고(그러고보니 절묘하게 고치현, 시코쿠의 4개 현 중 둘을 마친 시점이다) 모레부터 4일간의 휴식에 들어가는 나와 아시즈리에서 1박 후에 다시 걷게 될 사코상과는 산술적으로 3일 차가 생길 것이다. 그걸 메꾸기 위해 사코상한테 내일부터 5일동안은 38~40번 절까지만 서쪽 해안선을 따라 최장코스로 왔다리 갔다리하고 있으라고, 그래서 11월 7일 토요일에 40번 절에서 만나 다시 같이 걷자고...


11시도 전에 아시즈리까지의 절반은 걸었을까 싶은 곳에서 어촌마을을 만난다. 방파제에 줄지어 선 작은 어선들이 정겹고 이제는 익숙해진 바닷가마을 특유의 비린내도 싫지 않다. 생물들이 즐비한 생선직판장에서 침을 흘리다가 우측에 달린 海鮮館 大漁屋에서 이른 점심을 먹기로 한다. 맥주외엔 군것질을 마다한 나와 생과일, 말린 과일, 각종 영양바 같은 간식거리를 늘 달고 다닌 사코상한테 그동안 얻어먹기도 하고, 다음주에 기다려달라 꼬시기도 해야겠기에 오늘 점심은 사코상 몫까지 대접하기로 한다. 메뉴도 거창하게 사시미정식이다. 오헨로미치에선 젤 푸짐한 점심이지 싶다. 맥주는 극구 사양하는 사코상은 그 좋은 안주(?)만 먹고 난 아사히수퍼드라이까지 거하게 먹고 마시는데 참 맛난다. 


오늘도 사코상과 실없는 농담따먹기를 하며 걷는 길, 발에 물집까지 생긴 사코상한테 자꾸 괜찮냐고 물으니 한국까지도 걸어갈 수 있다고 너스레를 떤다. 

기타마야상도 계속 만나지만 이분과도 오늘이 마지막일 게다.


아시즈리에서 6.5킬로 전에 젠콘야도같은 오헨로휴게소가 있다. 말로만 듣던 젠콘야도(순례자를 위한 무료 숙박시설)가 이렇게 생겼나싶다. 300미터 전방에 있는 간이우체국내의 접대소와 깨끗한 화장실에서 씻고 볼일보고 하나보다. 글쎄~ 순례길이니 수행삼아 묵어보겠냐 해도 도망치지 않을까. 시코쿠에 오기 전에는 비용도 절약할 겸 젠콘야도, 츠야도 등의 정보를 잠깐 찾아보기도 했지만 와서 보고는 바로 포기했다. 

하루종일 땀에 절은 몸을 하고 벌레가 우굴거리는(?) 곳에서 오돌오돌 떨면서 밤을 지새고 싶지는 않은 관계로, 몇만원에 안전을 담보삼지는 않는 걸로 잠정적인 결론을 내린 게 벌써 오래전이니 신기하게 둘러보고 만다.



안슈쿠까지 다시 돌아갈 생각으로 어찌나 서둘렀는지 39번 곤고후쿠지에 닿은 시간이 오후 2시다. 지나치게 서둘렀나보다. 

곤고후쿠지는 이제까지 본 어느 찰소보다도 넓어 보인다. 아이폰 파노라마로 담기에 360도 회전을 해야 할 지경이다. 경건한 마음보다 大大金持ちですね!!하는 감탄사가 먼저 나오니 스스로 생각해도 속물스럽다.



오후 2:40 나카무라행 버스를 타면서 사코상과 일시 이별한다.

사코상이 꼭 다시 돌아오라며 버스 밖에서 새끼손가락까지 거는데 왈칵 눈물이 나려고 한다.

버스로 돌아오는 길은 기절모드다. 돌아와서 사코상한테 전화를 하니 벌써부터 '사비시이네'한다.


안슈쿠에서는 고치현에 들어오면서 민슈쿠 도쿠마쓰 이후로 간간이 만났던 젊은 오헨로상과 다시 만난다.

오늘 아시즈리까지 다녀왔다니 '스고이, 스고이'를 연발한다. 자기는 나보다 하루 먼저 순례길을 시작했는데 오히려 하루 늦어지고 있다며 옆의 오지상들한테도 내가 완전 빠르다며 고자질하듯이 얘기한다.

오지상들 중의 한 분도 시만토시에서 다리를 건널 때 나를 봤었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그 무시무시한 우라토대교 초입의 오헨로휴게소에 앉아계시던 분이지 싶다.


시코쿠에서 한 획을 긋고 짧은 휴식에 들어가니 이분들과도 다시 만날 일이 없겠구나 생각한다. 웬지 아쉽기도 하고 이렇게 만나고 헤어지는 게 인생이지, 어른스러운 생각도 한다.

시코쿠 최남단, 이름도 어여쁜 아시즈리에서 1박도 못하고 돌아오는 길은 아쉬움과 이별의 슬픔으로 가득 찼습니다



안슈쿠 (2식포함) 6000엔

음료 349엔

식사(사코상 포함) 3200엔

버스(아시즈리-안슈쿠) 1300엔

세탁 100엔

납경 (38번) 300엔

총 11249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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