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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히르 Jun 20. 2017

#18, 아시즈리(足摺), 땅끝마을 가는 길

韓国人イさん、足が強くてすたすた (for #38)

2015년 10월 31일 토요일 흐린 후 맑음

우미보즈호텔(海坊主ホテル) - 30km - 안슈쿠(安宿)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사코상과 함께 이른 아침을 먹는다. 우미보즈호텔도 바다 전망이 최고인지라 밍기적거리고만 싶지만 우린 지금 남쪽으로 남쪽으로 땅끝마을 아시즈리를 향해 가고 있는 중인지라 절대로 한가할 수가 없다.

게다가 사흘 후면 마츠야마 공항으로 친구가 들어오는데 고치현의 땅끝마을 언저리에서 에히메로 이동하는 것도 큰 일인지라 여기저기 좋은 노선을 물어보지만 아직 신통찮은 답변들 뿐이다.

어떻든 오늘부터 3일간만 걷고 그 담은 친구를 만나러, 나흘간의 꿀맛같은 휴식을 취하러, 도고온천의 그 마츠야마로 갈테고 무엇보다 카메라가 와줄거고, 덤으로 배낭도 와줄테니 천군만마를 얻은 듯 힘이 난다.

 



7시에 우미보즈호텔을 나서서 걷는 길은 어제와는 다르게 오로지 자동차도로지만 그래도 해변을 따라 걷는다.

기타야마상과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는다. 

해마다 찾아오는 10월의 마지막 날이다. 시코쿠에서도 누군가가 단체톡방에 올려준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들으며 걷는다. 오헨로미치에서 반복해서 듣는 잊혀진 계절도 운치있다. 


오늘도 역시나 헌법9조를 사수하자는 구호의 안내표지판이 눈에 띄길래 사코상한테 묻는다. 너희나라 국민들은 헌법9조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일본이 다시 전쟁가능한 나라로 되는 게 바람직하냐고...

사코상한테서는 예상했던 대로의 답변이 돌아온다. 일본이 북핵과 중국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자국의 방어를 위해서는 평화헌법이라고 하는 헌법9조의 개정도 어느정도는 필요한 것 같다는. 그리고 그 뉘앙스에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대한 피해의식이 숨어있다. 

엄연히 국적이 다르니 간극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내 안에서도 뭔가 끓어오르는 게 있지만 사코상 잘못이 아니므로 삼키고 만다.




중간에 네덜란드에서 온 엘리상을 만난다. 연세가 제법 되어보이는 이분, 젊어서는 한 미모 하셨을 얼굴이다. 일본어도 곧잘 하시니 사코상과도 일본어로 수다를 떤다. 

엘리상은 그야말로 느릿느릿 하루에 20킬로 남짓 걸으면서 해변이 보이면 무조건 도로를 벗어나 해변의 백사장이거나 자갈밭을 걷는다면서 주워온 소라껍데기를 선물로 준다. 

'그래 여행은 저래야지, 그래야 힐링이지' 하면서도 그런 여유가 없으니 이게 성격인건지 민족성인건지 모르겠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헨로휴게소에 앉고 보니 이른 시간임에도 출출한지라 간식을 먹으려는 우리를 남겨두고 엘리상은 춥다면서 먼저 출발하고 사코상과 둘이서 오니기리를 먹는다. 



다시 걷는 길, 사코상이 나보구 너무 빠르다면서 징징거리더니 듣보잡 노래까지 지어 부른다.

'オランダ人エリさん、足が長くてすたすた

韓国人イさん、足が強くてすたすた

日本人サコは足が短くてよちよち'

'네덜란드인 엘리씨는 다리가 길어서 저벅저벅

한국인 이씨는 다리가 튼튼해서 저벅저벅

일본인 사코는 다리가 짧아서 아장아장'


사코상 정말 많이 유쾌하시다. 




조금을 더 가니 편의점 로손이 나온다. 간식을 먹은지 방금이지만 점심시간이기에 들러본 로손에서 다시 엘리상을 만난다. 감기기운이 있다는 엘리상은 쇠고기덮밥 도시락을 사먹고, 난 오니기리도 먹은터라 맥주 한캔으로 점심을 때우려는 데 두 아줌마는 아직도 이런 모습이 생소한가 보다. 


여행에선, 유럽이든 남미든 대개 내 점심은 맥주 한캔였구, 저녁에는 소고기, 남미에서는 그 유명한 아사도에 와인을 마시는게 대부분이었는데 이런 내가 이상한건지 그녀들이 이상한건지 잘 모르겠음이다.

좀 쉬어가겠다는 엘리상을 뒤로하고 사코상이 앞장을 서다가는 길을 잘못 든다. 일본인과 걷는다는 생각에 아무 의심없이 따라가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걸 배운다. 사코상도 시코쿠는 초행이고 지도책보다는 구글에 더 의지하는 나에 반해서 지도책 하나만 의지하기 때문에 좀 더딘 것도 같다. 이럴때는 꼭 오헨로미치 표식도 잘 눈에 띄지 않지 말이다.


장장 1.6킬로가 넘는 터널도 지난다. 

혼자였으면 너무 길었을 터널도 사코상이 재잘대며 뒤를 따라주니 지루하지 않다.




길은 헤맸어도 숙소 안슈쿠까지 무사히 도착한다. 안슈쿠는 수수한 일본 가정집 같은 분위긴데 1~2층에 걸쳐서 방이 예닐곱 개 정도 되어 보인다.

수순대로 입욕하고 세탁기 돌려놓고 식당에 모인다. 숙소가 6천엔으로 비교적 저렴해선지 식사도 그만그만하다. 

식사 중에 엘리상도 도착해서 합류한다.

엘리상 나름 아웃도어족인데 네덜란드엔 산이 없으니 스페인, 이태리 등 해외로 트래킹을 다녔다고 한다. 일본엘 처음 온건 무려 30년 전으로 일본에, 시코쿠에 꽂혀선지 최근 여러번을 왔다고... 최근 2~3년 동안에만도 오헨로미치를 서너번은 왔다고 하니 일본통이면서 대화 중에 모르는 말이 나오면 아이폰 사전 앱으로 검색하면서, 가다카나가 막히면 쳐달라고 하면서 한자가 난관인 서양인임에도 일본어 공부에도 열심이시다. 세상에나 64살이나 되셨다니 동안이기도 하고 그 연세에 머나먼 이국을 이렇게 여유롭게 여행하고 있으니 나도 엘리상처럼 나이먹어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주인장도 비교적 젊은 분으로 나름 정보통이다. 오늘에서야 마츠야마 가는 노선을, 안슈쿠의 주인장의 조언을 빌어 확정한다. 

일반적인 아루키헨로라면 안슈쿠에서 아시즈리, 땅끝마을까지 25킬로 남짓을 걸어 38번 곤고후쿠지 순례를 마친 다음, 1박을 한 후에 다시 동쪽으로 갔던 길을 돌아와서 중간에 1박하고 다음날 39번 절까지 가거나 그보다 좀 더 긴 서쪽 해안을 따라 북상 후에 1박2일 이상 코스로 39번 절까지 가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나는 아시즈리 1박을 생략하고 당일에 안슈쿠까지 버스로 돌아온 다음날 39번 절까지 순례를 마치기로 한다. 그러면 3일째 되는 11월 3일에 스쿠모역까지 한두시간만 걷고 스쿠모에서 우와지마까지 버스로, 우와지마에서 마츠야마까지 기차로 에히메현에 닿은 후 오후에는 마츠야마 공항으로 친구를 마중하러 갈 수 있다.


생각만해도 기분 좋아지지만 사실, 아시즈리에서 1박을 하지 못하는 아쉬움도 크다.

아시즈리에서 1박을 한다면 하루를 걸은 다음날 안슈쿠에서 마츠야마로 가야 하는데 노선이 여의치않다.

안슈쿠에서 버스로 30분 거리인 나카야마역까지 가서 기차로 마츠야마까지 가는 것도, 다시 돌아오는 것도 비용이 배가 되니 어쩔 수 없는 결정이다.


포기도 빠른 나, 아시즈리에서 돌아오는 버스편만 챙겨두고 하루를 마감한다.




안슈쿠 (2식포함) 6000엔

음료,식사 812엔

총 6812엔


구글어스 : 오늘 걸은 길. 내일이면 닿으리. 아시즈리 땅끝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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