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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히르 Aug 23. 2024

8/22 까미노 21일차

라바날델까미노~몰리나세까_24.8km

Rabanal del Camino~Molinaseca


오늘은 까미노에서 피레네 산맥 이후 두번째로 힘들다는 폰세바돈 철의 십자가를 걷는 날이다. 1150고지에서 시작, 1460고지 철의 십자가를 기점으로 완만한 능선 이후 가파른 내리막을 10킬로 가까이 걸어야 목적지인 몰리나세까에 이르를 것이다.

준비물이다. 철의 십자가는 빈손으로 가는 곳이 아니므로~

숙소를 나서서 생각보다 가파르지는 않은 숲길을 한시간 반쯤 걸어 철의 십자가 바로 아랫마을 폰세바돈에 닿는다. 동이 트고 있는 길을 부지런히 철의 십자가에서 일출을 보리라는 희망으로 쉬지 않고 오른다.

뒤로는 먼동이 새빨갛게 밝아오고 있다.

아~~ 드디어 철의 십자가다. 예상한 것보다 훨씬 심플하고 명료한 십자가다. 천년의 순례자들의 소망이 담긴 돌무덤 한가운데 솟아있는 철의 십자가는 침묵하고 있는 것처럼도,  수만마디의 이야기을 내뱉고 있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그 이야기에 귀기울이면서, 내 이야기를 얹으면서 오래도록 머무른다. 그러는 동안 수많은 순례자들이 철의 십자가상 주위를 서성이이거나 각자의 사연이 담긴 돌멩이를 새로 얹거나 기도를 하거나 누군가는 오열을 한다.

철의 십자가와 함께 내 삶의 무게인 것처럼 그 누구의 배낭보다도 훨씬 무거운 무게감으로 까미노를 함께 하고 있는 내 배낭을 담는 걸로, 주위를 한바퀴 도는 걸로 이별의 의식을 마감하고 새로운 까미노길로, 어느새 성큼 줄어든 그 길에 새로이 선다.

새로이 떠오른 햇빛에 발개진 철의 십자가 뒤로는 아직도 달이 건재하다

아름다운 다음 여정은 레온 산맥의 능선을 타고 한없이 걷는 길이다.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굽이굽이 펼쳐진 산맥들과 마을을 드나들 수 없을 것 같은 오지의 산촌 마을이 아주 가끔 보인다.

하산길에는 순례자를 위한 노천 바가 있고, 자신의 허름한 오두막에 온갖 나라의 국기들로 장식하고선 순례자가 지나갈 때마다 쎄요 스탬프로 유혹하는 할아버지가 있다.

점점 가팔라지는 내리막을 걸어서 출출할 때쯤에 닿게되는 엘아세보데산미구엘 El Acebo de San Miguel에서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요기를 한다. H양과 나도 점심겸 음료와 간단한 식사를 하고 있는데 그동안 잠깐씩 뵈었던 한국인 신사분들과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다. 부산에서 오신 S, H선생님, 그 S선생님과 까미노에서 어제 만났는데 알고 보니  동갑에 동향, 고등학교 동문이라는 캘리포니아에서 오는 C선생님. 모두 유쾌한 분들이다.

갈 길이 먼 그분들이 떠나가도록, 다른 순례자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뜨는 동안에도 H양과 둘이서 내일을 계획하면서 오래도록 해찰을 떨다가 일어나 다시 걷는다.

몰리나세까까지 남은 길이 자갈로 된 급경사 내리막이라 조심조심 발을 내딛어 작고 아름다운 마을 리에고데엠브로스 Riego de Ambrós를 지나고 다시 또 한시간을 걸어 몰리나세까에 도착한다. 누군가는 사막의 오아시스같다는 말로 표현한 강과 그 강을 건너는 예쁜 다리를 품은 너무도 아름다운 마을이다.  

내일 일정은 고될지라도 오늘 폰페라다가 아닌 이곳에 머물기로 한건 정말 잘한 결정같다.

숙소를 찾아가는 길에 바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그 세 분을 다시 만난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 우리도 시원한 생맥주로 갈증을 달래는데, C선생님은 이 마을이 너무 이뻐서, 강에서 수영도 하려고 우리가 이미 예약한 알베르게에 체크인했다 하시고, 두 분은 폰페라다의 호텔에 예약이 되어 있어서 7킬로 이상을 더 가야 한다고 심란해 하시면서도 밍기적거리고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또 웃기고, 그 와중에 우리 숙소에서 파는 라면과 소주까지 사서 챙기는 후배님이 웬지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S선생님이 다음번엔 사리아의 명물 뽈뽀 문어요리를 사주신다고 하고 떠나신 후 우리도 체크인에 샤워에 빨래에 마트에서 장봐다가 스파게티로 저녁을 해먹으면서 아쉬운 까미노의 하루를 마감한다.


점심 11.5

맥주 3

©️숙박 15

마트 9 스파게티


합계 38.5 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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