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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히르 Aug 22. 2024

8/21 까미노 20일차

아스또르가~라바냘데까미노_19.8km

Astorga~Rabanal del Camino


내일의 여정이 까미노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폰세바돈, 철의 십자가이므로 오늘은 철의 십자가를 8킬로 남긴 지점인 라바냘델까미노까지만 걷기로 한다. 철의 십자가를 넘어서 숙소가 있는 마을 엘아세보까지는 37km라 산길을 H양과 길게는 무리이므로 내일 동틀 무렵에 철의 십자가를 볼수 있도록 폰세바돈 전마을까지로 일정을 잡다보니 아마도 이번 여행의 제일 짧은 구간이 될 터이다.

내일의 험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가파른 오르막과 더 가파른 내리막을 장시간 걸어야 하는, 피레네 이후 두번째 난이도의 여정 전에 체력을 비축해 두는게 맞기도 하다.  


평소보다 조금 늦은 5시에 숙소를 나선다.  텅 빈 거리의 중세적인 아스또르가의 새벽은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가우디 궁전과 대성당을 지나 도시를 빠져나오면 깜깜한 자동차도로 옆길인데 오늘따라 그 새벽에 차들의 통행량이 제법 많아서 소음을 피해가기 어렵다.

까미노 출발도 전에 기내에서 에어팟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귀를 틀어막을 음악도 없이 조금은 지루하게 까미노 길을 걷는다.

동틀 무렵에 보니 풍경은 딴판이다.  이젠 메세타평원을 완전히 벗어나서 어느새 레온산맥이 성큼 주변을 차지하고 있다. 시골풍경도 황토빛 토지에 나무와 잡풀들이 이제는 한풀 꺾인 더위와 어쩌면 금방 덮쳐올 겨울처럼 한기를 내뿜고 있다.

8월 중순을 넘고보니 한국과 마찬가지로 아침은 제법 쌀쌀해서 얇은 바람막이를 챙겨야 한다.

그래도 20킬로로는 여유가 넘치는 길이다. 목적지까지 완만한 오르막을 한걸음 한걸음 철의 십자가에 다가간다. 이제 저만큼 멀리서 반짝거리며 기다리고 있는 철의 십자가를 대면하기도 한다. 내가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 이 길이 내 상처를 치유해줄거라는 믿음도 없이, 철의 십자가 앞에서 빌고 싶은 간절한 소망도 없이 무의미한 길이 될지도 모르는데 긴 시간과 돈과 열정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아직도 여전히 답답하다. 시간이 많으니 머리가 복잡해져오는 우울한 날이다.

까미노가 내게 무엇을 남길지, 후련함일지 치유일지 아쉬움일지 미련일지 희망일지 아직은 모른다. 50이 되도 늘 불안한 미래처럼 답은 없을지도...

정말 간만에 목적지에 일찍 도착해서, 체크인시간도 안되서, 알베르게 옆집 바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가진다.  

고도가 높아져선지 훅 시원해진 바람과 시원한 맥주와 적당히 허기를 채원주는 야채볶음밥이 있으니 이 아니 행복할쏘냐.

여행은 이렇게 감각에만 충실해지는 맛이 있어야 하지.


점심 14

숙박 10

저녁 14.5

마트 6.5 생수 바나나 빵 돌


합계 45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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