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짐

by ES




지난달까지 우리가 살던 집은 지은 지 3년밖에 안 된 신축 아파트로 안방에 작은 드레스룸과 샤워부스가 있는 욕실이 있었다. 드레스룸과 욕실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아래위로 넉넉하게 수납할 수 있는 수납장 겸 화장대가 있었는데, 아내는 그 화장대를 보자마자 연한 갈색 쿠션이 위에 붙어 있는 작은 스툴을 주문하며 몹시 행복해했었다. 화장대 앞에 그 의자가 놓이고, 아내는 거기에 앉아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말리고, 손톱을 다듬거나 가끔 책을 읽기도 했다. 나도 화장대 앞에서 머리를 말리거나 로션을 바르기도 했지만 다 해봤자 3분도 채 안 걸리는 일들이라 그 의자에 앉아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아내는 등받이도 없는 그 작은 의자에 자주 그리고 오래 앉아 있는 날이 많았다. 마치 그곳이 자신의 자리라고 내게 알려주기라도 하듯.



내 직장 문제로 새로 이사 한 곳은 지은 지 20년을 훌쩍 넘은 아파트였다. 안방에 작은 욕실이 붙어 있긴 했지만 샤워부스 같은 건 없었다. 세면대 수도꼭지에 연결되어 있는 샤워기는 사용하는 순간 욕실 전체에 물이 튈 게 뻔해 욕실 청소를 하거나 아주 긴급할 때만 사용해야 할 것 같았고, 드레스룸 대신 긴 붙박이장이 있었지만, 아내가 산 작은 스툴을 놓아둘 화장대는 없었다. 아내는 이사 오기 전부터 인터넷을 뒤져 오래된 아파트의 도면을 구하고, 우리가 갖고 있는 가구들을 어떻게 배치해야 할지 열심히 고민했다. 작아진 방 크기 때문에 서랍장의 서랍을 닫았을 때와 열었을 때, 장롱문을 활짝 열었을 때와 반만 열었을 때의 치수까지 꼼꼼하게 기록했고, 50cm 정도면 어느 정도인지 줄자를 바닥에 대고 직접 자신의 발을 대보며 가구가 놓였을 때의 모습을 상상했다. 아내가 프린트한 도면의 안방에는 침대 모양의 조금 큰 네모가 가로로 놓였다가 세로로 놓였다가를 반복했고, 서랍장 모양의 긴 네모도 벽면을 따라 오른쪽에 놓였다가 왼쪽에 놓였다가를 반복하는 바람에 최종적으로 어떻게 배치하기로 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아내뿐이었다. 아내는 한참을 고민하다 드디어 결정했다는 듯 도면 위에 진하게 네모들을 몇 개 더 그리더니 내게 말했다.



- 우리 침대 양 옆에 놓았던 작은 협탁들 말이야, 그거 하나는 그냥 붙박이장 안에 넣어서 수납장처럼 사용하고, 하나는 내 화장대로 써야 할까 봐.

- 그게 가능해?

- 응, 어차피 전신거울 둘 곳도 필요하니까, 그냥 당신 서랍장 옆에 전신거울을 세우고, 그 앞에 협탁을 두면 작은 좌식용 화장대가 될 것 같아.

- 근데 그러면 침대랑 협탁 사이가 너무 좁아서 그 사이에 앉을 수 있을까? 그냥 화장대를 하나 사지 왜?

- 사봤자 둘 데도 없어. 그리고 내가 날씬하잖아~



자기가 말해놓고 자기가 부끄러운지 눈가에 잔뜩 주름이 잡히도록 환하게 웃던 아내는 정말 그 좁은 공간에서 하루는 다리를 접었다가, 하루는 다리 찢기 하듯 양발을 주욱 벌린 채로, 하루는 침대에 걸터앉아가며 협탁으로 만든 그녀의 작은 화장대를 사용했다. 아내가 그 좁은 공간에 앉아 협탁의 서랍을 살짝 열어 얼른 필요한 걸 꺼내고 다시 닫고를 반복하고 있는 걸 볼 때면 많이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별다른 해결책도 없는 주제에 괜히 말로만 생색내는 것 같아 불편하지 않냐고 묻는 건 하지 않기로 했다.








- 뭐 해?

- 어? 나 손톱.

- 갑자기?

- 응.. 갑자기 하고 싶네.



얼마 전 화장대 앞 그 작은 공간에서 방바닥에 티슈 하나를 깔고 뭔가 꼼지락꼼지락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아내를 보았다. 의자에 앉아서 할 때와 사뭇 달라 보여 몰랐는데 아내는 손톱을 손질하고 있었다. 손톱 모양으로 생긴 스티커를 손톱 크기에 맞게 붙이고, 손톱 길이에 맞춰 다듬은 뒤, 전용 램프를 쬐면 그 스티커가 단단하게 굳으면서 젤 네일이 완성되는데, 네일숍에 가면 이런 게 최소 5만 원이지만 이렇게 셀프로 하면 만 원밖에 안 하니 얼마나 좋은 세상이냐며, 하지만 이것도 자기처럼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거라고 말하며 아내는 또 부끄러운 듯 환하게 웃었다.



- 어때? 예뻐?



연한 핑크색 바탕에, 가운데에 살짝 진한 핑크가 그러데이션 되어 오묘한 빛깔을 내는 열 개의 손톱이 안방 조명등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났다.



- 예쁘네.



내 대답보다는 스스로 만족스러운 게 더 큰 듯 아내는 자신의 열 손가락을 좌악 펼쳐 자기 눈높이까지 손을 올리더니 역시 관리의 힘은 대단하다고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자신의 화장대 앞으로 돌아가 바닥에 널브러진 스티커들을 주섬주섬 챙기며 작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 사실은 말이야.. 나 내일 정서랑 영경이 만나잖아. 내가 자격지심 같은 게 있나 봐.



정서랑 영경이는 아내가 이전에 다니던 직장 동료들이었다. 아내와 같은 부서에서 함께 일하며 친하게 지내던 동료들이라 아내를 데리러 갔을 때 나도 몇 번이나 만났던 사람들이다. 그때도 아내는 그 친구들을 부러워할 때가 많았다. 한 친구는 자기보다 어리지만 승진이 빨라 직급은 위라고 부러워했고, 한 친구는 유학파라 영어를 원어민처럼 잘한다며 부러워하곤 했다. 그렇게 말할 때면 늘 자기는 왜 이렇게 잘하는 게 없고 못났는지 모르겠다고 스스로를 탓하는 말들이 따라 나왔는데 그러다 감정이 격해진 날이면 눈물까지 뚝뚝 흘리곤 했었다. 처음엔 나도 당신이 왜 잘하는 게 없냐고 당신도 다 잘한다고 달래기도 했지만, 그러다 자기가 잘하는 게 뭐냐며 당장 3개만 대 보라고 갑자기 묻는 아내에게 아무런 대답을 못 해서 거 보라고, 진짜로 난 잘하는 게 없다며 더 크게 울게 만든 후로는 말을 더 아끼게 되었다. 아내는 그냥 어깨를 토닥토닥 두들겨 주거나 손을 꼭 잡아 주는 걸 좋아했다. 그러면 아내는 그 행위를 자신만의 언어로 해석해서 받아들이는지 고개를 끄덕끄덕하곤 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항상 어쨌든 우리 셋은 모두 퇴사가 꿈이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진정시키던 아내는 5년 전 회사를 그만뒀다. 셋 중 유일하게 꿈을 이룬 것이다. 그러니 표면적으로는 그들이 아내를 부러워하는 게 맞는 상황인데 갑자기 자격지심이라니… 왜? 나는 궁금하면서도 궁금하지 않은 마음이 들어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소리 내 대답하지도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아내는 내 마음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그렇게만 말하고 욕실로 들어갔다.








- 이따가 나 데리러 올 수 있어?

- 어디서 만난다고 했지?

- 강남

- 몇 시에 끝나?

- 5시에 만나니까… 모르겠네?

- 알겠어. 만나는 장소 보내줘. 데리러 갈게.

- 응~ 땡큐~



아내는 먼저 나가는 내게 이따가 데리러 올 수 있는지 물었다. 사실 예정된 일정대로라면 아내를 데리러 갈 수 없었지만, 전날 아내가 혼잣말처럼 했던 ‘자격지심’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려 일정을 조정하기로 했다. 현관문을 나서는데 하루 종일 옷장 앞에서 이 옷을 입었다가 저 옷을 입었다가 어쩌면 이렇게 입을 옷이 없냐고 투덜댈 아내의 모습이 그려졌다.



저녁 여덟 시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메시지를 보내려다 아내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일부러 통화버튼을 눌렀는데, 주변의 소음과 함께 ‘여보세요’ 하는 아내의 밝은 음성이 들렸다. 생각보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홉 시쯤 끝날 것 같다는 아내의 말에 알겠다고 도착하면 연락하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9시쯤 끝난다던 아내는 9시 30분이 되어서야 밖으로 나왔다. 아내는 술집 앞에 서서 두 명의 여자를 번갈아 가며 안아주고, 다시 손을 잡으며 인사를 나눴다. 두 명의 여자는 둘 다 정장 바지에 구두, 긴 코트를 입고 있었다. 한 명은 그레이, 다른 한 명은 브라운. 백화점 여성 코너에 있는 마네킹이 입고 있었던 것 같은 코트였다.



아주 오래전 딱 한 번 아내가 백화점에서 그런 코트들을 보고 너무 예쁘다며 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한번 스윽 만져보더니 코트의 가격표를 보고는 눈이 동그래져서 바로 내 팔을 끌고 나왔던 기억이 있다. 나는 도대체 얼마길래 그러냐고 묻고 싶었지만 동시에 묻고 싶지 않았다. 아내 또한 끝내 말하지 않았지만 그 후로 아내는 백화점에 가도 여성 코너는 아예 가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내는 가끔 내게 혼잣말하듯 물었다. 자기도 죽기 전에 백화점에서 옷을 살 수 있겠냐고. 그런 날이 올 것 같냐고. 나는 올 거라고 올 수 있다고 말하지 않고 그저 아내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아내가 그게 언제냐고 물으면 또 대답할 수 없었으므로.



그레이와 브라운 컬러의 코트와 멋스럽게 어울리는 그들의 가방은 아내가 들고 있는 천가방과 달리 명품백이라는 걸 나도 알 수 있었다. 아내는 청바지에 운동화, 뽀글뽀글한 털이 꼭 푸들 같은 점퍼를 입고 있었다. 얼마 전 나랑 마트 갈 때 입었던 옷이었다. 기껏 손톱에 스티커까지 잔뜩 붙여놓고 아내는 왜 저걸 입고 갔을까? 저 옷에는 그냥 맨손톱이 더 어울리는 거 아닌가? 갑자기 그날 아내가 작게 말했던 ‘자격지심 같은 게’ 뭔지 내가 알아버린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고 보니 아내가 퇴사한 후에는 정장을 차려입은 걸 본 적이 없었다. 아내의 말처럼 아내는 날씬하고 옷맵시가 좋아 보세로 산 오피스룩도 명품처럼 잘 소화해 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내는 늘 지하상가에서 만 원 주고 산 블라우스를 10년 넘게 입었고, 겉옷도 10만 원만 넘으면 너무 비싸다며 손사래를 쳤다. 덕분에 우리는 작은 집이나마 마련할 수 있었지만, 나는 그런 아내가 고맙고 좋으면서도 좋지 않았다. 그래서 결혼 10주년엔 당신도 명품백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며 억지로 끌고 가 명품백을 하나 사줬는데, 아내는 그걸 장롱 안에 고이 모셔두기만 할 뿐 들고나가는 일이 없었다. 그건 왜 들지 않냐고 물으면 퇴사 전엔 아까워서, 퇴사 후엔 들고나갈 데가 없다고 했던가. 오늘 같은 날 들고 나왔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는 사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했고, 아내는 금세 내 차를 향해 뛰어왔다.



- 미안. 많이 기다렸지? 얘기하다 보니까 시간이 이렇게 갔는지 몰랐어.

- 괜찮아. 재밌었어?

- 응. 오랜만에 보니까 좋더라. 옛날에 셋이 같이 일하던 것도 생각나고.

- 다행이네.

- 걔네가 자기는 아직도 이렇게 맨날 데리러 오냐면서 나보고 공주님 팔자래~



자기가 말하고 또 부끄러운 듯 웃는 아내에게 나는 왜 옷을 그렇게 입고 갔냐고, 그럴 거면 굳이 손톱은 왜 했냐고, 이런 날 명품백을 들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가만히 아내의 손을 잡으며, ‘공주님 팔자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내 공주님인 건 맞지’하고 대답했다. 아내는 ‘자기 뭐야~~~’ 하며 아까보다 더 부끄러운 듯 크게 웃었고, 그런 아내를 보며 나는 앞으로 이런 말은 아끼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