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오 디자이너 오필리에 클레르 & 프랑소와 알라리
지난 수년간 유럽과 전 세계를 휩쓸어온 패스트패션의 무시무시한 파고 속에서 당당하게 그 존재감을 키워나가는 젊은 프렌치 시크 대표주자이자 컨템퍼러리 브랜드 데바스테(DÉVASTÉE). ‘프랑스의 꼼데가르송’이라고 불리는 이 브랜드를 알게 된 것은 김정아 스페이스눌 대표(상자기사 참조)를 통해서다. '스페이스 눌'이라는 패션기업이자 수입 편집 매장을 운영하는 김 대표는 자신이 운영하는 10여 개에 달하는 브랜드 중 유독 이 데바스테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곤 했다.
이 브랜드를 디렉팅 하는 크리에이터 오필리에 클레르 & 프랑소와 알라리(Ophelie Klere & Francois Alary) 커플 디자이너에 대해 얘기할 때는 그의 눈에 하트가 뿅뿅거리고 톤이 높아진다. "얼마나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만드는 옷이나 이 친구들 하는 짓이나..^^" 늘 새로운 브랜드를 찾아야 하고 수많은 브랜드들을 믹스해 운영하는 편집매장 특성상 정말 많은 이들이 스페이스눌과 김 대표의 손을 거쳐간다.
개중에는 오랫동안 함께 해 온 브랜드, 디자이너도 있지만 잠깐 스쳐간 이들도 많다. 함께 하다 보면 어차피 판매하는 그들의 입장과 바잉 해오는 클라이언트 입장이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 늘 달라지게 마련. 중소기업 특성(?)상 아무리 좋은 브랜드를 발굴해 애지중지 키워도 큰 기업에 우선권을 빼앗기거나(훨씬 더 좋은 조건(더 많은 돈과 물량 보장, 좋은 매장 개설 등 각종 감언이설)을 제시해 가로채 가기가 일쑤) 크리에이티브한 이들의 변덕으로 마음이 바뀌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무채색 컬러 중심, 삶과 죽음 표현한 그래픽 유머
그럼에도 수많은 브랜드 중 데바스테와는 11년간 한결같은 관계를 유지함은 물론 세월이 지날수록 이들 간의 신뢰는 더욱 견고해져 왔다. 일찍이(아직 무명시절) 이들을 발굴해 거의 키워오다시피(?) 한 탓이기도 하지만 디지털 세대에 속하는 이 디자이너들의 성향은 무척 아날로그적이다. 디지털을 '침략(인베이전)'이라 표현하는가 하면 마케팅 지향적인 요즘 디자이너나 브랜드에 대한 반감을 숨기지 않는다.
듀오 디자이너는 자신들의 창조작업에 더 몰두하기 위해 2014년 판권을 일본 온워드카시야마에 넘기는 순간에도 김 대표에 대한 무한신뢰를 '한국만은 예외' 조항으로 계약서에 단서를 달았다. 미래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아냐(Anya, 김 대표의 영어 이름)와 함께 만들어갈 멋진 계획이 있다"라 밝히고 심지어 "아냐가 세명이면 좋겠다"라고 말할 정도로 김 대표에 대한 이들의 애정과 신뢰는 각별하다.
이렇듯 듀오 디자이너와 김 대표는 비즈니스 관계이지만 동시에 아주 특별한 관계다. 컬렉션 초기에 이들의 잠재력을 믿고 일찌감치 신뢰를 쌓아왔으며 바이어 입장에서의 냉정한 조언은 물론 미래 전략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을 나눈다. 거의 함께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로맨틱 하이스쿨 커플이자 오랜 협력 파트너
최근 유럽시장에서 주목받는 데바스테는 무채색 컬러를 기본으로 한 독특한 패턴과 과감한 컷팅으로 개성 있는 디자인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블랙& 화이트 두 가지 컬러만을 사용하지만 자칫 무거워지기 쉬운 콘셉트를 유머와 위트로 가득한 그래픽 프린트 패턴으로 상쇄한다. 사랑과 유머, 심지어 삶과 죽음 등의 다양한 감정에서 영감을 받아 이를 재해석한 발랄한 패턴과 독특한 소재 사용, 실루엣의 완성도가 특징이다.
디자인부터 생산까지 거의 프랑스에서 작업, ‘made in France’의 밸류를 지켜나간다. 온워드카시야마에 판권을 넘긴 이후 온워드의 대표 멀티숍 '비아버스탑'의 넘버원 브랜드로 성장했다. 세일 전에 75%가 판매되고 세일하면 완판 될 정도로 일본에서 판매 실적이 좋다. 파리에 플래그십은 없으나 팝업과 컬레버레이션을 왕성하게 진행한다. 백화점에서는 가격대로 봤을 때 하이 컨템퍼러리 럭셔리에 속하며 꼼데가르송, 넘버21, 르메일 등과 함께 구성된다.
이 디자이너 커플은 로맨틱하게도 고등학교 때부터 사귀어온 오랜 연인 사이이자 협력 파트너다. 이들의 인생과 일은 아주 긴밀하게 밀착돼 있다. 마치 쌍둥이처럼 함께 일하고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두 디자이너가 최근 새롭게 삶의 둥지를 튼 곳은 파리 근교 리모뉴(Limogne). 파리에서 한 시간 거리인 이곳은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 중 하나로 가장 아름다운 코스로 유명하다.
고향이기도 한 이곳에 이들은 최근 작업실을 겸한 집을 마련했다. 이 집은 데바스테의 현재와 미래를 잘 표현한다. 향후 데바스테가 가야 할 궁극의 '라이프스타일'을 이 집에 고스란히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인터뷰는 이 새 집으로 특별히 초대 받은 김 대표의 도움을 받아 이메일로 진행됐다.
-당신들의 일과 인생은 긴밀하게 연결돼있는 것 같다
“우리의 커리어와 개인사는 서로 완전히 결합돼 있다. 그 두 가지는 사실상 분리가 불가능하다. 우리가 만났을 때 우리는 프랑스 남서부 리모뉴의 고등학교 학생이었고 당시 특별히 패션에 관심은 없었다. 하지만 우리 둘이 함께 인생을 살게 될 줄은 알았다. 우리의 첫 번째 단계는 파리로 이사하고 패션을 공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패션계를 보니 독특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에스모드 파리에 들어가서 오필리에는 RTW(기성복) 우먼스 웨어를, 프랑소와는 무대의상을 전공했다. 공부하면서 우리는 인턴으로 이런저런 회사에서 일했다. 오필리에는 에릭버저의 디자인 스튜디오에 이어 마틴 마르지엘라에서, 프랑소와는 가톨릭 신부들을 위한 예배복을 만드는 회사에서 일했고 국립 오페라에서 발레의상을 만들기도 했다. 재미있고 독특한 경험이었지만 인턴십을 하며 깨달은 것은 현존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아니라는 공통된 느낌이다. 다른 이들의 아이디어 속에서 일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2003년 6월 졸업하고 다음 해 7월에 우리는 이미 첫 번째 컬렉션을 시작했다. 첫 번째 데바스테 컬렉션은 2004년 이에르 페스티벌(Hyères Festival,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의 작은 도시인 이에르에서 열리는 패션 콘테스트)의 최종 후보로 노미네이트 됐다. 하지만 그것은 잘 팔기 위해 상업적으로 만든 것은 아니고 단지 우리의 시작을 보여주고 싶었다. 온전히 블랙, 엄격한 테일러링 무드, 그림과 활자 등을 자수와 핸드프린팅으로 표현했다. 우리는 다음 시즌 파리 랑데부에 초대됐다.
이후 첫 시즌에 바로 프랑스 일본에서 판매를 시작하고 점차 전 세계로 확장됐다. 처음 세 번의 컬렉션은 온전히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냈다. 오필리에는 공장이 아니라 집에서 재봉틀로 모든 조각을 완성하고 패키징까지 해서 상점으로 직접 배송했다. 그것은 미친 경험이었지만 매우 성공적이었고 이후 작업에도 큰 도움이 됐다. 우리의 레이블에 대한 진정한 시작이 된 것이다.
-원 디자이너 컴퍼니에 비해 듀오 디자이너의 장점은 무엇일까
“우리는 함께 살고 함께 창조하기 때문에 삶과 창조물 사이에 단절이 없다. 우리의 삶과 크리에이션은 하나다. 이것은 항상 우리의 세계 속에서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아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삶 그 자체다. 우리는 직장을 따로 두지 않고 그럴 생각도 없다. 집 1층이 작업실이고 2층이 집, 3층이 게스트하우스다.
새로운 컬렉션에 대해 아이디어를 찾거나 특별한 의문사항을 분석해야 할 때는 바로 옆에 숲이 있어서 자갈길을 걸으면서 긴 산책을 한다. 꿈에서 본 것, 자연에서 느끼는 것 등을 함께 나눈다. 집 근처에 생소한 느낌과 인스피레이션을 줄 수 있는 곳을 거니면서 얘기한다. 이런 생활 방식은 우리가 크리에이션 하려는 방향으로 꾸준히 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디자이너들은 시즌별로 유행과 트렌드에 따라 영향을 받고 자신을 희석하곤 하는데 우리는 그런 것을 싫어하고 반대한다. 우리의 디자인에 있어 가장 특별한 것은 테마, 미학관 등이 변치 않고 지속적이라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다른 곳과 차별화되고 컬렉션이 재미있지만 이렇게 하나의 방향으로만 가는 것은 패션이 아니고 매년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의견에 반대한다. 미학관 세계관을 점점 깊게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지 이리저리 변하는 것은 아이덴티티가 아니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여러 가지 트렌드, 크리틱 등에 의해 흔들리다가 자기만의 스타일을 디벨럽 할 수 없게 되고 결국은 자기 색깔을 잃어버리고 만다. 우리도 한 사람이었으면 흔들릴 수도 있었을 텐데 계속 디스커스 하면서 우리의 그것이 넓어지고 깊어진다. 이것이 둘이 일하는 가장 큰 강점이 아닐까.”
- CEO 또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둘의 역할분담은
"우리 둘의 롤은 정확히 나뉘어있지 않다. 플랙서블 하며 상황에 따라 정한다. 심지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한다. 우리가 하는 창조의 가장 중요한 파트는 특정 아이템을 만들자, 혹은 어떤 드로잉, 캐릭터를 쓰자 가 아니라 그전에 어떤 무드로 이번 컬렉션을 갈지, 우리의 미학관이 지난 시즌보다 어떻게 발전하고 어떤 의미를 갖는가 등이다. 돈을 벌지 안 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 컬렉션을 위해 어디에 가서 영감을 받고 누구와 함께 일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세계관을 이해해주는 이들과 함께 하는 것, 그들과 얘기하고 우리의 세계관을 이해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게 해서 나오는 디자인 컬렉션 작업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이 진원지가 되며 또한 상품이 된다. 그 외의 다른 모든 면들은 디테일일 뿐이다. 그래서 일을 나누는 것은 그때그때 누가 더 잘할 수 있느냐에 따라 나눈다.
그렇다고 우리가 항상 똑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관점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다. 종종 이견도 있지만 그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적이고 사소한 것들이다. 그런 얘기들을 나누다가 더 많이(강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맞는 경우가 많고 다른 사람이 양보를 하곤 한다.
보통 미학적인 것과 세계관의 차이일 때는 오랫동안 토론하기도 하는데 사소한 것들은 보통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이긴다. 사실 우리의 관심사는 아주 다르다. 프랑소와는 보다 아티스틱하고 추상적이고 오필리에는 좀 더 실용적이다. 미학적인 세계관은 공유하지만 관심사가 다른 경우가 많아서 서로 심하게 논쟁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김 대표가 볼 때 드로잉과 매 시즌 달라지는 패턴 아이콘 같은 패브릭, 패턴은 프랑소와가, 다시 그것을 옷으로 만들어내는 것과 보다 실용적인 파트는 오필리에가 담당, 즉 조금 더 비즈니스적인 사람이 오필리에, 프랑소와는 아티스트에 가깝다고)
-소재 등 협력 파트너사와의 작업이 중요해 보인다
“우리의 패브릭 협력회사에 대한 결정은 아주아주 신중하다. 우리만 볼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 성공적인 결과의 핵심은 과연 협력회사가 이것을 해줄까 안 해줄까 가 아니라 이 공장이 그동안 무엇을 만들었나, 독특한 차별성이 무엇인가를 엄청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장인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고 우리 아이디어도 얘기하는 등 대화 과정이 아주 길다.
때로 그들이 보여주는 것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지만 우리의 창조성과 상호보완이 될만한 하나의 에센스(박음질 퀄리티가 아주 좋아서 디자인만 디벨럽 하면 된다던가)를 살펴본다. 앞으로 함께 해서 발굴할만한 것을 캐치해내고 그것을 우리의 세계관 속으로 받아들여서 나온 결과물들은 항상 어메이징 하다. 직물 회사와 협력하고 좋은 소재를 창조해 가는 과정을 함께 하는 것은 항상 우리 활동의 가장 중요하고 매력적인 측면 중 하나다.
글로벌 전략과 계획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모든 것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한국의 아냐처럼) 글로벌 마켓 혹은 아시아 마켓을 어떻게 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그에 따라 사람을 고용하는 게 아니다. 현재 우리는 한국 마켓을 위한 흥미진진한 플랜이 있지만 아직은 시크릿이다. 우리의 계획은 늘 특별한 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플랜을 계속 디벨럽 하는 중이다.”
-디지털화 등 최근 세상의 급격한 변화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나
“지난 15년 동안 우리는 고대 세계 문화가 완전히 붕괴되는 것과 비슷한 양상을 목격했다. 일례로 그리스 고전주의적 문화의 기둥처럼 파괴되고 폭파되고 조그만 조각들과 남아있는 폐허(유적) 같은 것들이 인터넷에 퍼져 있다(매우 은유적인 표현). 괜찮은 코어들이 남아있긴 하지만 모두 자기식대로 해석하고 퍼지고.. 그러면서 그리스 로마문명이 망하고 파괴되고 발굴되는 것처럼 새로운 혼란에 빠져 있다.
지금까지는 디지털 침략(인베이전)으로부터 우리의 창의력을 보호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여왔다. 디지털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창조와 라이프가 분리되지 않은 우리의 생활스타일에 맞지는 않다. 지금까지 우리는 디지털보다는 패션쇼, 전시, 팝업, 책, 컬래버레이션(모노프리(프랑스 대표 슈퍼마켓 체인), 이세탄 백화점 등).. 이런 좀 아날로그 스타일을 통해 우리의 세계를 보여줬지, 디지털을 통해 우리를 확 보여주겠다는 생각은 없다.
심지어 데바스테 X 모노프리 크리스마스 컬렉션을 위해 만든 유령 기차를 한정판으로 만들어 히트를 쳤지 사실 디지털 마케팅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우리의 마음 속에 디자이너로 남는다는 것과 사업가나 마케팅 담당자로 남는 것은 양립이 불가능하다. 이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른 세계다. 디자이너는 '라이프스타일'과 '세계관'이 우선인데 비즈니스는 '넘버'와 '돈'이 중심이다. 이 두 가지가 공존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신념을 가지고 데바스테를 만들었고 지금도 그 세계를 세워나가고 있다. 온라인의 영향 역시 마찬가지다. 같이 일하는 협력회사들로부터 그런 어려움을 들어서 우리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온라인 스토어를 갖고 있지도 않다. 어쩌면 전략적으로는 만드는 게 맞을 수도 있겠지만 아직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지금부터 모든 것들이 새로운 구조를 띠게 될 것 같다. 이 모든 변화들에 대해 어떤 예측을 하거나 의견을 갖기는 어렵다. 우리에게 이런 변화에 대한 의견은 무의미하다. 어떤 새로운 시대가 오던 우리의 미학적인 관점과 세계관을 따르면서 거기에 대응(반응)하면서 계속해서 그것들을 우리의 크리에이티브 챌린지의 모티브로 삼겠다.”
-비즈니스 구조를 라이선스로 바꾼 이유는 무엇인가
“몇 년 전 우리는 디자인에만 포커스 하고 싶어서 기술적이고 재정적인 것을 일본 온워드 카시야마에 넘겼다(한국을 제외한 월드와이드 권한). 이후 라이선스 프로세스를 통해 작업을 시작했다. 우리가 이번 시즌 이런 패브릭 이런 패턴을 하겠다 하면 온워드가 프랑스 일본 이태리에서 만들어준다.
과거에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직접 다 해내면서 너무 힘들었는데 지금은 온워드가 이를 대신해주고 우리는 디자인에만 몰두한다(물론 이후 너무 커머셜 해져서 고민 중이긴 하지만). 데바스테의 장점은 두 디자이너로 이뤄진 가벼운 구조를 갖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큰 기업의 오너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회사를 키우고 또 언젠가 매각하는 등의 이슈에는 큰 관심이 없다. 가끔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들의 인터뷰를 보면 무시무시하다. 어떤 크리에이터는 “만드는 것이 10%, 90%는 비즈니스다”라고 하는데 이런 말을 들으면 끔찍하다.
창조는 우리에게 늘 가장 중요하다. 모든 예술가나 디자이너가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게 되는 순간 큰 덫에 걸리게 된다. 밑에 직원들을 두고 회사를 빌딩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으로 우리는 두 사람이 항상 참여하고 둘의 디자인 크리에이팅에 집중한다. 모든 것을 우리 둘이 수행하는 만큼 프로덕트 하나하나가 너무나 소중하다. 아이템 하나를 ‘찍어내는’ 게 아니라 모두가 우리의 정신적인 자식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비즈니스 관계라 해도 우리 세계관을 이해해주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람들, 브랜드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발전을 도와주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생각과 사고방식을 이해해주는 협업사들이 매우 중요하다(우리는 그래서 한국 시장을 다른 기업에 넘겨주지 않는다)."
-패션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준비하고 있나
“사실 요즘의 많은 변화들은 우리 둘만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서 라이선스 시스템에서 작업하기 시작했고 온워드카시야마에 마케팅 등을 맡기게 됐다. 일본 미국 유럽의 빅 멀티 스토어들이 우리 클라이언트였는데 2014년 그들이 문을 닫는 모습을 보았다. 그동안은 빅 럭셔리 브랜드들이 멀티숍에 들어가 있었으나 더 이상 멀티숍에 팔지 않고 자신의 스토어에만 상품을 넣고 인터넷으로 팔기 시작했다. 그때 비즈니스 모델의 큰 흐름이 바뀌고 있음을 확실히 느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트렌드에 편승하기보다는 독창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자인은 우리가 하고 컨펌하되 나머지 라이선싱이나 마케팅 등은 대기업에 맡기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럭셔리 하우스도 아니고 그들처럼 하려면 엄청난 광고 마케팅 툴도 필요한데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 광고를 진행하는 브랜드들의 컬렉션을 보면 오리지널 하지도 않고 새로운 것을 보여주지도 못한다. 현재 우리 제품도 온워드에서 온라인으로 판매하고 있고, 또 불티나게 팔린다. 데바스테를 사가는 몇 개의 온라인 숍의 판매는 매우 역동적이긴 하지만 우리가 직접 온라인 마케팅을 할 생각은 아직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션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패션디자인을 다른 모든 영역과 분리하지 않고 시작하고 진행한다. 우산 식기 숟가락 퍼니처 캔디 스티커 스테이셔너리 쿠키 블랭킷 양초 모바일폰 케이스… 이 모든 것을 디자인해봤다. 우리의 세계관에서 입는 것, 드는 것, 먹는 것, 쉬는 것, 건강 챙기는 것 등은 모두 패션과 분리된 게 아니라 하나로 연결된다. 그것이 패션의 미래라고 확신하며 따라서 앞으로 우리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있으리라 본다. 그것은 응집력과 완전한 미적 세계의 일부가 돼야 한다.”
*오필리에 클레르 & 프랑소와 알라리 프로필
오필리에 82년생, 프랑소와 81년생
1999년 프랑스 CAHORS 고등학교 동창으로 만남
2000년~2003년 6월 파리 에스모드 패션스쿨 졸업
오필리에는 RTW 여성복 전공, 프랑소와는 무대의상 전공
2002년 오필리에 마틴마르지엘라 재직, 프랑소와 국립오페라 무대복 제작
2004년 7월 데바스테 첫번째 컬렉션 시작
2004년 이에르 페스티발 최종 후보로 노미네이트
일본 판매를 시작으로 점차 전 세계로 확장
2009년 스페이스눌과 한국 판매 시작
2014년 일본 온워드카시야마에 한국을 제외한 월드와이드 판권 넘기고 현재는 리모뉴에서 창조작업에 매진
*김정아 스페이스눌 대표는?
브랜드 데바스테를 국내 도입 전개하는스페이스눌 김정아 대표는 2007년부터 패션기업을 운영해온 CEO이자 직접 상품을 바잉하는 바잉 MD이기도 하다.
현재 신세계백화점이 수입하는 에르노를 국내 처음 소개한 것을 비롯해 메릴링, 보라악수, 코텔락, 스테판슈나이더, 데바스테 등 주로 컨템퍼러리 브랜드들을 편집한 '스페이스눌'을 운영한다. 딴짓 안하고 열심히 우물을 파온 결과 대기업도 휘청거리는 요즘, 작지만 단단한 기업을 즐겁게 경영한다.
보수적이고 노하우를 잘 공유하지 않는 패션업계 상황이 안타까워 패션 MD 책을 세권이나 펴냈다(아래 링크 페이지 참조). 서울대와 동 대학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 러시아 문학 박사라는 신기한 이력의 소유자이며 '도스토예프스키를 너무나 짝사랑'해 그의 책을 번역하기도 했다. 매일 꼭두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거나 집필하는 두 얼굴의 경영인으로 요즘은 이어령 박사와의 공동집필로 새로운 열망의 새벽을 보내고 있다.
참조 http://www.fashionbiz.co.kr/article/view.asp?idx=168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