内幕

이그저기記

by kieroon




깊은 잠, 한 번도 깨지 않고 꾼 꿈 축축해진 등 더리 얼룩진 잔여감. 공포스러운 영화를 보다가 한 장면에서 빠져나와버리고 말았던, 독립극장 앞에 서서 내내 매료되었던 여름밤의 습우濕雨. 동네에서 제일 가까운 사찰 마당 차가운 간이의자에 앉았는데, 쌀쌀米米한 입춘 저녁 6시 예불을 알리는 둥둥 두두 다다 다 탁 탁 울리던 황홀한 텐션의 북소리. 같은 날 오후 지나치는 길에 선뜻 들어섰던 을지로 길가 미술관 2층 구석에 리투아니아 작가의 석양빛 이미지. 피부에 스미던 흥미로운 에너지. 집으로 돌아와 1시간 같은 7시간을 꼬박 읽었던, 알게 된 지 이제 겨우 이틀 된 베트남 작가의 장편 소설과 시. 익스프레스 지하철, 우등 고속버스와 새벽 KTX열차 타고 초대받은 장소로 가면서 마주쳤던, 먼빛 환해진 얼굴과 미소, 웅성이는 귓가의 높고 낮은 목소리. 더딘 맨 손가락으로 찾던 싸늘한 겨울아침의 뷰파인더, 아주 좁은 유리창 흐릿한 착상想을 들여다볼 적에 목깃을 두드리며 타닥인 싸리눈발. 낯선 벽돌길 가로등 지나 먼저 다가오던 로맨틱한 거리감.





이異this it그其



that저底 기記record





이그저러한 이유 때문인지 써 내린 글들의 대부분이 네 글자로부터 온 이야기들이 많다고

생각한 순간 '이그저記'라 소리 내 읽어보고 어떨까, 그래서 지어 본 연재의 닉네임. 이 그 저 기.


자연, 인간, 비인간, 사물, 공간, 상호의 작용을 하는 수억만의 제각기 다른異 신비로운 존재들,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사건들, 이미 알려졌거나 한 번도 알려지지 않은 내막內幕들, 시공을 넘나드는 갈림길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모든 것其들, 근본底을 지탱해 주는 뿌리, 초석 같이 단단하게 받쳐주는 끄떡없는 것들. 화석이나 조개껍데기, 이끼와 보물처럼 축적된 지층의 틈새마다 파묻힌 시차가 때로는 아련한 질감이 되어 홀연히 나타나기도 하는 기이한 사물들과 현상들!


토쿄, 2000년


글을 쓰면서 빈번히 방문하는 삼천포, both mentally and physically. 홀로 솟아오른 반들반들한 바윗 돌

박힌 갓길에 조용한 정자, 그 아래 흐르는 천변에서 오래전 검劍을 닦던 한 쌍의 청둥오리와 백로의 자태를 만나기도 한다. 주체가 누구이고 무엇이건 간에 아득함의 어떤 정서가 일어난다. 멀리에서는 봉우리 닮은 수면 위 불룩한 생명체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막상 가까이 가서 보니 생물은커녕 천 밑바닥에 드러나지 않던 거대한 너럭바위들이 서로 부딪쳐 걸터앉은 _아마도 몇 백 년 전_그대로의 형상이다. 확실하게 근접해서 곰곰이 바라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좌표를 찍은 자리에서 빛의 방향과 광질을 체크한다. 그늘 밑 이끼로 덮인 검푸른 바위의 외막과 내막을 확보해 전경에 셋업 하고, 저녁의 차분한 빛감을 원경으로 밀어내 한 컷, 차알칵. 아무리 쳐다봐도 지는 해와 어우러지는 뭉게구름은 언제나 비현실적이다. 비주류 본능의 넌센스를 좋아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까.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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