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가 지역사회에서 일하면

죽음을 마주하지 않겠지?

by 이솔티


나는 간호사가 되기로 마음 먹은 후, 이 길을 선택해서 걸어왔다.

그러나 그 길에서 마음이 가난해지기도 했다.



오랜 시험 준비를 마치고 임용장을 받았을 때 나는 당연히 보건소로 가리라 생각했다.

임용장을 받아 확인한 발령지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 '복지관련 과'였다.


눈을 의심했다.

나는 '나만 다른 발령지'에 당황했으나,

곧 설레었다.


보통 간호직은 보건소, 보건지소, 시립병원으로 발령난다. 가끔 서울시청으로 발령이 나기도 하지만 특수한 경우이다. 내가 발령받은 자치구의 구청에는 간호직 자리가 없었다. 내가 첫 타자인 셈이다.

타 자치구에서는 이미 자리 잡고 있는 상태였고, 자리 잡아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마찰에 대해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들리는 것은 아무래도 안 좋은 이야기였다.

간호직이 왜 복지 업무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간호직들의 반발과 그 반발로 복지 업무를 묵묵히 하는 간호직들의 고생이 들려왔다. 그리고 간호직이란 자체로 서러움을 겪었다는 소리도 들렸다.


나의 행동이 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간호직 전체에 대한 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어떤 간호직으로 평가 됐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자리에 있을 때 나름의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만약 그 노력이 부족해 보였던 이가 있어 날 욕한다면 뭐 어찌할바있나..


병원에선 늘 환자의 곁을 지켰지만, 구청에서 마주한 현실은 달랐다. 계획을 세우고, 서류를 작성하고, 1년 치 사업을 스스로 설계해야 했다.


루틴 없는 업무, 주어진 답이 없었다. 특히 이 복지 업무는 담당자의 주관의 영향력이 크다.

행정업무의 경우 대부분 규칙, 규정, 법의 테두리 안에서 대부분 업무가 가능하다. 하지만 사회복지일은 담당자가 이 대상자의 삶을 들여다보고, 검토해서 어떤 자원을 어떻게 연결해야하는지, 심도 있게 고민해야한다.


사회복지 신 사업을 맡으면서 고군분투했다.

잘하고 싶은 욕심이 컸다. 신 사업이다 보니 시스템도 엉망이었다. 그 엉망은 나의 일을 두세 배로 늘리기도 했다


내가 맡은 신 사업은 간호사와 사회복지사가 함께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서류를 보면 간호/보건과 관련된 부분은 거의 없었다. 결국 나는 이 사업 운영을 맡는 서울시복지재단에 ‘왜 간호사를 앉혀놓고, 어느 서류에서도 간호/보건 지식을 활용하여 작성하는 부분이 없는지'를 말했다. 심지어 비의료인도 측정할 수 있는 혈압, 혈당을 간호사인 우리는 측정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보건복지부에 담당 사무관에게도 전화를 했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하였다.(현재는 가능하다. 이 사업의 간호사는 보건소 소속이 아니라 동주민센터, 구청 소속으로 의사가 지도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왜냐면 우리는 의사의 지도 지시 아래에서 간호 활동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간호사 면허증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할 수 없다는 현실이 답답했다.


지금은 간호사가 지역사회에서 영역을 확대해 가는 과정 중의 하나라 생각되지만,

그때 당시에는 마음이 점점 가난해지기만 했다.









사실 나는 간호사가 지역사회에서 일 한다면 죽음을 더 이상 마주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복지 업무를 하면서 도움받지 못한채 죽어가는 이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 일어나는 재난으로 사람이 죽으며, 남은 자들의 슬픔까지 지역사회에서 직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병원에서 본 인간의 죽음이 지역사회에선 없을 것이라 생각한 내가 참 어리석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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