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 놀랍게도 정석이었다
“만약 데킬라를 아주 많이 먹는다면, 당신은 뭐든 할 수 있습니다”
-하비에르 모랄레스의 수상소감 중
2009 이그노벨상 화학 부문
멕시코의 하비에르 모랄레스, 미구엘 아파티가, 빅터 카스타뇨
멕시코의 한 과학자가 자기 방에서 노트를 펴두고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의 노트엔 에탄올과 다이아몬드가 포함된 화학식이 쓰여 있었다. 그는 실험실 다이아몬드에 대해 연구하던 하비에르 모랄레스였다.
그는 누에보레온 자치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800km나 떨어진 멕시코국립자치대학교의 빅터 카스타뇨 교수 연구실과 협업을 하게 됐다. 그래서 매 달 한번씩 그는 장거리 여행을 떠나야 했다. 그렇게 멀리 날아가서 해야했던 그의 임무는 “새로운 방법으로 다이아몬드를 합성할 것” 이었다.
그는 자신감이 넘치던 차였다. 사람들이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던, 아세톤을 이용해서 다이아몬드를 만드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순서로, 그는 에탄올을 이용해서 다이아몬드를 만들어보겠다고 화학식을 세워보던 차였다.
이 때, 고심하던 모랄레스에게 아내가 말을 건넸다. “여보, 우리 테킬라 사야해!” 이 말을 들은 하비에르 모랄레스는 뜬금없이“어! 테킬라로 할수 있겠다!” 라는 말을 뱉었다. 당연히 아내는 “뭔소리야?”라고 반문했고, 모랄레스는 “아니야 신경쓰지마”라고 답했다. 막막하던 모랄레스의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모랄레스는 데킬라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거였을까?
실험실 다이아몬드 만드는 법
다이아몬드는 100% 탄소로 되어있는 결정체이다. 탄소는 4개까지 주변 원자와 결합할 수 있는데, 그 4개가 전부 탄소인 덩어리의 경우 다이아몬드라고 부른다.
그래서 실험실 다이아몬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탄소들끼리 모아서 서로 결합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건 탄소를 가지고 있지만 더 저렴한 물질이다.
모랄레스는 이 때 아세톤, 메탄올, 에탄올등의 유기물을 이용해서 다이아몬드를 만들 궁리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탄소를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 주위에서 팍팍 쓸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하다. 그러나 탄소 하나에 탄소가 네개씩 연결되어있는 다이아몬드와는 달리, 이 물질들은 탄소에 산소와 수소가 붙어있다. 이것들을 다이아몬드로 바꾸기 위해서는 높은 온도와 압력을 가해, 원래 결합을 끊고 탄소끼리 결합을 만들어 줘야 한다.
모랄레스가 실험실 다이아몬드를 만들기 위해 쓰는 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예를 들어 이전에 성공했던 아세톤의 경우, 아세톤과 물을 적당량 섞어 농도를 맞춘다. 탄소, 수소, 산소의 비율을 잘 맞추는 것이다. 그 뒤 고온을 가해 두 물질을 기체로 만든다. 그리고 그 기체가 된 용액을 850℃로 가열한 뒤, 마이크로파를 가한다. 마이크로파는 전자레인지에서 음식을 데우는데 쓰이는 전자기파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 반응물질은 전하를 띤 기체, 플라즈마 상태가 된다. 이 플라즈마를 기다리고 있는건 깨끗한 실리콘 판이다. 공기중에 떠다니던 탄소 이온은 실리콘과 부분적인 공유결합을 만든다. 이어 다른 탄소들이 실리콘 판에 붙어있던 탄소와 연이어 공유결합을 만들며 다이아몬드가 성장한다. 그 결과, 실리콘 판에는 다이아몬드들이 붙어있게 된다.
이 방법을 쓸 때 소량의 산소나 산소와 결합한 수소는 순수한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일정 비율이 넘어가면 오히려 다이아몬드의 질이 낮아진다. 따라서 순수한 다이아몬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탄소-산소-수소의 비율이 굉장히 중요하다. 즉, 물을 얼마나 넣을지 신경을 많이 써야한다는 것이다.
데킬라로 다이아몬드를 만들 수 있을까?
하비에르 모랄레스가 데킬라에 작은 ‘유레카!’를 외친 이유가 이 비율에 있었다. 테킬라의 알콜 도수는 38~43도이다. 이리저리 계산해보면, 40도짜리 테킬라의 경우 탄소, 산소, 수소의 비율이 37:84:29가 된다. 이 비율은 모랄레스가 찾던 그 비율이였다.
테킬라로 다이아몬드를 만들겠다는 그의 말에, 아내는 모랄레스를 응원하긴 했다. 그러나 모랄레스는‘아내는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리고 모랄레스 생각에, 아내 말이 맞긴 했다.
당시 모랄레스의 집이 빅터 카스타뇨의 연구실과 멀었기 때문에, 그는 한 달에 한 번씩만 그 연구실에 출근하도록 되어 있었다. 연구실에 가기 전, 그는 테킬라로 다이아몬드를 만들어보자고 빅터 카스타뇨 교수, 그리고 장비 기술자 미구엘 아파티가에게 이야기했다. 카스타뇨 교수는 바로 찬성했다. 아파티가는 별 말 하지 않았지만 그도 테킬라를 한 병 사왔다. 물론 모랄레스도 손에 테킬라를 들고 있었다.
사실 술로 다이아몬드 만들 생각을 떠올리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실험 방법은 이전과 다를 게 없었다. 또 다른 기구를 살 필요도 없이, 그냥 원래 하던 장치에 그대로 테킬라를 넣으면 됐다. 그리고 그는 정확히 51번의 실험 끝에 다이아몬드를 만들 수 있었다. 실험을 시작한 지 단 한 달 안에 이룬 성과였다. 참고로 굉장히 빠른 것이다. 평소엔 물조차도 잘 정제된 것만 쓰던 실험기구들이지만, 테킬라를 쓴다고 해서 어떤 것도 고장나지 않았다.
이 다이아몬드, 보석으로 쓸 수 있을까?
실리콘 막에 붙은 다이아몬드, 얼마나 클까? 최초로 술이 낳은 역사적인 이 다이아몬드는 아쉽게도 보석으로 쓰기엔 너무 작다. 머리카락 두께의 천분의 일(100~500nm)정도로 엄청나게 작은 다이아몬드 공이 오밀조밀 붙어있는 필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다이아몬드는 눈으로 볼 수 없고, 보려면 전자현미경을 이용해야만 한다. 전자현미경으로 필름을 들여다보면, 다이아몬드가 마치 자갈처럼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덩어리들이 다이아몬드라는 건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모랄레스는 라만 분광법이라는 방법을 썼다.
빛이 어떤 물질에 닿았을 때, 빛이 진행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산란이라고 한다. 그런데 다이아몬드 등의 물질의 경우, 레이저를 쏘는 경우 산란되는 빛에서 다른 색의 빛이 섞여 나온다. 인도 과학자 라만은 이 ‘색다른’빛을 발견해 라만산란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이 색다른 빛은 물질의 구조에 따라 다른 파장을 보이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물질의 구조를 분석하는 것을 라만 분광법이라고 한다.
모랄레스는 주황색인 632nm 파장 레이저를 다이아몬드에 쏘았다. 그러자 다이아몬드에서는 75㎛의 적외선 영역 빛이 산란되어 나왔다. 모랄레스는 이를 통해 그가 다이아몬드 필름을 제대로 얻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논문에서 밝힌 이 연구의 의의는, 상업적으로 대량생산되고있는 물질인 테킬라를 이용해서 다이아몬드를 합성해 냈다는 것이었다. 이들이 사용한 테킬라는 ‘테킬라 블랑코’, 즉 숙성을 안 시킨 저렴한 데킬라다. 이렇게 만든 다이아몬드는 보석으로는 쓰지 못해도, 공업용으로 사용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앞으로 누가 용도를 발견해 가져다 쓸지도 기대해 볼 만 하다.
하비레르 모랄레스와 빅터 카스타뇨, 그리고 미구엘 아파티가는 이 연구로 괴짜들의 노벨상, 이그노벨상을 수상했다.
이그노벨상 시상식장에는 모랄레스와 아파티가가 참석했다. 모랄레스는 커다란 멕시코모자 솜브레로를 쓰고 무대 위에 등장했다. 주최측은 이들을 축하하기 위해 테킬라를 한 잔씩 건넸다. “치얼스!”라고 외치고 아파티가가 먼저 연설을 하는 동안, 모랄레스는 테킬라를 입에 털어넣고 유쾌하게 관객들에게 인사를 날렸다.
이 연구는 과학자들의 진지한 장난이라고 생각해봐도 좋겠다. 장비 기술자 미구엘 아파티가는 “가장 진지한 분야를 연구하면서도 연구자들은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군”이라는 반응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이크를 이어받은 모랄레스는 이렇게 연설을 마무리했다. “만약 데킬라를 아주 많이 먹는다면, 당신은 뭐든 할 수 있습니다”
<이메일 인터뷰>
2020년 4월 6일 From. 자비에 모랄레스
Q. “테킬라로부터 다이아몬드 필름 성장시키기”에 대한 아이디어가 생각난 순간을 말해주실 수 있나요?
A.어느 날, 저는 유기물로부터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분자식을 만들고 있었죠. 그 때 내 아내가 내게 테킬라를 사야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켰습니다. 그때 저는 테킬라를 다이아몬드로 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아내는 정말 좋은 사람이고, 언제나 절 응원해줍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그때 아내는 제가 미쳤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아내가 맞을거에요.
아내는 제가 다이아몬드를 합성해내고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 굉장히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그노벨상을 받았던 2009년에도 마찬가지로 기뻐했죠.
Q. 실험 성공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나요? 기분이 어땠나요?
A.음, 51번 실험해서 다이아몬드를 얻었습니다. 전 흥분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다이아몬드를 아세톤과 물로 만드는데 한 달만에 성공했고, 알콜로 반응식을 세워봤는데, 테킬라가 내가 찾던 비율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사실 연구실의 모든 사람들이 제가 아세톤과 물로 다이아몬드 합성을 성공했을 때도 굉장히 흥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도해본 결과, 아세톤은 적당한 출발물질이 아니라고 했거든요. 근데 제가 해낸거죠. 아세톤으로부터 다이아몬드를 만든 제 논문도 봐보세요.
Q. 기기가 망가지진 않았나요?
A. 당연히 아니죠. 기계는 멀쩡했습니다.
Q. 테킬라를 준비한 사람은 누구였나요?
A. 단순하게 설명하긴 좀 어려워요. 저는 연구실에서 800km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저는 Monterrey에서 Queretaro까지 매달 한 번씩 갔습니다. 제가 테킬라 아이디어가 생각났을 때, 저는 테킬라 한병을 (연구실쪽에)사다 달라고 했죠. 그러나 어쨌거나, 결국 제가 테킬라를 사서 제가 산걸 이용했습니다.
Q. 당신과 미구엘 아파티가, 그리고 빅터 카스타뇨의 역할은 각각 무엇이었나요?
A. 구글에 찾아보면 제 정보를 좀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얘기가 길거든요.
저는 누에보레온 자치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빅터 카스타뇨가 국립자치대학교에 있는 자기 랩실에서 협업하자고 초대했죠. 분자 동역학 분야였습니다.
빅터는 제 논문 심사관이었고, 제 주제는 “새로운 시스템이나 기기를 이용해서 새로운 물질로 다이아몬드를 합성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구엘 아파티가는 장비 기술자였고요. 그리고 저는 다이아몬드 아이디어를 내야 했던 사람입니다.
Q. 술 마시는거 좋아하세요?
A. 테킬라로 다이아몬드를 만든 이후 테킬라를 즐겨 마십니다. 그리고 학회에 가면 왜 제가 테킬라를 주로 마시는지 설명하곤 하죠.
Q. 연구하면서 어려웠던 건, 혹은 가장 기억에 남는건 뭔가요?
A. 음, 처음 박사과정 주제를 시작할 때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다이아몬드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에게 감사하게도, 저는 한 달 만에 다이아몬드를 만들 수 있었죠.
기억에 남는 일화는 굉장히 많아요. 처음에 다이아몬드를 만들어냈을 때, 사이언스지나 뉴 사이언티스트 매거진에서 제 연구에 대해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등입니다.
이그노벨상은 많은 사람을 만나게 하고, 많은 인터뷰를 하게 합니다. 당신이 제게 메일을 보낸 것 처럼요.
Q. 이그노벨상 받았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A. 말했듯이, 나는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에서 멀리 살고 있었어요. 이그노벨상 주최측이 국립자치대학교로 전화했고, 빅터 카스타뇨는 제게 제 연구가 이그노벨상 화학부문에 선정됐다고 하더군요.
그때 전 이그노벨상이 뭔지 몰랐어요. 그리고 저는 이그노벨상을 인터넷에서 찾아본 다음, 상을 받겠다고 했죠. 그 다음, 전 두 번 이그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했습니다. 2009년과 2019 이그노벨상 시상식 영상에서 절 보실 수 있을거에요. 제 생각에 이그노벨상 이벤트는 정말 좋습니다. 매 해 많은 사람들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저는 매년 이그노벨상을 만들어내는 모든 사람에게 축하를 보내죠.
참고자료
Morales, Javier, Miguel Apátiga, and Victor M. Castaño. "Growth of diamond films from tequila." arXiv preprint arXiv:0806.1485 (2008).
youtube : The 19th First Annual Ig Nobel Prize Ceremony
(https://www.youtube.com/watch?v=-dlkpBABDU8&t=3901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