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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과 May 11. 2020

해보면 되니까, 시럽으로 수영장을 가득 채운 과학자

시럽 속에서 수영하면 더 빨라질까

“이유를 이해하는데 꽤 오래 걸릴 거예요”

-에드워드 커슬러의 수상소감 중

2005 이그노벨상 화학 부문

미국의 에드워드 커슬러, 브라이언 게텔핑거


수영을 사랑한 대학생


미네소타 대학교의 한 연구실, 교수와 학생이 토론하고 있었다.

학생의 이름은 브라이언 게텔핑거로, 미네소타 대학교 화학공학과 학생이면서 대학 수영부의 부장이었다. 게텔핑거는 공부를 잘했을 뿐 아니라 수영실력도 꽤 좋았는데, 2004 아테네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을 준비할 정도였다. 그의 머릿속에는 수영이 가득했다. 따라서 그의 대화는 기-승-전-수영이 되기 일쑤였다. 


게텔핑거 앞에 앉아있는 교수는 게텔핑거가 수업을 듣던 교수, 에드워드 커슬러였다. 그 둘은 정상적인 연구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샌가 토론 주제는 수영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문득, 커슬러 교수는 게텔핑거에게 질문을 던졌다. “끈끈한 시럽에서 수영하면 더 빨라질지 느려질지 혹시 생각해본 적 있나?” 게텔핑거는 나름대로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커슬러 교수도 결과를 추측해 이야기를 나눴다. 불꽃 튀는 토론 끝에, 커슬러 교수는 이 실험을 실제로 해보면 어떻겠냐고 게텔핑거에게 물었다. 게텔핑거는 기꺼이 실험을 맡기로 했다.


실험의 시작


미네소타 대학에는 누군가 시럽 수영 실험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퍼졌다. 게텔핑거의 주변 사람들 뿐 아니라 그리고 학교 전체가 이 실험에 대한 토론으로 술렁거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럽 쪽에서 수영할 때 더 느려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점성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는 데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공기 중에서 걷다가 점성이 큰 물속에서 걸으면 느려지는 것처럼, 물보다 점성이 더 큰 시럽 속에서 걸으면 느려질 게 분명하다. 이들은 수영할 때도 마찬가지로 방해를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몇 명은 생각이 달랐다. 오히려 시럽 덕분에 속도가 빨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수영할 때 팔을 저어 물을 뒤로 밀면, 몸이 앞으로 나간다. 이때 물 대신 점성이 높은 시럽을 민다면, 한번 팔을 저을 때마다 몸이 받는 힘이 커질 것이고, 더 빨리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마치 공기 중에서 팔 젓기를 해봐야 몸이 앞으로 나가지 않지만, 물속에서는 충분한 추진력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말이다. 양 쪽 다 일리가 있다. 일리가 있기 때문에 직접 실험에 들어간다고 생각해도 얼추 맞다.


그러나 실험 준비는 만만치 않았다. 우선 시 당국과 대학 등에 허가를 22개나 받아야 했다. 그래서 게텔핑거와 커슬러는 실험 시작도 하기 전에 서류 작업을 한참 해야만 했다.

본격적인 실험 준비도 쉽지 않았다. 길이 23미터, 레인 다섯 개짜리 수영장을 가득 채우기 위해서는 자그마치 65만 리터의 시럽을 구해야 했다. 일부 열성 지지자는 시럽을 만드는데 쓰라며 옥수수 전분을 기부하기도 했다.


완벽한 시럽 수영장이란


게텔핑거는 옥수수 전분 시럽 수영장을 만들었을까? 안타깝게도 옥수수 전분은 이 실험에 부적절했다. 다량의 옥수수 전분을 수영장에 들이붓는다면 수영장 하수 시스템에 문제가 생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다른 시럽 재료를 찾아야 했다. 그는 고민 끝에 ‘구아검’을 선택했다. 구아 검은 케첩 같은 소스나 샴푸 등을 걸쭉하게 만들기 위해 쓰이는 첨가제이다. 구아검을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구아 콩으로 만든 구아 가루를 사서 물에 타면 끝이다.


샴푸에 넣는 물질이다 보니 구아검은 하수구에 전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식품에 일상적으로 넣는 첨가제라서 수영하다가 삼켜도 괜찮았다. 먹었을 때 알레르기도 일어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정확하게 실험하는 데에도 좋았다. 커슬러 교수와 게텔핑거가 원하던 만큼 농도를 높여놓아도 구아검의 밀도는 물과 거의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밀도가 늘어났다면 사람 몸이 더 위로 떠버리기 때문에 정확한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기 힘들다.


커슬러 교수와 게텔핑거는 계산 끝에 310킬로그램의 구아 가루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게텔핑거는 동료들과 함께 수많은 포댓자루들을 수영장으로 날라야 했다. 그 뒤 작업도 만만치 않았다. 일단 많은 양의 구아 가루를 수영장에 곧바로 들이부으면 뭉쳐버린다. 그래서 게텔핑거는 쓰레기통을 개조해 물과 구아 가루를 미리 한번 섞은 뒤 방류하는 장치를 고안했다. 옆쪽에 파이프와 펌프를 달아 수영장 물을 퍼올리고, 쓰레기통 안으로 퍼올린 물에 구아 가루를 적당히 부어 모터로 먼저 섞어준 뒤, 아래쪽에 수도꼭지처럼 밸브를 달아 물을 쉽게 뺄 수 있게 한 장치였다. 마지막으로 시럽이 된 혼합물을 방류할 때는 밸브 아래 뜰채를 받쳐 혹시 덜 섞였을지도 모르는 덩어리가 수영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았다. 마지막으로 수영장 안에 설치된 3개의 수중 펌프가 수영장 물 전체를 36시간 동안 휘저었다.


드디어 반투명한 시럽 수영장이 완성됐다. 커슬러는 걸쭉한 시럽이 마치 콧물 같다고 생각했다. 이 수영장의 점도는 물의 2배였다.


실험의 디테일


이들이 2005 이그노벨상에 선정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신중한 실험을 통해 오랜 과학적 논쟁 ‘시럽에서 수영하면 물속에서 수영하는 것보다 느려지는가?’를 밝힌 업적”


수상 소감에서 신중한 실험’이라고 콕 집어 이야기 한 이유는 뭘까? 구아검을 고른 이유만큼이나 수영 조건도 꼼꼼하게 설계됐기 때문이다.


콧물 같은 시럽 속에 수영하러 온 지원자는 총 16명이었다. 선수에 준하는 실력을 가진 미네소타 대학 수영부도 있었고, 아마추어도 있었다. 지원자들의 수영 실력은 다양했다. 지원자들은 일반 수영장과 물 수영장에서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 등을 하기로 했다.

게텔핑거는 경험을 통해 심리적인 영향이 수영 기록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옆 레인에서 경쟁하는 선수가 누구냐에 따라 내 기록이 달라지지 않는가. 따라서 그는 가장 공평하고 편안한 상황에서 수영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수영을 하는 동안은 수영장을 조용하게 유지했으며, 한 번에 한 명씩만 수영했다. 그리고 공평하게 벽 옆 레인에서만 수영했다. 한 번 수영이 끝나면 꼬박꼬박 쉬는 시간도 3분씩 가졌다. 이들은 물에서도 같은 조건에서 실험을 진행하고 시럽에서 결과와 비교했다. 


뱀의 몸통에 고릴라의 팔


결과는 놀라웠다. 물에서 수영하던 시럽에서 수영하던, 속도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았던 것이다. 자유형이건 평영이건 수영 영법을 바꿔봐도 마찬가지다. 차이는 4% 이내로 작았고, 전반적으로 시럽 쪽이 빠르거나 물 쪽이 빨랐던 것도 아니다. 이러저러한 요소를 다 고려해 보면 ‘영향이 없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커슬러 교수와 게텔핑거는 한 가지 추측을 내놓았다. ‘앞으로 나가는 건 약간 방해받고, 방해받는 정도와 비슷하게 도움도 받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방해받는 정도가 그렇게 크지 않았던 이유는 사람 몸 구조의 문제다. 수영장 킥판을 물속에 집어넣고 걸어간다고 할 때, 판을 세운 채 걸어간다면 별 방해를 받지 않는다. 그러나 넓은 면을 앞으로 든다면 걸어가는 데 상당한 방해를 받는다. 진행방향과 수직인 면이 넓기 때문이다. 


사람 몸의 구조는 3차원이다. 그래서 사람 정수리와 어깨 등이 물과 수직방향으로 만나게 된다. 따라서 킥판을 넓게 들고 걸을 때처럼 저항을 많이 받게 된다. 물이 사람의 앞에서 뒤로 매끄럽게 흐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위 액체의 흐름 때문에 생기는 저항은 사람 몸 구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 물에서나 시럽에서나 비슷하다. 심지어 그 정도도 상당히 크다. 만약 사람의 머리와 몸통이 마치 뱀처럼 가늘었다면 흐름에 대한 방해가 훨씬 작았을 것이다.


이렇게 주위 액체가 흐르면서 받는 저항이 원체 크다 보니, 시럽의 점도가 방해하는 정도는 전체 방해의 10% 이내로, 상대적으로 적다. 그래서 점도를 2배로 올려봐야 그리 많은 방해를 미치지는 못했다.


점도의 증가가 방해를 별로 미치지 못하는 반면, 가속에는 도움이 된다. 시럽의 높은 점성 덕분에, 한 번 팔을 저을 때마다 몸이 받는 힘은 늘어난다. 결국 방해와 도움이 상쇄되어, 결국 속도는 비슷해진다.


커슬러는 위 내용을 “완벽한 수영선수의 체형은 ‘뱀의 몸에 고릴라 팔’입니다”라는 한 마디로 일축했다.


2005년 이그노벨상 시상식. 브라이언 게텔핑거는 예의를 갖춰 옷차림을 제대로 갖추고 시상대에 올라왔다. 쫄쫄이 수영복에 상의를 벗고, 모자와 물안경까지 빼놓지 않았다. 에드워드 커슬러 교수도 나름대로 노력해서 반팔 티 아래로 쫄쫄이 수영복을 입었다.


커슬러 교수는 이그노벨상 수상소감으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맞춰보세요, 어느 쪽이 더 빠를 것 같나요?...... 답은 ‘같다’입니다. 이해하는 데는 꽤 오래 걸릴 거예요.”            


<이메일 인터뷰>
2020년 2월
From. 에드워드 커슬러 교수와 브라이언 게텔핑거

Q.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커슬러 : 브라이언 게텔핑거는 제 수업을 듣는 학생이었습니다. 수영팀이기도 했죠. 브라이언은 제게 수영에 대해 답하기 어렵고 자세한 질문들을 하곤 했습니다. 예를 들면 브라이언이 “코치가 몸 털을 밀라던데, 팔 털은 안 미는 게 이론상 더 낫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브라이언이 맞았어요.
이 외에도 턴 할 때 물의 흐름이 어떻게 되는가 처럼, 수영에 관련된 구체적인 질문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Q. 시럽 수영 실험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게텔핑거 : 완전히 뜬금없이 시작됐어요. 저와 커슬러 교수님은 연구실에서 정상적인 연구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대화 주제가 어느덧 수영에 대한 토론으로 바뀌었습니다. 커슬러 교수님이 별안간 제게 ‘끈끈한 시럽 속에서 수영하면 빨라지거나 느려질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는지’ 물어봤어요. 그렇게 아이디어가 탄생했습니다.

Q. 둘의 역할분담은 어땠어요?
게텔핑거 : 일단 아이디어는 커슬러 교수님이 냈고, 전 주 연구원이었어요. 연구를 수행하고, 재료를 구하고, 수영장을 섞는 역할이었죠.
커슬러 교수님은 이론을 담당하셨습니다. (저와는 달리) 우리가 뭘 실험하고 있는지 정말로 이해하고 계셨죠.

Q. 두 분은 각각 실험 결과가 어떻게 될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게텔핑거 : 사실 우리는 시작 전에 비슷할 거라고 예상하긴 했어요. 만약 아니라면 빨라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커슬러: 게텔핑거와 토론할 때, 저는 제임스 컨실맨의 책 “수영의 과학(The Science of Swimming)” 내용을 떠올렸습니다. 이 책에는 “두 배 빨리 가려면 네 배로 힘을 주어야 한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서 점성과 속도 사이에 관계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Q. 가장 어려운 점이 뭔가요?
게텔핑거 : 사람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데 허가를 받는 게 힘들었어요.
커슬러 : 허가를 22개나 받아야 했습니다. 미네아폴리스 시 당국과 대학 등에 서류를 냈습니다.


Q. 기억에 남는 부분이나, 더 하실 말씀이 있나요?
게텔핑거 : 수영장에 증점제(구아 가루)를 붓던 게 가장 기억에 남네요. 
이 실험에 참여하게 돼서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표현은 못 찾겠어요.





참고자료

논문 : Gettelfinger, Brian, and E. L. Cussler. "Will humans swim faster or slower in syrup?." AIChE journal 50.11 (2004): 2646-2647.

인터뷰: 브라이언 게텔핑거 & 에드워드 커슬러와 이메일 인터뷰

네이처 뉴스(https://www.nature.com/articles/news0409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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