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데 관종입니다.

프롤로그

by 이손끝

나는 소심하다. 정확히 말하면, 소심한데 관종이다. 이 조합이 얼마나 피곤한 성격인지 아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 나서는 게 무섭지만, 나서지 않으면 또 답답하다. 혼자 있고 싶다고 해놓고, 아무도 불러주지 않으면 서운하고 삐지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부끄럼 많은 아이’였다. 툭하면 울음을 터뜨려 ‘울보’라는 별명이 있었고, 사람들이 쳐다만 봐도 몸을 베베 꼬았다. 그런데 속으론 그 시선이 좋았다. 나는, 아마 그때부터 관종의 씨앗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가족들과 한 행사장에 갔었다. 레크리에이션 MC가 “춤 잘 추는 어린이들은 무대로 올라오세요!”라고 외쳤고, 나는 용기내 올라갔다. 그때 흘러나온 노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였다. 나는 그들의 춤을 완벽히 외우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 있게 안무에 맞춰 춤을 췄다. 시선이 참 좋았고 난 흥분해 오바하며 팔을 뻗었다. 그런데 내 옆의 한 아이가 갑자기 개다리춤과 막춤을 마구 추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은 그 아이에게 쏠렸고, 박수가 터져 나왔다. 결국 상은 그 아이가 받았다. 나는 무대를 내려오며 대성통곡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른들이 아이에게 바라는 건 ‘잘함’보다 ‘즐거움’이었다. 그 아이가 받을 만했다. 하지만 그날 나는 세상을 배웠다. ‘잘해도 눈에 안 띄고, 망가져야 주목받는다.’ 망가지는 것은 쑥스럽다. 난 그렇게 관종끼를 맘 속에 가뒀다.


나는 어릴 적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다. 평소 말수가 적고 망가지는 것은 못하겠는 내가 끼를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게 글이었기 때문이다. 좋아하지만 안타깝게도 탁월한 재능은 없었다. 백일장에 나가면 늘 참가상. 그런데도 계속 나갔다. 그때의 나는 ‘참가상’이라는 단어보다 ‘이름이 불린다’는 사실에 더 들떴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마저도 관종기의 발현이었을 것이다.


소심한데 관종인 나의 복잡성은 성장할수록 더 커졌다. 10대엔 친구들 사이에서 눈에 띄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지만, 늘 듣는 말은 ‘조용한 애’였다. 나는 조용했지만 내 안은 늘 시끄러웠다. ‘내 얘기도 하고 싶은데’, ‘나도 웃기고 싶은데’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들이 가슴속에서 부글부글 끓었다. 그러다 어느 날 급식실에서 급식판을 들고 넘어져 모두가 나를 쳐다봤을 때, 부끄러움보다 먼저 든 생각이 이거였다. “그래, 이렇게라도 주목받으면 됐지.” 소심한 관종의 기질은 그렇게 자랐다.


스무 살 무렵엔 연극을 하겠다며 가출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로까지 가서 어슬렁거리다가 무서워서 돌아왔다. 발길은 갔는데, 마음이 따라가지 않았다. 그 후 개그맨 시험을 보기 위해 KBS n JOY 방송국에서 뽑는 개그연기과에 들어가 친구들과 대학로 공연도 올렸고, 호평을 받아 갈갈이극단 입단 제안도 받았다. 하지만 그 결정 앞에서 나는 또 두려워서 돌아서고 말았다. 무대가 무서웠다. 관객의 눈빛이, 그들의 판단이. 그렇게 나는 늘 한 걸음 앞에서 멈췄다. 하고 싶은 일 앞에서 멈추는 건, 나의 오랜 습관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두려운 걸까. 무엇이 나를 움츠러들게 만들까. 사회에 나와서야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세상은 무대보다 훨씬 냉정했다. 직장에서는 조용히 시키는 일만 잘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눈치가 빨라서 그 말을 곧이곧대로 따랐다. 말은 아꼈고, 감정은 감췄다. 그런데 속으로는 늘 생각했다. “저 사람보다 내가 더 재밌는 말 할 수 있는데......” 그런데도 말을 안 했다. 소심해서. 대신 메모장에 적었다. “오늘 팀장님 웃음소리 너무 크다. 인생에서 웃은 횟수를 다 쓰는 중 같다.” 그때는 몰랐다. 그 메모들이 훗날 ‘이손끝’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올 줄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한참 동안 나는 ‘조용한 사람’으로 살았다. 하지만 사실은 ‘조용한 척’에 가까웠다. 내 안의 관종은 늘 고개를 들었다. “너, 요즘 너무 사라졌어.” “그래도 뭐라도 해야지.” 그래서 블로그를 시작했다. 글을 쓰면 누군가 읽어주고, 댓글이 달리고, ‘좋아요’ 하나에도 기분이 날아올랐다. 그게 나에게는 조명이었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그렇게 눈치 많이 보는 성격에 어떻게 글을 쓰세요?” 사실 나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글을 쓸 때만큼은 용감해진다. 말로 하면 머뭇거리지만, 글로 하면 다 말할 수 있다. 어쩌면 글쓰기는 내 인생의 ‘대체 무대’였던 것 같다. 소심해서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하는 대신, 이 손끝으로 나를 세상에 올려놓는 일. 그게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이제 생각해 보면, 소심함과 관종기질은 서로 싸우는 게 아니라 절묘하게 균형을 맞추고 있었던 것 같다. 소심함 덕분에 나는 타인의 감정에 예민해졌고, 관종기질 덕분에 그 감정을 글로 표현할 용기를 얻었다. 만약 둘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나는 글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인정한다. 나는 소심한데 관종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여전히 무섭지만, 그 시선 덕분에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누가 볼까 봐 두렵다가도, 아무도 안 보면 서운하다. 그래서 오늘도 이 글을 쓴다. 누군가 나처럼 부끄러워하면서도 속으론 봐주길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이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다. 소심함은 약점이 아니고, 관종은 나쁜 말만은 아니다. 둘 다 인간적인 마음의 한 형태일 뿐이다.


어쩌면 인생이란 건, 소심해서 말 못 하던 내가 결국 세상 앞에 서기까지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내 안의 두 사람을 품고 산다. 조용하지만 뜨겁고, 작지만 끈질기게 빛나는, 이손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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