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추픽추에 서서 꿈을 그리다

한국인은 절대 원정 성매매하면 안 됩니다!

by 용진캠프

우리는 누구나 한 번 이상은 여행을 한다. 사실 태어나서 눈을 뜨는 순간 이미 당신은 인생이라는 여행을 시작하게 되는 거다. 여행 속에서 우리는 으레 다양한 상황들을 마주하게 된다.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기쁨, 슬픔, 감동, 희열, 고통, 번뇌 등 각기 다른 감정을 가지고, 가지각색 물든 삶의 단면들을 경험한다.


페루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이었다.

그곳은 삶의 '절망'과 '희망'이 공존한 공간이었다.

페루에 머무는 동안 개인사에 있어 격변의 상황과 맞닥뜨렸다.


페루의 옛 수도 쿠스코로 오기 하루 전이었다. 오랫동안 사귀고 있던 당시 여자친구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친구를 통해 전해 듣게 됐고, 거기에 대해 화를 냈더니 그녀는 자유로운 삶을 살겠다며 이별을 통보해 왔다. 그녀는 한국에서 연구원으로 공부와 업무를 병행하고 있던 서양인이었는데, "서양의 개방적인 문화에서는 구속받지 않아야 하며, 사생활이 존중되어야만 한다."고 했다. 개인에 따라 다른 건데도 자신들의 문화에서는 이런 게 자연스러운 거라는 식으로 단정해 말하는 그녀의 생각에 실망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정을 떼지 못해 쓰디쓴 마음을 부여잡고 그녀에게 화해하자는 문자를 보냈다.


늦은 오후 쿠스코의 한 낡은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푼 후 너덜너덜해진 영혼을 추스르고자 옛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쿠스코는 잃어버린 공중도시 마추픽추로 여행 가기 위한 관문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았다. 특히 중심가라고 할 수 있는 아르마스 광장 주변은 저녁 시간까지 사람들로 붐비는 편이었다. 그곳에서 저녁을 먹고 호스텔로 돌아가고 있는데 예쁘장하게 화장한 현지 여성이 나에게 영어로 인사하며 다가왔다. 뭔가 싶었는데 그녀는 나에게 12각의 돌을 봤냐고 물어왔다. 그게 뭔지도 몰랐던 나에게 그녀는 손으로 가리키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있다며 바로 옆의 로레토 골목 쪽으로 안내했다. “여기 벽을 보면 12각의 돌들을 조금씩 엇갈리게 하면서 틈새를 맞추어 올렸지?” 하나씩 세어보니 정확히 12각의 돌들이었다. 모양과 크기는 조금씩 달랐지만 12각의 돌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교하게 맞물려 골목 벽을 이루고 있었다. 그녀는 이게 잉카 시대 때 쌓아올려진 거라고 했다. 고대 잉카 시대의 비상한 석조 기술에 놀라고 있던 그때 그녀는 주위를 휙 둘러보더니 인적이 뜸 하자 슬쩍 여기까지 왔으니 허리 운동도 하고 마시지도 받고 하면서 기분 풀고 가라고 제안을 한다.


“내 여자친구가 싫어할 거야.” 그 순간에도 한국에서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을 지도 모를 그녀를 생각하고 있었다. “너 여자친구랑 같이 왔어?” “아니.” “그렇다면 뭐가 문제야? 정말 싸게 해줄게.” 그렇다. 그녀는 직업여성이었던 거다. 나는 그녀에게 명확하게 거절 의사를 밝히고 호스텔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잉카의 찬란한 역사를 간직한 쿠스코는 관광 도시가 되면서 그렇게 관광객을 상대로 한 성매매가 활개치고 있었다. 더욱이 페루라는 나라는 성매매가 합법 국가이기에 이들에게 이건 문제 될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한국인은 어느 나라를 가서도 성매매에 가담하게 되면 법적으로 처벌받는다는 거다. 왜냐하면 자국민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장소에 무관하게 자국의 형법을 적용하는 속인주의의 원칙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호스텔로 돌아가는 길에 잉카 시대의 유물을 밟고 우뚝 서있는 스페인 침략기의 성당 건물이 보였다. 그 웅장한 붉은 벽돌 아래 잉카의 후예들이 저녁 미사를 마치고 삼삼오오 길을 나서고 있었다. 서구의 침략에 맞서 격렬하게 싸우던 잉카의 선조들이 시간을 넘어 급변한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유구한 세월에 결국 모든 건 부질없다는 것을 깨달을까? 이역만리에서 처한 쓰디쓴 실연의 아픔이 시간의 흐름을 통해 사라지길 희망했다.


다음 날 확인했을 때도 그녀는 내가 보낸 문자를 읽고 답변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외로움을 많이 탔던 친구라 긴 시간 한국에서 떠나 있던 나를 대신해 다른 남자와 함께 하게 된 거다. 그렇기에 우리의 관계 회복은 불가능해 보였다. 쿠스코에 머무는 많은 관광객들은 성스러운 계곡과 마추픽추를 함께 묶어 관광하는 여행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하지만 그녀와의 파국이 빚은 심리적 상처를 치유할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따라서 여행사들의 미리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그룹으로 진행되는 여행 프로그램들이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남들이 잘 안 하려 하는 자유여행으로 이곳들을 여행하기로 했다. 당시 쿠스코에서 성스러운 계곡을 거쳐 마추픽추까지 가는 루트는 워낙 비포장에 험한 길이 많았고 대중교통도 전무하다시피 했기에 난관이 예상됐다. 하지만 막상 떠나보니 어떻게든 되더라. 히치하이킹을 몇 번 했고 피삭, 우루밤바, 오얀타이탐보로 이어지는 성스러운 계곡의 여정 중에는 그룹 여행 중이던 분들이 기꺼이 봉고차에 태워주시기도 했다. 그렇게 신성한 계곡의 중심부이자 잉카시대의 마지막 격전장 오얀타이탐보 마을에서 한 호스텔을 잡고 1박을 했다. 이곳은 마추픽추로 가는 열차가 출발하는 잉카 트레일의 출발점으로 마추픽추의 관문도시 아구아스 칼리엔테 마을 행 열차를 탈 수 있는 곳이다.


호스텔이 있는 마을을 경계로 양옆으로 산이 있고 가파른 산비탈을 깎아 신전, 요새, 계단식 경작지 등 옛 잉카 문명의 터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루 동안 두 곳을 모두 올랐는데 등반하는 시간이 달라서 그런지 몰라도 한쪽은 관광객들로 북적였던 반면 다른 한쪽은 오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오르는 내내 잉카의 찬란한 역사가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놀라운 석조 건축물과 푸른빛 대자연의 아름다운 조화를 감상하며 실연의 아픔이 조금씩 아물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렇게 여행은 삶에 부대껴 번뇌하는 마음을 멀찌감치 떨어져서 조망하게 해준다. 저녁 어스름에 호스텔로 돌아와 함께 머무는 현지인에게 오늘 방문한 곳들에 큰 감동을 받게 됐다고 얘기하니, 그는 오얀타이탐보는 그저 작은 마추픽추 격이라고 했다. 마추픽추는 이곳보다 더 놀라운 곳이니 기대하라고 했다. 그리고 마추픽추를 더 멀리서 조망할 수 있는 와이나픽추를 함께 가볼 것을 추천해 주었다. 그 친구의 조언 덕분에 아구아스 칼리엔테에 1주일 가량 머물면서 마추픽추와 와이나픽추를 모두 방문했다. 그곳에서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운 경치와 마주하게 되었고 그 벅찬 감동은 정말이지 인생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마추픽추는 케추아 어로 '늙은 봉우리'라는 뜻이다. 이곳과 '젊은 봉우리'를 의미하는 와이나픽추 사이에 고대 수수께끼의 공중도시가 웅장하게 들어서 있는데, 마추픽추 쪽에 더 가깝게 형성돼 있어 오늘날 이곳을 마추픽추라고 통칭한다. 대부분의 방문객들이 와이나픽추는 오르지 않고 마추픽추 만을 가는데 와이나픽추에 오르면 마추픽추 유적지를 더 높은 고지대에서 조망할 수 있기에 함께 등반해 보는 게 좋다. 단, 와이나픽추같은 경우 좁고 가파르기에 관광객의 안전과 주변 보호를 위해 하루에 입장할 수 있는 인원을 400명으로 제한해 두고 있다. 와이나픽추 입장권은 며칠 앞서 매진되어 버리는 편이라 아구아스 칼리엔테의 판매소에서 미리 예약해두어야 했다.


험준한 고지대에 형성된 잉카 제국의 고대 비밀 도시로 가기 위해 아구아스 칼리엔테에서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호주 친구 제이슨을 만났다. 벌써 세 달째 남미 곳곳을 모험하고 있는 친구였다. 마침 자신도 와이나픽추 등반부터 먼저 할 예정이라 하길래 동행하기로 했다. 이 친구는 너무나도 낙천적인 친구였다. 원래 멜버른에서 택시 기사를 했는데 후회 없이 세상을 경험해 보고 싶어져서 조그마한 집을 팔아 여행경비를 마련해 세계여행을 시작했단다. 차는 팔지 않고 가족에게 맡겨놓았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여행경비가 떨어지면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서 택시 운전을 할 거란다. 와이나픽추를 함께 오르며 함께 이런저런 인생 얘기를 나누다가 사실 얼마 전 실연을 당하게 되어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곳에서 처음 만난 친구지만 감사하게도 내 아픈 마음을 진심으로 공감해 줬다. "이런 일을 경험하게 됐기에 훗날 더 진실된 여자를 만나게 될 거야" 현재의 아픔을 딛고 더 나은 미래를 그리며 다시 일어나가 될 거라는 이 따뜻한 말이 참 고마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눈앞에 마추픽추의 마법같은 경관이 펼쳐졌다. 이곳에서 세상의 근심 걱정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잉카 제국의 찬란한 유산이 역사를 관통해 그곳에 서 있었다. 속세의 아픔은 그 자리에서 녹아내렸고 앞으로 펼쳐질 밝은 미래의 찬가가 인생을 관통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됐다. 가지 않은 길을 걷고 또 걸으며 여행은 그렇게 내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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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브런치 작가이자 여행 유튜버 세계일주 용진캠프는
현재까지 6대륙 101개국 세계여행 중입니다.


출판 및 강연 문의 : especialo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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