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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눗방울 Jun 07. 2022

나의 인생은 3D로 보고 타인의 인생은 2D로 본다

각자의 삶에는 각자의 못난이가 있다.

작년 초, 오랜만에 보는 친구를 만났다.

고등학교 동창에 어찌어찌 같은 대학교까지 함께 들어오게 된 친구였는데, 바쁜 대학교 졸업반이 될 무렵에야 뒤늦게 친해져서 그런지 각자 자리잡기가 바빠 졸업 후 둘이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몇 주 전부터 약속을 정해놓고 만나는 당일이 됐는데, 하필 그날따라 하늘이 뚫린 듯 비가 와장창 내렸다. 약속시간에 30분 정도 먼저 도착한 친구가 비 오는 성수동 거리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한적한 카페를 찾았으나 비 오는 주말 성수동 카페는 발 붙일 자리가 없이 사람들이 와글와글했다. 근처를 돌고 돌아 다섯 번째였나 여섯 번째 시도 끝에 좁고 미끄러운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비밀처럼 짠- 하고 나타나는 한적한 카페를 찾아 간신히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 도넛 하나와 음료 두 잔을 앞에 두고 우리는 서로의 근황을 물었다. 친구는 더 늦기 전에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어 해외 대학원 준비에 돌입했다 했고, 나는 몇 주 전 이직한 새로운 회사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사무실에서 조금만 잡담을 해도 부장이 직원들을 무서운 얼굴로 째리고 상무는 허구한 날 커피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늘어놓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친구는 시트콤 같다며 깔깔 웃었다. 나도 가까이서 내 인생을 볼 땐 비극 같았는데,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내 회사생활을 멀리서 살펴보니 희극인 것 같기도 해 친구랑 같이 한참을 웃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올해 초, 다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실 나에게는 그 1년이 3년, 혹은 5년 같이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친구가 시트콤 같다던 회사에서는 정말로 시트콤처럼 황당한 일들이 연달아 이어졌고 결국엔 내 정신을 좀먹었다. 회사를 그만두는 그날까지도 믿을 수 없이 유치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났고, 나는 난생처음 겪는 무기력증과 우울감을 겪었다. 마치 내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앨리스가 되어 몸이 작아지는 물약이라도 먹은 기분이었다.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이 너무나 비대해져 나를 짓눌렀다. 고작 1년이란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1년 후의 나는 1년 전의 나와 너무나도 달랐다. 나는 내가 너무나 닳고 닳아서 약해지고 보잘것 없어졌다고 생각했다.


친구는 작년에 코로나며 회사 부서이동이며 이런저런 일로 흐지부지됐던 대학원 준비를 다시 해보려 하는데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냐고 물어왔다. 수고비를 지불할 테니, 대학원 추천서와 자소서를 좀 봐달라는 이야기였다. 이리저리 자소서를 보다 보니 수정할 수 있는 부분이 여러 군데 보여 메모를 달다 보니 50개가 넘어가버렸다. 나는 그 정도의 메모를 적어줬으면 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는 그게 별 일 아닌 듯 보였는지 10번이 넘게 전화를 해서 왜 이건 이렇게 수정해야 하는지, 이건 이대로 두면 안되는지를 계속 물었다. 처음에 받아주던 질문 하나가 열 개가 되고 백 개가 되자 솔직히 극성 클라이언트에게 헐값에 재능기부를 해주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눈치 없는 친구는 "와~ 너는 근데 이렇게 집에서 앉아서 일하고 돈 벌 수 있는 직업이니까 좋겠다"라고 부러워했고, 나는 친구의 그런 눈치 없음이 부러웠다. 나는 이렇게 1년 사이 귀퉁이에서 작게 떨어져 나온 지우개 쪼가리처럼 닳고 초라해진 마음으로 살고 있는데, 아직도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뻔뻔스러운 당당함과 눈치 없는 막내딸 느낌을 간직하고 있는 그 단단함이 부러웠다.


그러다 몇 달 후, 내가 원서를 봐준 대학들에 합격했다며 친구가 다시 소식을 전해왔다. 근데 합격하긴 했는데, 몸이 불편해서 사실 입학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내가 봐주던 자소서에도 몸이 아프다는 이야기가 있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별 것 아니겠지'하고 넘겼다. 원래 자소서에는 영웅 서사처럼 조금 힘든 일도 크게 힘들었다고 부풀려서 쓰지 않나? 이 세상에 한 군데도 안 아픈 사람이 있나? 작년에 미끄러운 빗길도 그렇게나 잘 뛰어다니던 친구였는데?


알고 보니 친구는 정말로 크게 아픈 것이었고, 갑자기 생긴 통증 때문에 작년에는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었다고 했다. 도저히 걸을 수 조차 없어서 회사에 휴직 신청을 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다행히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10분 이상 걷는 게 불가능하고 계단도 오르지 못하는 상황에서 회사를 어떻게 다닐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아 보였다. 집에만 가만히 있다 보니 너무 막막하고, '그래, 아픈 김에 나처럼 아픈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싶어서 대학원에 다시 도전하게 됐다고.


저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너는 집에서 앉아서 일할 수 있는 직업이라 부럽다"던 친구의 말이 너무나도 이해가 갔다. 당시 나는 친구가 내 직업에 대한 존중 없이 뱉은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저 말은 친구의 진심 그 자체였다.


우리는 모두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본다. 내 인생은 가까이서 3D로 요리조리 구석구석 살피며 여기엔 먼지가 쌓였네 여기가 지저분하네 불평하면서 남의 인생은 그럴듯한 필터 끼운 사진으로 멀리서 찰칵 찍어 2D로 보면서 쟤는 여기도 멋지네 저기도 멋지네 하며 부러워한다. 내가 닳아 빠진 지우개 찌꺼기 같다고 생각한 나의 작년 1년도 친구의 눈에는 부러움 그 자체로 비쳤을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들의 삶에는 각자의 못난 구석이 있다. 빛나고 완벽해 보이는 사람의 인생에도 예쁜 천으로 애써 잘 덮어둔 찌그러진 귀퉁이 한 조각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멀리서 보면 그럴듯하게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 모두의 삶 뒤에는 누구에게 들킬까 애써 꼭꼭 감추어둔 각자의 못난이가 있다는 걸 생각하면 조금 더 넉넉하게, 조금 더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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