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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해 별글이 Oct 10. 2023

내적동기에 기름붓기

오늘도 한 뼘 자란 너와 나를 보며 느끼는 행복

4주 차 수업 마감일이 10월 10일, 5주 차 수업 마감일이 10월 17일까지라 여유롭다 생각하며 땡자땡자 놀았던 것이 화근이다. 사실 논 건 아니고 집에서 한 번, 자전거 타다 또 한 번 넘어져서 만신창이 된 몸을 쉬게 해 준 것뿐이었다. 6주 차 수업이 올라왔을 때 당연히 수업 마감일은 10월 24일이라 예상했지만 10월 17일이라 적혀있는 야멸찬 마감일에 심장이 콩닥 거린다.

계절의 흐름이 여느 때보다 뚜렷한 요즘

큰 일이다. 한꺼번에 수업 듣고 마무리하기엔 공부할 내용들이 어마어마하다. 하필 이번 학기 융의 분석심리학과 인간 중심 상담 이론 수업을 같이 듣고 있고 교양으로 선택한 과목이 유럽 미술사라 대충 들을 수 있는 수업이 하나도 없다. 바야흐로 일교차 심한 기온이 빚어낸 가을의 시간이지만 어디 놀러 갔다가는 스스로 팔자 말아먹을 격이니 오늘만큼은 마음을 다 붙잡고 공부에 몰입해 본다.


평생 관리형 인간으로 사는 사람이지만 아주 가끔 식단과 아주 먼 음식으로 내게 보상을 한다. 단, 아무리 먹고 싶어도 엄격하게 아침 식사 때부터 정오 이전에 먹는다는 나만의 기준을 지킨다. 그래서 어젯밤부터 먹고 싶었던 아이스크림을 꾹 참고 잠들었다.

아이스크림 하나 먹겠다는 내적 동기는 휴일 아침 일찍 밥솥을 돌리게 했다. 아이들은 오늘 아침이 빵이라고 무척 기대하고 있었는데 밥 차리는 엄마를 보며 원성이 자자하다. 하지만 예정된 모닝빵에 들어가는 설탕을 생각하면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없다. 오직 냉동실 한편의 아이스크림만 생각하며 묵묵히 밥상을 차린다.

오늘 아침 무엇을 드셨나요?

식사를 끝내고 한숨 돌리자 어제 강이랑 둘이 백화점 다녀오지 말고 두 과목만 수강했다면 이 사달이 안 났을 텐데, 시나브로 후회가 몰려왔다. 후회가 깊어지면 우울이 또 찾아와 마음을 휘저을 테니 나는 재빨리 구구 아이스크림을 뜯었다. 야물게 얼어붙은 초콜릿과 땅콩이 오도독 씹히더니 이내 쫀득한 마시멜로 아이스크림이 자태를 드러낸다. 오도독과 쫀득함의 만남이라니! 이건 분명 신이 내린 식감이다.


편도체가 계속 자극되면 예민해지고 안 좋은 기억은 더 생생해진다. 예를 들어 야단을 맞거나 혼이 나면서 공부를 하면 편도체의 작용에 의해 기억은 강화되는 반면 트라우마에 의해 우울과 불안이 생긴다. 자신이 좋아서 공부를 하는 경우라면 편도체가 활성화되지 않고도 집중력 증가를 통해 기억력이 효과를 발휘한다.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 중에서


후회는 시간의 개가 물어간 지 오래고 내게는 달콤함에 취해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만 남았다. 기세가 꺾일까, 얼른 노트북을 켜 화면 속 교수님들을 만난다. 편도체가 활성화되지 않은, 오로지 전두엽의 기능으로만 하는 공부는 이토록 재미나는구나 싶었다. 원하는 공부를 한다는 충만한 내적 동기에 아이스크림이란 기름을 부었으니 집중력이 하늘을 찌른다. 의기양양하게 수업을 듣던 찰나 눈을 까 뒤집으며 해리포터를 읽는 겸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터진 입을 꽉 다물며 다시 내 공부로 돌아왔다.


아무 말도 하지 마.
편도체 활성화 되면 다 끝장이야!


그렇게 한 시간이 흘렀나 보다. 겸이 자신의 자리를 정리하며 일어났다.

“엄마, 나 1권 거의 다 읽어가! 이만큼 남았어!”

스스로 뿌듯해서 자랑하는 겸에게 좀 더 집중하라는 말이 혀 밑까지 차올랐지만 편도체를 생각하며 애썼다고 칭찬했다. 찰나를 참고 나니 작년만 해도 원서 묵독을 버거워했었는데, 1년 사이 원서 읽기가 안정화된 지금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문득 이 기적을 겸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겸, 작년까지만 해도 원서 묵독 힘들어했는데 지금 기분이 어때?”

“응, 너무 좋아, 신기해! 엄마, 나 진짜 잘하지?”

“맞아, 정말 애쓰고 있어. 난 네가 커가는 모습 옆에서 지켜볼 수 있어서 행복해. 고마워!”

함박웃음으로 답을 대신한 겸이 놀러 나가는 발걸음을 지켜볼 수 있어 진심으로 행복한 엄마다.

너의 바다로 떠날 때까지, 함께 할 수 있음을 감사해.

자식과 감정 교류를 할 수 있는 어머니가 최고의 어머니라고 했는데 나는 다분히 속내가 드러나 실패인가? 그럼 어떤가? 어쨌든 오늘도 내적동기에 불지피기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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