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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해 별글이 Nov 23. 2023

엄마와의 추억여행 1

사춘기 초입의 아들과 전우애를 만들다.


태중에 있을 때부터 재원생이었던 강의 터전(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어린이집을 일컫는 말) 생활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상투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강이를 임신하고 입덧으로 강제 입원을 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 아가가 자신의 중력을 스스로 버티며 이 땅에 서 있은지 벌써 만 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국시꼬랭이를 다 먹던 그 날이 벌써 5년전

공동육아 어린이집에는 일곱 살이 되면 터전의 제일 어른(?)으로서 통과의례처럼 치러야 하는 일들이 있다. 첫 번째는 졸업 여행을 가기 위한 기금 마련 벼룩시장이다. 이제까지 애지중지 여기던 장난감들을 모두 가져와 직접 판매해 여행경비와 엄마 아빠의 선물을 살 자본을 마련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1박 2일 졸업여행을 가는 것이고 마지막은 아빠와의 추억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아빠와의 추억여행은 보통 졸업여행보다 앞서 진행된다. 엄마와 떨어져 하루를 지내는 예행연습이랄까? 그렇게 강은 아빠와 함께 무주의 반디랜드로 갈 예정이었다.




여행 일정을 공유받고 돌아보니 내 턱밑까지 차오른 겸이 눈에 들어왔다. 겸은 강산이 한 번 바뀐 세월을 살고 인생 2회 차 1 챕터에 접어들었다. 내년이면 본격적인 만 열한 살. 감정의 질풍을 겪으며 자신을 찾기 위한 몸부림을 시작할 것이다. 아직 야들야들한 마음으로 엄마를 어여쁘게 봐줄 때 하나라도 더 좋은 기억을 남겨 놓고 싶었다.

"겸, 우리도 여행 가자. 어디 가고 싶어?"

"음, 롯데월드."

일초도 고민 없이 답하는 겸의 대답을 듣고 나는 1박 2일 롯데월드를 다녀오자고 결론지었다. 물론 롯데월드 외 어디를 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엄마, 내 키가 140센티가 넘어서 웬만한 놀이기구는 다 탈 수 있데."

"엄마, 내 친구가 그러는데 후룸라이드라는 놀이기구를 세 시간이나 기다렸다 탔데."

겸은 우리의 여행이 결정된 뒤로 친구들에게 롯데월드 이용에 관한 많은 정보들을 듣고 왔다. 기대와 흥분으로 가득 찬 겸의 눈빛에 나도 그만 설레어버렸다.


롯데월드 이용권은 미리 구매하고 매직 패스 이용권 결제를 위해 알람을 맞춰 두었다. 이용일로부터 삼일 전에만 예약이 가능하고 그 수량도 한정적이라 자정에 오픈런을 하지 않으면 내 몫으로 남는 게 없다는 후기가 많아서였다.

"아들, 우리는 매직 패스 5장짜리를 살 거야. 뭐뭐 타고 싶은지 생각해 봤어?"

"응? 왜 다섯 장만 사? 열 장 사면 안 돼?"

"응, 너랑 나랑 각각 끊어야 해서 매직 패스 2개를 사야 하는데 그럼 비용이 많이 비싸."

"얼만데?"

"5장에 45,000원이야."

"에이, 얼마 안 하는데?"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쓰는 돈 45,000원을 우습게 아는 겸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남편과 내가 겸의 레고에 쏟아부은 돈이 부른 화였을까?  이래서는 안 될 노릇이라는 생각에 남편과 겸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이번 여행에 매직 패스는 없어. 우리는 가서 45,000원의 가치를 배워 올 거야."




서울 출신 언니들은 매직패스 없는 주말의 롯데월드에 치를 떨었다.  중학생들이 많아도 너무 많아 이용이 번잡할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의견이었다. 하지만 이미 약속된 일을 엎을 수는 없었으므로 감행해 보기로 했다. 아침 7시 버스를 타고 9시쯤 도착하면 개장 전 한산하게 입장할 수 있지 않을까?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가방을 멘 우리 모자는 버스 안에서 일출을 맞이하며 서울로 향했다.

오전 9시 롯데 월드 입구는 이미 만원

순진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었다. 어젯밤부터 여기 있었던 것일까? 솜털이 보송보송하게 덮인 얼굴로 바닥에 앉아 태연히 컵라면을 먹고 있는 중학생들과 과잠을 입고 줄을 서있는 대학생들 그리고 겸보다 조금 더 커 보이는 초등학생들이 입구부터 지하상가까지 들어차 있었다. 게다가 00 태권도, 00 어학원 가방을 멘 단체 손님들로 입구 쪽은 땅이 안보였다. 지금 줄을 서나 나중에 줄을 서나 한가로운 입장은 이미 물 건너간 상태. 우리는 아무도 관심 없는 인생 네 컷 부스로 들어가 상태 좋은 얼굴을 남기기로 했다.  


만족스러운 사진을 들고 나왔을 때 물결이 일듯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입장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줄의 제일 끝을 찾아 달렸다. 곧 지하상가에 네 줄로 서있던 인파들도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우리는 인파에 휩쓸려 매직 캐슬로 입성했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자이로 드롭

그 무엇도 다 탈 수 있다고 큰소리치던 겸은 자이로 드롭 앞에서 자각했다.

"엄마, 나는 이건 못 탈 것 같아."

늘 '싱글 라이더' 라인에 줄을 서서 모든 어트랙션을 섭렵하던 나도 자이로 드롭을 탄 뒤 실성했던 기억이 있다. 친구가 아무리 일으켜 세우려 해도 일어날 수 없었던,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채 말도 못 하고 하염없이 웃었던 서른의 추억이다. 그래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다시 그 스릴을 견딜 자신도 없었지만 겸이 타고난 뒤 겪을 후유증이 진심으로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떨어지는 순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내려오는 사람들을 보며 뒤돌아서는 겸을 보며 내심 안도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엄마, 나는 이것도 못 타겠고, 저것도 못 타겠고..."

회전그네조차 높아서 못 타겠다고 하는 겸을 졸졸 따라다니며 피식 웃음이 났다.


아주 만만한 어트랙션들을 타며 그럭저럭 재미난 시간을 보냈다. 미로 찾기를 좋아하는 겸이 '거울의 방 미로 찾기'에 들어갔을 때 나는 잠깐 화장실로 향했다. 오전에만 해도 임시점검 중이던 후룸라이드가 운영을 재개하고 있었다. 나는 인파에 내 몸뚱이를 끼워 넣으며 겸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겸, 엄마 후룸라이드에 줄 서 있어. 이쪽으로 와."



후룸라이드를 기다리며

후룸라이드에서 줄을 설 때만 해도 오후 1시였는데 타고 나오니 시계는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겸의 친구 말대로 3시간을 꼬박 기다린 끝에 1분 남짓 후룸라이드를 탄 것이다. 우리는 그 지루한 시간을 지루하지 않기 위해 사람들 틈에서 발악을 했다. 잠깐씩 핸드폰의 힘을 빌어 공룡 점프 게임도 했지만 배터리를 아껴야 했으므로, 대게는 묵찌빠 게임을 하며 시간을 버텼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는 그 줄 위에서 우리는 매직패스의 위력을 느꼈다.

"엄마, 45,000원 벌기가 이렇게 힘든 거구나."

겸의 말에 겨우 고개를 끄덕였던 이유는 배고프고 발가락이 아파 대답할 기운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부디 내 표정이 썩어 들어가 있지 않았기를!) 세 시간을 꼼짝없이 갇힌 동안, 속으로 나를 위해 매직 패스는 꼭 끊었어야 했다는 야멸찬 잔소리를 퍼부었다.


시장이 반찬이란 말은 거짓말이다. 배 가죽이 등 가죽에 들러붙어버릴 만큼 배가 고팠지만 매직 캐슬 안에 있던 어떤 햄버거는 정말 먹기가 곤혹스러웠다. 맛있는 음식으로 보상받고 싶었다. 하지만 멀리 가지 못 한 채 롯데월드 퇴장로 바로 앞 김밥 집에서 떡볶이와 라면, 김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서울에는 멋도 맛도 한 껏 갖춘 식당이 정말 많은 걸 아는데, '그림의 집'일뿐이다.   

우리 발 밑에 롯데월드

롯데 타워가 올라가고 싶다는 겸을 위해 한 시간반을 기다려 야경을 구경하고 서둘러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하필 우리가 타야 하는 버스는 12분에 한 대씩 오는데 방금 차가 떠나버렸다. 밤 10시, 차가운 겨울바람에 맞선 우리 모자는 가방의 무게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핫팩을 꺼내 서로의 볼에 대주었다. 그리고 나란히 앉은 버스 안에서 서로의 언 손을 꼭 잡았다.


일상의 터전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낯선 경험들이 진진한 감동을 전했다. 서투른 서울 땅에서 함께 겪은 전쟁 같던 경험은 나와 겸, 그 사이에 전우애를 남겼다. 돈을 아끼고 새로운 사랑을 얻은 완벽한 밤이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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