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 대신 시루떡 먹는 날
애동지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절기는 양력이지만 동지 당일 음력일이 월초면 팥죽 대신 시루떡을 먹고 애동지라 부른다고 한다. 음력을 따져보니 오늘이 11월 10일. 턱걸이 애동지였다. 팥죽 쑤는 일은 생각보다 번거로워 늘 고민하게 되는데(생협의 레토르트여, 너는 너무 잘 나온다!), 고민을 접고 시루떡을 구매하면 된다하니 절로 웃음이 났다.
동지에 팥죽을 먹지 않는다고 쇠고랑을 차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꼭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까? 이유는 딱 하나, 우리의 전통을 아이들에게 남기고 싶어서다. 농사짓는 사회는 아니지만 어쩐지 우리 선조들의 해학과 지혜가 담긴 세시 풍속 속에서 뿌리를 찾게 하고 싶달까? 꽤나 거창한 포부다.
거의 대부분의 옛날 문화는 농경 사회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발달되었다. 때문에 전통문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대 사회에서 향유하기 어렵다. 고도의 산업화 시대를 넘어서 지식 정보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던 세상을 지나, 누적된 가치들이 거대한 지식과 정보의 더미가 되어 인공지능이 탄생한 세상에, 절기나 세시 풍속 같은 오프라인 아날로그는 이질적이기만 하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무섭다. 사람이 사는 이 땅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삶을 나누는 풍속이 난감한 어려운 세상이라니. 이 땅은 누굴 위한 땅이고 우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역시 너무 많이 갔다. 팥죽 한 그릇에 우리 존재에 대한 의구심까지 품다니. 하지만 분명한 건 세시 풍속을 즐기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의 직접적인 접촉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동짓날이면 팥죽만 먹은 것이 아니라 모든 빚은 청산하고 어려운 일은 일가친척, 이웃 주민들과 마음을 열고 함께 풀어갔다. 연말이면 불우이웃 돕기 운동이나 구세군 냄비가 종을 울리는 이유도 동짓날의 세시 풍속이 그 유래다.
애동지라 시루떡을 먹는다는 안도감 속에서, 크리스마스에 들떠 늘 동지가 뒷전으로 되는 안타까운 현실을 본다. 자연과 연결되어 있던 태곳적 인간들의 집단지성이 인공지능에 밀려버린 세상에 살고 있음이 실로 유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