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나를 응원해 주고 있어
몸도 마음도 고생 많이 했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감정들로 인해 다시 깊이 묻어 버렸던 파편들이 상담심리학을 공부하며 다시 조각조각 떠올랐으니까. 나는 꾸역꾸역 그 파편들을 이어 맥락을 만들어야 했고 어쩔 수 없이 과거로부터 이어진 내 인생의 긴 띠를 완성해야 했을 때 참 많이 울었다.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불이 붙어 버린 마음이 분노를 연료로 활활 타고 있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끈기 없는 나의 분노는 이내 동이 나버렸고 재만 남은 마음 위로 하얀 연기만 아스라이 피어올랐다. 그 모습은 아름답지도 몽환적이지도 않았고 황량함 그 자체였다. 다 타고 남은 마음을 바라보며 그다음엔 어떤 감정을 가지고 와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허무해야 하는지, 안도해야 하는지, 후회해야 하는지, 슬퍼해야 하는지. 그래서 또 울었다. 몰라서 슬픈 마음이 무너진 둑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괜찮아졌다는 말로 포장하고 또 한참을 회피했다. 누구나 그렇다고 믿고 싶다. 요원한 삶은 피하고 싶어 한다고 말이다. 나의 지난했던 과거를 직면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다시 온라인으로, 책으로, 수다로, 세상의 일부가 되어버리기 위해 노력했다. 나로서 온전하게 걸어 나간 것이 아니라 비굴하게 흡수되고 싶었다. 하릴없이 나란 사람이 오롯이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이 마음속에 있었다. 피하고 싶어 다시 밤새 핸드폰을 집어 들었고, 책 속의 주인공을 탐닉하고, 남편을 붙잡고 사변적인 이야기로 수다를 떨었다.
밤새 삶으로부터 도망치다가 결국 몸이 지쳤다. 거울을 보면 반쯤 감긴 눈 밑으로 다크서클이 드리워져 있었다. 장 기능 저하로 생긴 경미한 탈수 증상이 부종을 불러와 온몸을 뻣뻣하고 아프게 했다. 그런 중에 참여하고 있는 엄마 심리 공부 북클럽의 첫 번째 모임 날이 도래했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감사한 일 3가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사십일 년을 사는 동안 나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단 한 번도 성공적인 적응을 하지 못했다. 언제나 과거의 이야기에 얽매여 겉돌았고 수동적이었으며 그런 이유로 가끔은 내쳐질 때도 있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필요에 의해 써야 하는 페르소나를 두려워했다.
그럴 때 기꺼이 나의 손을 잡아주고 “너를 알고 너를 믿어.”라고 말해준 사람들이 생각났다. 첫 번째 두 번째는 명확하게 지명할 수 있었는데 세 번째에는 딱 한 명을 지목하기 힘들었다. 내 삶 속에 깊이 들어온 사람들부터 스치고 지나간 사람들까지 그들의 지지와 응원, 애정과 진심이 한꺼번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이 끝나고도 자리에서 뜨지 못한 채 계속 생각했다. 그리고 어떤 결론에 닿았다. 내 삶이 온통 나를 지지하고 있다는 결론 말이다. 매 순간순간, 내게 필요한 사람을 보내주고, 필요한 일을 보내주고, 그렇게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도록 온통 지지해 주고 있다는 결론 말이다.
과거의 힘들었던 일들은 지금의 내가 이겨 나갈 수 있도록 이런저런 공부와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있었다. 그 일들을 바탕으로 내 마음을 공부하고 글을 쓰고 있고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려웠던 유년시절은 오직 평생 나를 괴롭고 힘들게 하기 위해서만 일어난 일은 아니라는 결론이 지어졌다.
삶은 내게 지속적으로 도와주는 손길과 지지와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계속 보내주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들에게 줄 수 있는 마음이 있다. 이 이유만으로 내가 이 땅에 두 발붙이고 살아갈 이유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사실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달은 지구 중력에만 의존한 채 존재하지 않는다. 달 또한 자신의 중력을 지구에 미치며 존재한다. 그림책 <<달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에서는 달 이야기가 한 번도 나오지 않고 동명의 영화를 보는 여우와 험프리가 나온다.
여우는 자신의 야생 본능을 모두 버리고 빠르고 성공적으로 도시 생활에 적응한 인물로 나온다.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여우는 그런데 어쩐지 외로워 보인다. 험프리는 도시 생활에 전혀 적응하지 못해 우울한 당나귀이다. 험프리는 우연히 여우를 만나 친구가 되고 도시 생활을 누리게 된다.
험프리가 여우의 이름을 불러주며 꼭 안아주는 것으로 끝나는 이 그림책의 이후를 생각해 본다. 험프리는 비단 여우에게 의존만 하는 존재로 남지 않을 것이다. 험프리가 간직하고 있는 야생의 정체성을 통해 여우는 잃어버린 혹은 적응을 위해 모두 버린 자신의 본질을 찾게 될 것이다.
삶은 두 친구를 이어줌으로써 서로에게 영향력을 미치며 자신의 본질을 수용하고 도시에서 적절하게 조화되며 살 수 있도록 응원과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마치 지구와 달의 운명을 온 우주가 지지하는 것처럼. 험프리와 여우가 함께 본 영화 <<달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는 바로 그런 내용을 담고 있지 않았을까?
그림책을 보는 동안 ‘삶의 모호한 일들이 유발한 어려운 감정을 포기하고 피하려고 하는 순간 삶은 내게 조력자를 보내고 직면할 기회를 주며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참 오랜만에 마음속에 감사한 마음이 가득 차 올랐고 눈에서는 굵직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앞으로 나는 내가 가진 그릇 속에 나를 얼마나 온전히 담아내고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매번 잘하겠다, 장담은 못해도 지금처럼 도망치고 회피하며 나를 힘들게 하지는 않을 테다. 그 어려운 시기가 다시 돌아와도 지금 이 순간 속에 과거로부터 이어진 지금의 내가 있음을, 내 삶이 나를 온통 지지하고 있음을 꼭 기억하고 싶다.
사족: 하지만 언젠가 험프리와 여우는 헤어질 것이다. 달이 1년에 4센티미터씩 지구에서 멀어지는 것처럼. 조화롭고 균형 있는 자아가 만들어지면 독립적인 구성원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삶이 살고 싶어 질 테니까. 그것이 자아실현의 욕구이고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라고 하지. 우리 삶 속에서 만남과 이별이 흔한 이유일 것이다. 그 잦은 이별의 순간마다 어린아이처럼 울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