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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 매거진 Jan 12. 2018

무인양품과 하라 켄야

호텔까지 진출한 무인양품과 탁월한 디자이너의 사유

간결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사랑받는 무인양품(無印良品)의 첫 번째 호텔 '무지 호텔(Muji Hotel)'이 중국에 문을 연다. 다가오는 1월 18일, 중국 선전을 시작으로 베이징, 나아가 2019년에는 일본 긴자에도 열 계획이다. 끊임없이 성장하는 무인양품의 무한한 가치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무지 호텔(Muji Hotel)이 드디어 예약을 받기 시작했다. 2018년 1월 18일 대중에게 최초 공개되며, 가격은 1박당 145~385 달러이다. 무지 호텔의 목표는 적절한 가격으로 훌륭한 수면을 제공하고 여행자를 지역사회에 연결하는 것(공식 웹페이지: https://hotel.muji.com).


중국 선전에 오픈 예정인 무지 호텔의 내부 (출처: hotel.muji.com)


리셉션 데스크는 2층에 위치하며, 4층부터 6층까지 총 79개의 객실을 보유하고 있다. 무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곳은 호텔을 넘어 무지 월드에 가깝다. 2~3층에는 무인양품 매장이 오픈 준비 중이며, 무지 도서관(Muji Books)과 무지 식당(Muji Diner) 또한 이용 가능하다. 특히 무지 다이너는 호텔 투숙객에게 세계 각국의 가정식 요리에서 영감을 받은 영양가 있는 음식을 제공한다. 도서관은 24시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임대 가능한 3개의 콘퍼런스 룸도 갖추고 있다.


객실의 용품들은 무인양품의 미니멀한 제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출처: hotel.muji.com)


“너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호텔'을 생각했어요.”


무인양품의 가나이 마사아키 회장은 중국 출장을 갈 때마다 묵었던 숙소가 지나치게 넓었던 점을 언급하면서 적당하고 담백한 호텔을 구상했다고 한다. 군더더기를 줄이고 콤팩트한 삶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어느 럭셔리 호텔보다도 완벽한 컨셉이다.


욕실의 어매니티 또한 무인양품의 제품들로 통일되었다. (출처: hotel.muji.com)



무인양품의

무한한 가치를

창조하다



작은 생활용품에서 시작해 호텔 사업까지 진출한 무인양품의 성공 비결에는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언제나처럼 모든 브랜드 배후에 있는 유능한 디자이너의 힘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애플과 브라운에 각각 스티브 잡스와 디터 람스가 있었다면, 무인양품에는 바로 하라 켄야가 있었다.


2001년 부터 무인양품의 아트 디렉터로 활동한 하라 켄야(原研哉, 1958~) (출처: phaidon.com)


하라 켄야(原研哉, 1958~)는 일본의 그래픽 디자이너로 무사시노 미술대학 교수이자 일본 디자인센터 대표이다. 오카야마 현 오카야마 시 출신으로, 1983년 무사시노 미술대학 대학원에서 디자인 전공을 수료했으며, 2001년부터 무인양품(Muji)에서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하라 켄야와 무인양품의 인연은 2001년 8월 그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된다. 무인양품의 다나카 잇코는 직접 하라 켄야에게 전화를 걸어 긴자의 한 찻집에서 만나기로 한다. 그 용건은 MUJI로 잘 알려진 브랜드인 ‘무인양품’에 대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 만남에서 시작된 하라 켄야의 여러 작업 중 단 한 장의 이미지를 꼽으라면 단연 아래의 무인양품 캠페인이다.


하라 켄야의 커뮤니케이션에는 오직 시각적 아름다움 뿐 만 아니라 간명하면서도 탁월한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다. (출처: muji.com)


“지평선이란 아무것도 없는 영상이지만 그곳엔 반대로 모든 것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라 켄야는 무인 양품의 브랜드 이미지를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 어떠한 제품도 배제하고 오직 대자연의 지평선을 선택했다. 지평선이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눈에 보이는 하늘과 땅 모두를 바라봄으로써 오히려 모든 것이 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렇듯 그의 디자인에는 오직 시각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간명하면서도 탁월한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다.



간결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사랑받는 무인양품의 제품들 (출처: muji.com)



디자인의

본질



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과연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지 심지어는 디자인이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렇듯 디자인은 도대체 뭘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무인양품의 파트너 디자이너이자 수퍼 노멀 Super normal로 저명한 후카사와 나오토는 하라 켄야의 저서를 읽어볼 것을 권했다. 과연 하라 켄야 말하는 디자인은 무엇일까.


“사회의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해석해나가는 과정에 디자인의 본질이 있다.”


하라 켄야는 그의 디자인 철학을 담은 저술 활동을 꾸준히 지속해오고 있다. (출처: pinterest)



하라 켄야는 예술과 디자인의 발생의 근원의 차이를 지적하며 그의 주장을 풀어나간다. 그는 예술은 개인이 사회를 마주 보고 하는 개인적 의사 표명으로 발생의 근원이 매우 사적인 데 있으며, 따라서 아티스트 자신만이 그 근원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편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그 동기가 개인이 자기를 표출하고자 하는 의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쪽에 있다고 주장한다.


하라 켄야의 간결하고 일관된 디자인 (출처: pinterest)


즉 사회의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해석해나가는 과정에 디자인의 본질이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문제의 발단을 사회에 두기 때문에 그 계획이나 과정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어 다른 사람들도 디자이너와 같은 시점에서 그 길을 따라갈 수 있다고 말한다. 개인의 차원이 아닌 사회적 차원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해 나가는 것이 바로 디자인이자 디자이너의 역할인 것이다.



창조의

열쇄

리-디자인



그렇다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디어의 원천은 무엇일까. 하라 켄야는 디자인은 단순히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눈과 귀를 활짝 열고 생활 속에서 새로운 의문을 발견해나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디자인은 오히려 눈과 귀를 활짝 열고 생활 속에서 새로운 의문을 발견해나가는 것이다.”


사소한 자발적 불편을 통한 자원 절약을 유도하는 리-디자인 제품으로 보관도 용이하다. (출처: pinterest)


 “제로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도 창조지만 기존을 것을 미지화하는 것 역시 창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창조라고 하면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라 켄야는 일상에서 찾는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그의 디자인 행위는 곧 ‘일상의 미지화’로 대변된다. 기지화된 것, 즉 이미 알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매력을 주지 못한다. 디자이너는 기존의 것을 미지화 함으로써 창조를 일구어낸다. 생활 속에서 새로운 의문을 발견해 나가는 일은 비단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더 나은 일상을 위한 좋은 지침이 될 것이다.


사용할 때마다 직관적이고 명확한 메세지를 읽을 수 있다. (출처: designboom.com)



햅틱,

시각에서

촉각으로


일반적인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시각적 요소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하라 켄야는 유난히 촉각을 중시한다. 가령, 나가노 동계 올림픽을 위한 종이 디자인에서 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하라 켄야가 나가노 동계 올림픽 프로그램을 위해 맡은 디자인으로 마치 설원 속 발자국을 연상 시킨다.(출처: zte.com.cn)


“나는 그래픽 디자이너다. 단 취급하는 영역을 시각적인 것으로 제한하고 있지는 않다. 촉각을 비롯하여 다양한 감각 채널을 향하여 메시지를 만들고 있다.”


최근 대대적인 리뉴얼로 주목받았던 긴자 백화점의 종이 쇼핑백 (출처: ndc.co.jp)


하라 켄야는 인쇄된 사진이나 문자는 시각적인 것이지만 그 정보를 기재하고 있는 종이는 추상적인 하얀색 평면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종이는 손끝에 섬유의 질감을 전해주는 물질로서 미세하게나마 무게감도 느껴진다. 즉 그것은 촉각이라는 자극을 싣고 있다. 한 장의 전시회 티켓을 대하는 태도 하나에서도 차별화된 관점을 엿볼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무뎌진 우리의 감각을 활성화시키는 대목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촉각이 느껴지는 헵틱(haptic) 디자인 (출처: designboom.com)



디자인에 대한 그의 명료한 철학은 무인양품이라는 강력한 브랜드를 세계적으로 확장시켰다. 사실 디자인은 결코 절대불변의 개념이 아니다. 브랜드와 함께 성장하고 변화한다. 무엇보다도 디자인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즉 디자인은 사람과 사회, 시대를 위한 행위이다. 탁월한 디자이너의 시선을 공유를 통해 우리들의 삶이 조금 더 풍요로워 지기를 소망한다. 이는 비단 디자이너 뿐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을 소개하며 기사를 마친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디자인의 디자인 DESIGNING DESIGN»

(출처: agbook.co.kr)

하라 켄야의 대표 저작 중 하나인 «디자인의 디자인»(원제: DESIGNING DESIGN)이 2007년 우리말로 번역 출간된 뒤 꾸준히 사랑받아 온 10주년을 기념하여 양장본으로 발행되었다. 새하얀 양장 커버와 미색 띠지의 조합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울 뿐 아니라, 그 내지에 소상히 담긴 하라 켄야의 디자인 철학은 소장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저자 | 하라 켄야

역자 | 민병걸

출판사 | 안그라픽스

발행일 | 2017.3.30

판형 및 두께 | 153*224*35mm

분량 | 272쪽

ISBN | 9788970598871


에디터 정진욱 Chung Jinwook

커버 이미지 muj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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