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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영 Mar 24. 2022

도대체 헬륨 풍선을 왜 사는 거야

나는 놀이동산에 가면 딸에게 헬륨 풍선을 사준다. 대형 쇼핑몰을 갈 때도. 길을 갈 때도 헬륨 풍선이 보이면 사준다. 딸이 풍선을 사달라고 하지 않을 때는 서운하기도 하다. 쓸데없는 소비를 정말 싫어하는 남편의 눈치를 보며 딸이 헬륨 풍선을 사달라는 말을 먼저 하길 바라며 기다린다.


어쩔 때는 헬륨 풍선을 사고 싶어서 쇼핑몰에 갈 때도 있다.(이유는 감춘다) 딸의 요구에 한 치도 주저 없이 풍선을 살 때마다 남편은 묻는다.


"도대체 시간 지나면 사라지는 공기뿐인 헬륨 풍선을 왜 사는 거야"


순간 멍해졌다. 그렇다. 가격이 저렴하지도 않다. 대부분 캐릭터 얼굴에 가스가 들어있을 뿐인데 헬륨 풍선 하나에 만 오천 원에서 만 팔천 원까지 한다.

헬륨을 넣은 캐릭터 풍선은 2-3천 원이면 살 수 있다. 풍선에 바람 불어 공기를 넣어도 그만이다.


'그러게 나는 헬륨 풍선을 왜 사는 것일까.'


나는 어려서 놀이동산을 가본 적이 없다. 또한 헬륨 풍선 한번 들어본 적도 없다. 어렸을 때 헬륨 풍선 들고 엄마 손 잡고 놀이동산 다니는 친구들이나 그런 모습을 TV에서 보고 몹시 부러워했던 기억만 있다.


나는 어린 시절 갖지 못한 추억을 사는 것인가. 어른이 되어서야 딸에게 들려준 헬륨 풍선을 들어보았다. 두둥실 떠있는 풍선을 붙잡고 있는 느낌이 좋다.


하늘을 날 수도 있는 자유로운 무엇을 내가 붙잡고 있는 느낌이 든다. 허공을 나는 자유와 나는 끈으로 이어져 있고 그 알 수 없는 연결이 내 마음을 붕 뜨게 만든다. 


둥둥 떠있는 풍선과 함께 내 안에 동심과 설렘도 같이 둥둥 떠 있다. 집에 데려온 헬륨 풍선은 손잡이 떼어 놓는다. 그러면 풍선은 두둥실 올라 천장에 꼭 붙어 있다.

그리고 나를 내려다본다. 다들 잠든 새벽 소파에 누워 천장에 매달린 곰돌이를 쳐다보면 어릴 때 갖지 못한 동심을 산 기분이 들어 미소를 짓고 좋아한다.


내면 아이가 말한다.

'괜찮아! 늦었지만 나도 있어 풍선. 엄마가 사주지는 못했어도 내가 내 능력으로 샀어.'


어릴 적 내가 부러워 했던 친구들 모습 때문인지 헬륨 풍선을 들고 가는 딸이 뿌듯하다. 대형 복합 쇼핑몰에서 주변을 한번 둘러본다.


완전한 자본주의로 집약된 이 현란하고 화려한 건물 속에서 나는 상당히 쓸데없는 사치품인 헬륨 풍선을 딸에게 들려줄 수 있는 능력 있는 엄마라는 것에 내심 기뻐한다. 정말 유치한 내면 아이다.


나는 타인의 시선을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마음이 이상하고 부끄러운데도 또다시 헬륨 풍선을 파는 곳을 만나면 달려가 풍선을 딸에게 들려주고 당당해진다.


당분간은 딸을 통해 나의 내면 아이에게도 풍선을 사주어도 되지 않을까. 


천장에서 내려보고 있는 곰돌이 풍선.  매주 캐릭터가 바뀌며 천장에 떠 있다.


빵빵 통통했던 곰돌이 얼굴이 점점 쭈글 해 진다. 만 팔천 원이 피식피식 세어 나가고 있다. 가스가 절반 정도 빠지면 초췌하고 서글퍼진 얼굴로 서서히 땅으로 내려온다. 그러면 이내 나도 슬퍼지고 다시 풍선을 사러 나가고 싶어 근질하다.


영원히 가스가 세지 않는 헬륨 풍선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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