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지 않은 어른들은 지나치게 남의 인생에 간섭하고 오지랖이 넓다.(이렇게 말하는 나도 어느덧 기성세대가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을 답습하지 않으려 조심한다는 것은 다르다고 자부할 수 있겠다.) 인생의 선배로서 경험치를 궁금해 본 적도 없는데 충언과 조언을 한 수 놓기 위한 틈을 찾아대는 것 같다.
20살이 넘어가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질문을 받는다.
1. 취업은 했니?
2. 애인은 있니?
3. 결혼은 안 하니?
4. 애는 언제 낳을 거니?
5. 둘째는?
기성세대들의 질문은 둘째 계획을 묻는 것에서 끝난다. 요즘 같은 시대에 셋째를 물어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마치 4인 가족이 가장 안정적인 구도로 가족그림의 정석인 것처럼 각인돼 있기라도 한 것 같다.
기성세대나 꼰대와의 갈등을 항상 피해 가기만 했던 나로서는 4번까지의 질문에는 10년도 안돼 OK!라고 답하고 넘어갈 수 있었으나, 마지막 관문인 질문은 10년째 듣고 있으며 아직까지도 ing 중이다.
어떤 이가 또 둘째는 안 낳을 거니?라는 질문을 한다. 그에 대한 대답을 차리리 미리 적어서 품 안에 넣어 놓고 다니며 그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질문자의 손에 쥐어주기라도 하고 싶다.
흠. 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제가 왜 안 낳는냐면요...
처음에는 둘째 계획을 묻는 질문에 구구절절 나의 생각과 이유에 정성껏 이야기했다.
"제가 둘째를 낳지 않는 이유는 첫째, 제가요. 사실은 애를 낳다 죽을 뻔했지 뭐예요. 아이 키우면서 다 잊는다고 하지만 저는 지금도 그 아픔과 두려움이 아직도 생생해요. '이렇게 죽을 수도 있구나' 현대 의학이 아니었으면, 옛날에 태어났으면 죽을 뻔했네요. 출산일을 훌쩍 넘겨 유도 분만하는데도 아기가 나올 생각도 안 하고 싶지어 양수가 먼저 터졌고, 은근 자연분만을 기대하는 모두의 기대에 무리하다 위험해져서(블라블라)....
둘째, 맞벌이 부부로서 조력자가 주변에 아무도 없어요. 양가 모두 먼 남쪽 지방에 계시고 그렇다고 이모님을 쓸 형편도 안되고요. 휴직 1년 만에 복직해 아이는 10개월 때부터 어린이집에 맡겨졌어요. 그때 딸이 정말 애틋하고 마음이 아팠어요. 그런 아이를 또 만들고 싶지 않고요
게다가 수족구 같은 전염성 질환에 걸리게 되면 다 낳을 때까지 5일간 어린이집에 못 맡겨지는데 애 봐줄 사람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여기저기 아쉬운 소리나 부탁하는 것이 참 힘들었지요.
셋째, 저는 예쁜 딸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 싶었고 지금 예쁜 딸이 있어 부족함을 모르겠네요. 청춘도 아닌데 다시 아기를 위해 제 인생을 포기하고 육아하다가 늙고 싶지 않네요.
넷째, 결정적으로 우리 부부는 각자의 삶에 충실하게 살기 바쁘고 늘 잠에 쪼달려 사네요. 하늘을 봐야 별을 따는데 말이죠.
이렇게도 장황하고도 구체적으로 세세한 이유를 들어 대답을 했었더랬다.
그럼에도 늘 다시 돌아오는 질문은 똑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첫째를 위해 둘째는 있어야 하는 거야"
김이 빠졌다. 어느 날 명절 저녁 시댁 식구들과 모여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거나하게 한잔 하신 시아버님이 또 말씀하셨다. 모임이나 명절 때마다 듣는 말이었다
"내가 장손을 못 낳아 죽어서 부모님을 뵐 명목이 없다 "
예전에는 그냥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려 했지만 '내가 이 집안 장손 낳아드리려고 결혼했나. 아들 낳는 것이 나의 의무인가.'라는 생각에 마음속 서운함의 응어리가 남았었다.(남편은 결혼 전 분명히 자기는 '장손이 아니며 아들 낳으라고 강요하는 집안의 어른은 아무도 없다'라고 했었다)
그런데 십 년 가까이 듣다 보니 상처에 굳은살이 생겨 아픔이 무뎌졌다
그리고 그날은 나도 기분 좋게 한잔 한 터라 취기를 빌려 웃으며 조목조목 대들었다.
나 : "아버님,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손주가 아들 못 낳았다고 부모님이 뭐라 하시면 '아들 내외의 가정사에 간섭할 수 없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부모님 생각도 바꾸라고 하세요. "
아버님: " 나중에 제사와 산소는 누가 돌볼꼬"
나 : "아들 낳았다고 해서 그 아들이 과연 할까요. 아버님 어머님 제사는 제가 해요. 하지만 손주한테 까지 제사상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 것 같아요. 제사는 이제 우리 시대에 끝나요."
아버님 : "아이가 혼자 얼마나 외롭겠니, 그리고 너희 나중에 부모 부양을 애가 어떻게 혼자 하니"
나 : "딸 결혼해서 남편도 애도 있을 건데 뭐가 외롭나요. 그리고 절대 부양 기대할 생각 없습니다. 저는 노후 튼실히 준비해서 좋은 요양원에 들어가서 살 거예요."
그 대화 이후로 아버님은 더 이상 말씀하지 않으셨다.
물론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해서 그런지 역정도 내지 않으셨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 격인가.
나도 너무 웃으며 대답해서 스스로 놀라기도 했고. 다른 가족들도 역시 아무 말씀 안 하셨다. (어이가 없어 못하신 건지 안 하신 건지 모르지만)
나는 일단 취해버리면 모든 상황에서 다 까르르 웃어버리는 주사가 있다. 무조건 기분이 좋고 별게 다 웃기다.
덕분에 마음속 서운함이 묵은 때를 벗기듯 시원했다
역시 사람은 할 말은 하고 살아야 된다. 대신 웃으며 대처하기. 내 나이도 이젠 마흔이 다됐는데 할 말은 하고 살자라고 다짐하는 계기도 되었다.
어른들은 왜 죽어서 제삿밥 못 얻어먹을 까바 걱정하시는지 도통 모르겠다. 죽어 없는 육신이 무엇을 먹는다고. 어떤 형식이든 자손들이 기억해 주면 될 것을.
둘째를 왜 낳지 않느냐는 질문에 구구절절 장황하게 이야기해봤자. 내 사연과 생각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요즘에는 왜 둘째를 낳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글쎄요. 워킹맘으로 사는 것이 생각보다 고된 지 안 생깁니다.'라고 말한다.
그럼 예전에는 이어지던 잔소리 대신 짠하다는 듯한 눈빛을 던진다. '애가 안 생기는 고통이 얼마나 클꼬'라고 혀를 차며 위로해 준다
나도 이렇게, 날아들 잔소리가 탑재돼 있는 답정너 질문에 능수능란하고 유연하게 받아넘기는 농염한 중년이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