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아이의 성장
남편이 기어이 본사로 발령이 나고 말았다. 커리어와 승진보다 공동의 육아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니겠냐고 목소리를 내 보아도 이미 결정된 것. 번복할 수 없단다. 우리에게는 양가 어른도 조력자도 없으며 도우미를 쓸 정도의 경제력도 없기에 눈앞이 캄캄했다.
남편이 원망스럽고 미운 마음이 일자 '나는 이혼했거나 사별했다'. '나는 과부 아닌 과부다'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삐치고 토라졌다.
남편이 없는 밤. 나는 내가 얼마나 겁이 많고 의존적인 인간이었는지 깨달았다. 우리 집은 아파트 1층. 문단속은 강박증 환자처럼 3-4번 반복되었다. 누웠다 다시 일어나 또 한 번 가스밸브도 확인하고 다시 일어나 밤새 수도가 얼까 물도 틀어놓았다.
뭔지 모르게 이유 없이 불안하고 초조했다. 이번 주부터 아빠가 없다는 것을 아는 7살 공주는 아빠가 가는 날밤에는 그렇게 서럽게 울더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 찾지도 불안해하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힘이 있다. 해맑음의 힘. 슬픈 일은 마음껏 슬퍼하고 금방 잊는다. 웃을 때는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아무 생각도 역지 않고 그냥 웃는다.
"아빠 안 보고 싶어?"
" 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잖아"
그렇다. 어쩔 수 없는데 나는 왜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아빠 없는 데 안 무서워?", "응, 안 무서워. 나는 엄마도 있고 번개맨 칼도 있어"라고 한다.
또 한 번 배시시 웃음이 난다. 나도 사랑하는 공주도 있고 삼중 도어락도 있는데 뭐가 무섭나.
실체도 없는 두려움. 두려움은 언제나 실체보다 크다
딸아이는 잠이 오지 않는 나를 위해 자장가를 불러준다며 "방구쟁이~ 우리 엄마 잘도 뀐다~ 잘도 뀐다"라며 키득거리면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가슴을 토닥토닥 두드려 준다.
도대체 누가 어른이고 누가 애인지 모르겠다. 내 안에는 겁만은 소심한 어린아이가 살고 있는데 이 아이가 딸이랑 함께 자라고 있는 것 같다.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나의 내면의 아이. 내 몸하나 내 멘탈 하나 건사하기 힘든데 어떻게 애를 키우나 했던 걱정은 기우였다. 완벽한 어른인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엄마는 아이와 함께 크는 것이었다.
딸 덕분에 내가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