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이별 경험을 가르쳐야 했다
오늘은 아이의 유치원에서 진급하는 반을 제비뽑기 하는 날이다. 6살이 되면 같이 어울려 노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로 나눠진다. 주로 활동 성향이 같으며 대화가 잘 통하는 무리끼리 그룹 지어진다. 우리 아이는 친한 친구가 4-5명 정도 있다.
제비뽑기 전날 반 뽑기 결과를 걱정하는 나에게 선생님이 말했다. 7살 진급반은 단 2반뿐이라서 4명 중 1-2명은 같은 반이 될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래서 어느 정도 걱정을 내려놓고 있었다.
그런데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오늘 7살 반으로 진급반 제비뽑기를 하는데 우리 아이만 친한 친구 그룹에서 혼자 다른 반이 되어 울었다는 것이다.
순간 멍해졌고 내 눈에서 왈칵 눈물이 고이는 것에 스스로 놀랐다.
내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었을 때 우리 중학교에서는 전교에서 딱 2명만 유일하게 거리가 먼 학교로 배정을 받았다. 아는 이가 하나도 없는 고등학교를 간다는 것과 친한 친구들과 헤어진다는 사실이 몹시 슬펐고 분했다.
선생님한테 따질 수도 누구한테도 물을 수가 없었다. 걱정과 불안이 앞서고 막막했으며 그저 억울했다.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 외딴섬에 표류한 것 같았다.
그때의 나의 그 억눌렀던 감정이 꺼내지고 말았다. 거기다 마음대로 안 되는 세상사 일에 더해 유치원생인 아이의 상황까지도 내가 컨트롤하지 못하는 영역임에 화가 났다.
어린 자식을 둔 부모는 알겠지만 내 아이를 맡기게 되면 나는 '을'이 된다. 항상 조심하고 공손하게 대했던 선생님에게 격양된 '갑'의 말투로 불만 섞인 감정을 내뱉고 강한 어조로 말에 힘을 주어 말했다.
"물론 친구들과 헤어지게 되는 이별을 경험하는 건 살면서 아이가 감당해야 할 시련이기는 하지만 아직 유치원생에게는 너무 가혹한 것 아닐까요. 살짝 선생님이 개입해서 융통성 있게 친한 애들 그룹별로 조금은 섞어주실 수도 있지 않을까요?"
"호호호. 어머님, 감이는 새 친구를 금방 사귈 수 있어요. 그리고 규정상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공정하게 제비뽑기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 호호호."
선생님은 감정이 전혀 동요되지 않은 채 해맑게 웃으며 별 일 아니라는 듯 말한다.
기분 나쁜 말투로 싫은 소리를 과감하게 던졌는데 상대가 기분 좋게 웃으며 받는다. 상대의 어떠한 공격도 웃으며 피하니 공격한 사람이 계속 이상한 사람이 되고 무안해지며 맥이 빠진다. 선생님의 엄청난 내공이다.
나는 이 젊고 여리여리해 보이는 선생님이 당황해 쩔쩔매거나 같이 슬픔에 공감해 주거나 하길 바란 모양이다.
아이를 하원할 때 표정을 살펴보니 기분이 좋아 보인다. 속상한 마음을 감추고 넌지시 반 뽑기 결과가 괜찮은 지 물어봤다.
"친한 친구들과 떨어졌는데 괜찮아?"
"웅 괜찮아. 처음은 조금 속상했는데 선생님이 나는 새 친구들 하고도 잘 지낼 거라고 믿는대."
순간 또 멍해졌다. 나는 얼마나 미성숙한 인간인가. 당사자인 아이보다 더 앞서 슬퍼하고 오버한 꼴이다. 상황을 속상해하고 한탄해하는 것보다 네가 잘해 낼 거라고 믿음을 줘야 했다.
"엄마도 감이를 믿어. 양보도 할 줄 알고 누구 하고도 잘 어울리고 항상 잘 지냈잖아"
아이도 아이 특유의 힘이 있다. '친구를 못 사귀면 어떻게 하지', '나는 외톨이가 되면 어떡하지'와 같은 고민을 하지 않는다. 벌어진 상황에 걱정을 더하고 걱정으로 발생되는 감정을 또 더하지도 않는다.
아이 : 상황 - 슬픔 - 망각 - 믿음
어른 아이 : 상황 - 슬픔 - 걱정 - 분노 - 비관
그리고 그런 일은(외톨이가 되는 일)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을뿐더러 일어날 일이 없다고 자신을 믿는 것이다. 그런 자존감을 심어 줘야 했다.
자신을 믿는 힘. 아이에게 가장 주고 싶었던 것이 높은 자존감이었는데.
선생님께 전화해 1년 동안의 감사한 은혜를 잊고 순간의 감정이 앞섰다며 사과를 드렸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새 친구들을 어떻게 사귀면 좋을지 얘기해 보았다. 대화하다 보니 새로운 장점도 보였다.
1. 친구관계가 확장되고 더 많은 친구를 알 수 있다는 것.
2. 새 친구 사귀는 연습을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먼저 할 수 있다는 것.
3. 초등학교에서 더 많은 친구를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
친한 친구들만 모여 있으면 새로운 친구를 만들려 노력하지 않고 그 그룹에 한정되어 놀이의 확장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항상 모든 일에 일장일단이 있다는 진리를 잊고 있었다. 또 한 번 내 안에 아이가 성장한다.
(사진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