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처럼 응답으로 돌아오리라는 믿음
가파른 경사를 천천히 올라가는 산악열차를 탔다. 나는 붉은 기와지붕이 흩뿌려진 카탈루냐의 마을을 뒤로한 채 몬세라트 수도원을 향하고 있었다. 스페인어 “몬”은 산이라는 뜻으로, 몬세라트는 톱니모양의 산이라는 의미다. 거대한 바위들이 하늘을 향해 기도하듯 서 있었다. 6만여 개의 해저 융기로 이루어진 1236m 높이의 웅장한 몬테라스 산을 차창 너머로 바라보니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몬세라트 수도원은 검은 성모 마리아 ‘라 모레네타’가 있는 곳이다. 검은 성모상은 목재의 유약이 오래되면서 검은색을 띠게 되었다고 하는데, 예루살렘에서 성 루가가 50년경에 조각했다고 한다. 성 베드로에 의해 스페인으로 전해져 무어인들의 눈을 피해 동굴 속에 숨겨져 있었다. 전설에는 880년 무렵 목동들이 동굴에서 흘러나오는 빛과 노래 소리를 따라갔다가 검은 성모 마리아상을 발견했다고 한다. 교황 레오 13세가 검은 성모상을 카탈루냐의 수호성물로 지정했다.
아마도 그 빛은 땅속에서 솟았고, 노래는 하늘에서 내려왔으리라. 신이 땅과 하늘 사이에 뿌린 하나의 표식이었을 수도 있다. 표식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수도원을 세웠을 것이다. 수도원은 세속과 성스러움, 시간과 영원, 바깥과 안쪽을 가르는 경계선이 되었다. 나는 그 경계선 위에 발걸음을 조심스레 내딛었다. 심장이 고동쳤다. 드디어 높이 725m에 세워진 수도원에 도착했다.
나는 검은 성모상을 보기 위해 성당으로 들어갔다. 몬세라트 수도원은 세계 4대 성지 중 하나로 꼽히며 수백 년 간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곳이다. 그중에서도 어린 예수님을 안고 있는 검은 성모상의 손에 들려있는 공을 만지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집약된 곳이라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가 쌓인 공간이었다. 누군가는 기적을, 누군가는 위로를, 또 다른 누군가는 조용한 이별을 위해 성당을 찾았을 것이다.
검은 성모상은 내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그러나 근엄한 듯 자상해 보였다. 얼굴에는 미소도, 눈물도, 분노도 없이 고요했다. 나는 내 안의 무언가를 기원하기 위해 두 손을 모으고 성모상을 바라보았다. 기도의 언어는 침묵으로 변하고, 침묵은 오히려 더 깊은 말이 되었다.
기도하는 그 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 것은 뜻밖의 선물, 파이프 오르간 연주였다. 수도원의 돔 아래 울려 퍼지는 파이프 오르간의 선율은 위엄 있고도 부드럽게 벽과 천장을 타고 흘러, 정적 속의 나를 따뜻하게 껴안았다. 천상의 노래처럼 울려 퍼지던 소리는 음악이 아니라, 돌과 빛과 기도의 언어처럼 들려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수도원 밖으로 나와 바위산 풍경을 둘러보다가 가우디를 떠올렸다. 스페인의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는 몬세라트 산을 자주 찾아오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가 만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기둥, 생동하는 파사드, 하늘을 뚫을 듯한 탑은 이곳 몬세라트의 바위에서 비롯되었다. 가우디는 바위를 보고 신의 의도를 해독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는 이곳에서 하늘을 향한 사람들의 기도를 마음으로 전해 들었고, 그것을 성당의 형상으로 재현했을 것이다. 가우디가 스쳐 지나가면서 남겼을지도 모르는 흔적을 상상하며 수도원 외벽에 내 손을 얹었다. 위대한 건축가가 읽어낸 언어, 성모의 침묵으로 번역된 신의 말, 그리고 내 귀에 들려오는 파이프 오르간의 숨결까지, 이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내려오는 산악열차에서 눈을 감았다. 몬세라트의 바위틈을 스쳐 내려오는 바람 소리 사이로 여전히 파이프 오르간의 깊은 울림이 마음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고요한 어둠 속에서 바라보았던 검은 성모의 시선이 떠올랐다. 말없이 전부를 알아보는 것 같은 성모의 눈빛에서 내가 침묵으로 건넨 기도를 받아줄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맬 때 기적처럼 응답으로 돌아오리라는 믿음이 내 안에서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