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도 미술관에서 고야를 보고, 피카소를 떠올리다
마드리드의 아침은 조용히 열렸다. 나는 스페인의 수도 한복판에서 저 멀리 프라도 미술관 위로 쏟아지는 햇살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가 정문 앞에 섰을 때, 내 심장은 기대감으로 빠르게 뛰었고 깊은 희열을 느꼈다.
그림의 원작을 만난다는 것은 내 오랜 희망이 응축된 순간이다. 학창 시절, 미술시간에 서양화를 배우기에 앞서 공책 표지나 엽서, 책받침으로 먼저 눈에 익혔다. 화가의 이름보다 그림을 먼저 접했기에, 나중에라도 미술관에 찾아가 소장품을 직접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것은 과거에 그림을 보았던 기억과 현재에 실물을 마주하는 느낌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기억이 실체를 얻는 순간의 경이로움을 실감하고 싶었다.
먼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앞에 멈췄다. 구성과 압도적인 크기가 먼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화가가 그려 넣은 거울 속 왕과 왕비 등 그림 속 인물을 응시하면서 17세기 스페인 왕실의 일상을 엿보았다. 공주를 둘러싼 시녀들과 하인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자신이 맡은 일에 충실했다. 계급 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만 같아 내 마음은 착잡했다.
그 다음으로 루벤스와 엘 그레코의 그림을 관람한 뒤, 고야의 그림 앞에 섰다. 고야는 생전에 질병으로 인해 청력을 잃었다. 몸이 불편한데도 예술적 의지로 붓을 놓지 않았으며, 예술을 향한 그의 시선은 흔들리지 않았다. 더군다나 인물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 외형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런 연유로 나는 고야의 그림을 관람하는 동안 예술적 가치를 가늠하면서도 그의 그림에 대한 신념과 철학을 읽으려고 노력했다. 그가 그림을 통해 나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했다.
고야는 검은색을 잘 사용했기에 ‘스페인의 검은색’이라는 별명을 지녔다. 실제로 보니 어두운 절망을 연상케 하는 검은색의 그림이 많았다. 나에게 절망감의 절정을 안긴 그림은 ‘1808년 5월 3일’이었다. 이 작품은 근대회화사에서 기념비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 이전과 그 이후에 제작된 어느 그림보다도 역사적 사실을 충실하게 담았다.
1808년 나폴레옹은 에스파냐를 침공했다. 민중들은 프랑스를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를 프랑스군은 강경하게 진압하면서 마드리드 곳곳에서 학살이 벌어졌다. 이 그림은 5월 3일 새벽에 프린시페 피오 언덕에서 벌어진 프랑스군의 민간인 학살을 그리고 있었다.
빛과 어둠에 비해 선명한 핏자국이 내 눈에 각인되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유독 두드러지는 흰 셔츠를 입고 두 팔을 벌린 남자가 보였다. 그는 총구 앞에 선 채 마지막 눈빛을 던졌다. 공포를 이겨내고 항거한 사람이었다. 그 옆에 쪼그려 앉아 얼굴을 감싼 또 한 사람에게 오랫동안 시선을 빼앗겼다. 눈을 가린 채 주저앉은 인간의 형상은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는 총알보다 두려운 것을 본 듯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인간에게 총을 겨누는 눈빛이리라. 고야는 비명을 그리지 않았고 죽음을 극단적으로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인간이 이렇게까지 잔인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숨이 막혔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이 떠올랐다. 스페인의 화가가 남긴 또 다른 전쟁의 분모 형상이었다. 그 작품 속에도 총구가 나오고 무기를 지니지 않았던 맨몸의 민간인이 그려졌다. 아이를 안은 어머니, 맨몸으로 울부짖는 공포에 질린 남자, 해부학처럼 벌어진 목과 손, 내 조국의 민간인으로 바뀌어 있었다.
피카소의 그림은 나의 민족에게 벌어진 전쟁의 비극을 증언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이고, 분단과 학살의 상흔 속에서 언어와 기억을 배웠다. 고야의 그림은 프랑스 침략자 앞에 선 스페인의 자화상이었고, 피카소의 그림은 고야의 눈으로 한국을 바라본 증언이었다. 나는 그 둘을 잇는 선 위에 서 있었다.
스페인의 비극이 한국의 비극과 겹쳐졌다. 피카소는 고야를 따라 그리고, 나는 피카소를 통해 고야를 다시 읽었다. 피카소와 고야의 그림을 통해 나의 역사, 나의 뿌리, 내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시대의 피비린내를 떠올렸다. 그날의 스페인과 오늘의 한반도는 다르지만, 총구 앞의 눈빛만은 다르지 않았다. 나는 그 속에서 공포를 보았고, 분노를 보았고, 무엇보다 인간을 보았다.
미술관을 나와 마드리드 거리를 걸었다. 건물 외벽에 늘어진 그림자들, 문득 그것이 총구 앞에 선 사람들의 실루엣처럼 느껴졌다. 나는 고야의 흰 셔츠를, 피카소의 무표정한 민간인을, 그리고 화가들이 바라본 세상을 떠올리며, 두 그림을 잊지 못할 것이다.
예술 앞에서 우리는 말문이 막힌다. 그 순간, 침묵은 하나의 고백이 된다. 인간의 슬픔과 기쁨, 폭력과 사랑, 이를 포함한 모든 것들을 감당하려는 어떤 방식의 애도이자 찬미가 아닐까. 침묵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을 다시 듣는다.
예술은 국경을 넘는다. 나는 두 화가의 그림을 통해, 두 개의 나라가 겪은 두 개의 비극을, 내 하나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눈빛은 말보다 오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