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수필 부문 선정작품
새뜻한 돋을볕이 어둠을 사르며 적막한 공간에 들어선다. 밤사이 아무런 움직임도, 아무런 소리도 없던 곳을 지배하던 절대 고요도 서둘러 아침에 자리를 양보하며 길을 떠난다. 여기는 어린이 도서관이다. 나는 서유당(書遊堂)이라고 부른다. 책과 노니는 집인 도서관 안에서 어린이들이 머무는 장소일수록 분위기가 따뜻하고 부드럽다.
집과 책은 사람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안정과 안락함의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집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쉬고 안락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마찬가지로 책도 우리를 위로하고 안정된 마음을 주는데, 책을 읽는 과정에서 내 주변을 평온한 나만의 처소로 만들어 준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 도서관은 안정과 안락함이 축적된 장소다.
우리나라의 어린이 도서관은 1979년 사직공원에 처음으로 생겼다. 1906년 평양에서 문을 연 최초의 공공도서관 ‘대동서관’이 지어진 뒤, 73년 만에 생겨났다. 어린이 도서관이라고 이름을 붙였어도 그때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을 것이다. 종이로 된 출판물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교과서나 참고서, 동화책 등을 깨끗하게 읽고 선배가 후배에게, 형이나 누나가 동생에게 물려주던 때였다. 아마도 조용히 독서하고 공부하려고 이용했던 일반 공공도서관처럼 정적(靜的)인 이미지가 강했을 것 같다.
그에 비해 요즘 어린이 도서관은 동적(動的)이다. 책과 연계해 인형극을 보여주거나 작가를 초청해 강연을 듣는 장소가 따로 마련되어 있고, 영화를 보는 시청각실,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동아리방도 있다. 유아실에는 책을 가지고 도미노를 쌓는 아기들도 눈에 띄고, 소리 내어 읽어 주는 부모님도 있다. 모두 따사로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볼 뿐, 조용히 하라고 눈치를 주지 않는다. 그러니 이곳 도서관이야말로 ‘책과 노니는 집’ 즉 서유당(書遊堂)이 아닐는지.
인생시계의 가을 중턱을 숨이 가쁘게 넘고 있는 나도 어린이 도서관에 자주 방문한다. 그곳에서 내가 책을 바라보는 마음은 별빛을 응시하는 것과 같다. 어두운 밤하늘을 끊임없는 호기심과 열정으로 바라보는 어린이들처럼 나의 눈동자도 책장 앞에서 지식의 환향(還向)을 꿈꾼다. 책들은 나에게 끝없는 발견의 여정을 약속하며, 상상력의 날개를 펴주는 비밀의 문으로 느껴진다. 나의 항로가 되고 책 속의 각 페이지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나침반과 같다.
때때로 내가 책을 바라보는 마음은 뿌리를 응시하는 것과 같다. 뿌리는 정체성과 안정성을 상징한다. 나의 가계와 연결되어 내가 어디에서 생겨났고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안정된 틀을 발판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독서량이 늘수록 내 뿌리가 깊고 견고해질 것이라 믿으며 나의 존재를 가치 있게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수시로 상기시킨다.
나는 열독자 겸 애서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책을 열심히 읽기 위해서는 마치 나무가 깊은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성장하는 것 같은 인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나무는 뿌리를 깊게 내려야만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서 있을 수 있다. 나무처럼 내면의 뿌리가 깊어야지만 열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책을 통해 자아의 깨달음과 내적 성장을 이루고 싶다.
나에게 독서의 종점은 글쓰기다. 내적 성장을 위해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목마름에 허덕인다.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는 예로부터 다독(多讀)이 중요시되고 있다. 하지만 날마다 무거운 업무와 다양한 의무, 해야만 한다는 당위와 책임에 짓눌려 일상이라는 강을 무사히 건너지 못하고 물에 빠지는 일이 허다하다. 결과는 처참하다. 단 한 줄의 문장도 쓰지 못해 쩔쩔 매는 순간이면, 책을 읽지 못했다는 자책과 아쉬움에 가슴이 답답하다.
책을 읽는 행위는 내 가치관과 사상에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다. 그런데 가정과 직장에 독서할 여건이 마련되지 않으면 나의 사고는 날개가 꺾이고 부러져 날지 못하고 지상에 묶여 있는 것이리라. 잔잔한 바다와 같던 내 마음에 거친 폭풍우가 몰아치고 파도가 덮쳐 내 사유를 침식시키는 듯하다. 그럴 때 책을 펼치면 페이지는 물결처럼 흔들려 글자들이 내 눈동자에 인식되기 전에 바람과 함께 날아가는 것만 같다.
유채꽃 노란빛이 시(詩)처럼 흩날리는 봄날이다. 호미곶을 마주하고 있으니 유달리 소금기 실린 바람의 인자들이 몸에 들러붙는 것만 같아 내 마음이 세차게 흔들린다. 땅 속 뿌리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물줄기를 찾듯, 독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도서관을 찾는다. 구룡포에 있는 폐교를 새로 단장해 개관한 바닷가 도서관이다. 운동장 벽면에 해초를 입에 물고 있는 거대한 고래 벽화가 있다. 바다가 아닌 하늘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니 내 가슴이 요동친다. 정신적 빈곤에 허덕이는 나도 다시 자유를 되찾고 싶다는 열망이 고조된다.
나는 열람실을 향해 자박자박 발걸음을 옮긴다. 서가 사이에 들어서자마자 종이가 만들어지기 전, 갈대를 엮어 글자를 쓰고 그림을 그렸던 파피루스를 떠올린다. 파피루스의 후예들인 종이책과 눈인사를 나눈다. 정갈하게 정리된 서가 사이를 오가며 서너 권의 책을 꺼내 들면, 작가의 소중한 글을 제각각의 공법으로 알차게 꾸민 출판사의 노력이 표지부터 물씬 전해진다.
책을 펼치면 주옥같은 언어의 황홀경이 펼쳐진다. 인생의 세밀한 구석들을 명증하게 들추어내는 책을 들여다볼 때면, 글을 쓰고 싶은 나로서는 자극을 받는다. 나도 우리네 인생사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깊은 울림을 주는 문체를 사용해 진솔한 작품을 창작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다. 내 글 속 청신한 문장들이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날아가 선명하게 돋을새김 되어 빛나면 좋으련만.
큰 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를 잠시나마 무념무상 바라본다. 그러다가 ‘독서는 마음의 창문을 넓히는 여정이다.’라고 했던 노자의 말을 떠올린다. 그 창문을 열고 들어온 지식과 경험은 나의 내면을 더 넓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리고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비결이리라.
나는 지금, 내면을 넓히고 삶을 풍요롭게 하려고, ‘서유당’을 거니는 중이다. 한 손에는 책이라는 나침반을 들고서, 내 생의 지도에 나만의 항로를 그려 넣는다.
*기(記)는 한문 산문 양식으로 성현의 말씀을 인용하고, 사실을 그대로 적는 글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기록 문학이나 수필에 속한다.
2024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수필 부문 선정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