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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에 입대를 했다. 공군으로 간 친구들도 있었고 카추사 입대를 준비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는 최대한 빨리 그리고 짧게 군대를 다녀오고 싶어 육군으로 입대했다. 군대는 나를 점점 압박해오는 인생의 숙제와도 같았다. 대학교 신입생 시절 친구들과 즐겁게 놀다가도 '군대'라는 두 글자만 들으면 우울함과 압박감이 나를 덮쳤다. 나는 빨리 군대라는 숙제를 해치우고 싶었다.
좀 편한 후방으로 빠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와는 달리 최전방으로 배치받았고, 그곳은 나의 상상과는 많이 달랐다. 그동안 알고 지냈던 친구들, 대학교 때 만났던 형 같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용인대 유도학과, 태권도학과처럼 운동 꽤나 하는 사람들, 목포에서 건달 하던 사람, 나이트 웨이터를 하다 온 사람 등등. 과연 이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임들은 욕 한 마디 제대로 못하는 내가 군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카리스마 없는 나였기에 나중에 후임들이 기어오를 것이라 걱정했었고 그 얘기가 듣기 싫어서 더 후임들의 군기를 잡았다. 후임들이 조금이라도 군기가 풀어지는 모습이 보이면 호되게 혼내고 선임들에게 '저 이렇게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트집을 잡아서 후임들에게 큰 소리를 치기도 했다. 선임들은 착한 줄만 알았던 내가 입에 욕을 달고 살고 큰 소리를 치는 걸 보면서 흡족해하는 것 같았다. 1년 정도 지나자 대부분의 선임들이 나를 예뻐했다.
하지만 나는 점점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 문득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는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나에게 변화를 준 건 평소에 얌전하기만 하던 선임의 한 마디였다.
"그렇게 욕하고 큰소리치는 게 리더십이라고 생각하지 마. 너 나중에 회사 가서도 그렇게 욕하고 큰 소리만 칠 거야? 결국에는 여기서 배운 대로 행동하게 되어 있어."
선임의 이 한 마디가 나를 일깨워 주었고, 원래의 나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물론 변한 내 모습을 보고 다른 선임들은 질색했다. "너 인기 얻으려고 군생활하냐?" , "애들은 무조건 갈궈야 말을 잘 들어." , "너 나중에 애들이 기어오른다." 등등. 한 선임은 예전처럼 애들 군기를 확실히 잡으면 내무반 청소 같은 허드렛일에서 손 떼게 해 주겠다는 아주 솔깃한 제안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제안을 거절했고 결국 그 선임은 본인이 제대하기 전날까지 나를 갈궜다. 하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후임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수첩에 적어놓고, 어쩔 수 없이 혼낸 날에는 따로 불러내 간식을 사주며 잘하고 있으니 주눅 들지 말라고 얘기를 해주었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니 나를 무서워하고 피하던 후임들도 마음을 열었다. 말 안 듣던 후임들도 내가 훈련 때 교범 한 페이지라도 더 외우고 더 열심히 뛰는 걸 보고, 따라서 열심히 해주었다. 나는 이렇게 내 방식대로 군생활을 마무리했다.
군대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몇몇 사람들은 나의 성격을 바꾸려 했다. 누군가는 내가 싸움닭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했고, 누군가는 내가 조조 같은 교활한 스타일이 되기를 원했다. 그리고 내가 바뀌지 않으면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아."라면서 나를 폄하했다. 만약 그때마다 그 사람들의 요구대로 성격을 바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계속 성격을 바꾸다가 나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혹시 너무나 다른 환경 속에서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휩쓸리지 말고 본인의 방식대로 나아가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결국 수많은 군대 선임도 직장상사도 그저 내 인생을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본인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