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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 이번 주에 얼굴 한 번 보자.”
퇴사한 지 반년 정도 된 선배가 연락을 했다. 얼마 전에도 약속을 잡았다가 갑자기 몸이 안 좋아서 취소한 적이 있었기에 또다시 미루기 곤란한 상황이었다.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다이어리에 표시를 해두었다.
생각해 보니 누군가와 단둘이 약속을 정하고 만나는 게 정말 오랜만이었다. 동창 모임이나 여럿이 모이는 모임은 종종 있지만 이렇게 단둘이 만나는 약속은 거의 없었다. ‘다른 친한 사람도 많은데 왜 굳이 단둘이 보려고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이렇게 각별한 사이였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몸이 불편한 상태라 집에서 쉬고 싶기도 했지만 예전에 회사 다닐 때 고민 상담도 해주던 고마운 선배였기에 약속 장소로 나갔다. 식사 분위기는 괜찮았다. 선배가 이직한 새로운 회사 얘기도 하고, 예전에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추억하기도 했다. 저녁을 먹고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고 대부분의 직장인들처럼 자연스럽게 재테크 얘기가 나왔다. 선배는 회사 일 뿐만 아니라 재테크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얘기해줬다. 잠시 후 멋쩍은 미소와 함께 가방에서 서류 하나를 꺼냈고, 서류에는 낯익은 로고가 적혀 있었다.
‘AmwOO’
선배는 “사실 오늘 만나자고 한 건 이것 때문이었어.”라고 얘기했다. 순간 머리가 뭔가에 한 대 맞은 것처럼 띵 했다. 내 표정을 읽은 건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선배는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 뒤에 설명은 누구나 예상하는 것처럼 뻔했다. 회사 월급으로만 노후를 준비하긴 어렵다는 점, 다단계라고 안 좋은 인식을 갖지 말고 한 번 참여해 보라는 것,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안정된 수익이 들어온다는 것 등등.
예전에 선배와 나의 사이는 매우 좋았다. 10년 이상 알고 지낸 사이 이기도 하고 내가 힘들 때마다 항상 조언을 해주고 내 커리어에도 늘 관심을 가져주던 선배였다. 하지만 선배의 다단계 제안으로 인해 갑자기 지난 십 년간 의 좋았던 기억들이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 선배가 나에게 베풀었던 호의가 결국 이런 목적 때문이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나는 선배의 제안에 단호하게 거절했다. 선배도 나의 단호한 대답을 듣고 설득할 자신이 없었는지 멋쩍게 서류를 다시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우린 어색하게 남은 커피를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어느 정도는 필요에 의해서 만나는 회사에서의 인간관계라고 하지만 상대방의 목적을 알고 나니 갑자기 인간관계의 덧없음이 느껴졌다.
또 한편으로는 그 선배의 다단계 제안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그 선배에게 등을 돌릴걸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 선배가 지금까지 다단계로 얼마를 벌었는지 앞으로 얼마를 벌게 될지는 모르지만, 기존의 인맥들을 하나둘씩 소비해 나가고 그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나게 될 것이다. 그 선배에게 나란 사람은 어떤 존재였을까? 이렇게 다단계 제안으로 인맥이 끊어져도 아쉽지 않은 사람인 걸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유독 멀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