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프리웨이를 탄다는 것은 나 같은 초보 운전자에겐 너무나 힘든 일이다. 한국에서도 주로 동네에서만 살살 다녔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주행해야 하는 고속도로는 겁이 많이 났었다. 이곳에 오자마자 면허는 바로 땄지만,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 익숙하지 않은 동네와 낯선 분위기 때문에, 또 혹시나 길을 잘못 들어 고속도로로 진입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프리웨이는 정말 복잡하다. 거미줄처럼 4~5개의 프리웨이가 서로 교차하고 있어 까딱하다 잘못 들어서면 금방 방향을 잃게 된다. 게다가 정말 차들이 쌩쌩 달린다. 먼 거리를 갈 때는 남편이 운전하지만, 옆에 앉아 있는 나도 긴장을 하게 될 정도로 험하게 운전하는 사람들이 많다. LA에 갈 때 복잡하게 얽힌 도로와 거리의 홈리스들, 한국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차들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낯선 곳이 주는 두려움까지 더해져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프리웨이는 평생 못 타겠어.’라고 외쳤다.
아들이 캠프를 하는 곳이 집에서 10분 거리다. 처음 가는 길이라 미리 구글맵에서 가는 길을 여러 번 확인했다. 일반 도로로 가면 15분, 고속도로를 타면 10분 거리이다. 아들의 친구까지 함께 태우고 가야 해서 더 조심스러웠다. 나는 조금 멀리 돌아가도 프리웨이가 아닌 안전한 길로 가기로 했다. 생각보다 더 멀게 느껴졌지만 무사히 도착하고 아이들을 들여보냈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출발하기 전 구글맵을 켰다.
‘혼자 가는 길이니, 이번엔 프리웨이를 타볼까?’
나는 구글맵에서 다시 고속도로 경로로 설정하여 가는 길을 확인했다. 평소에는 아예 고속도로 경로를 제외시켜 놓았기때문에 일반 도로만 알려준다. 길도 어렵지않고 10분이면 집에 도착한다니 왠지 자신감이 생겼다. 내비게이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천천히 출발했다. 뒤에 바짝 따라오는 차가 신경이 쓰여 나도 모르게 속도를 좀 올렸더니 오른쪽 커브 길을 돌 때 차가 휘청거렸다. 속도를 줄여야 하는데 바로 프리웨이로 진입하는 길이었다. 예상대로 차들이 엄청난 속도로 쌩쌩 달렸다. 나도 모르게 운전대를 꽉 잡았다. 옆에서 끼어드는 차들이 신경이 쓰였다. 차선을 바꾸려고 해도 자신이 없었다. 뒤에서 따라오는 차들은 나보고 더 빨리 달리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내비게이션은 1.5마일 후 오른쪽 101번 도로로 진입하라고 알려줬고 나는 조금 더 직진하다가 오른쪽으로 빠지는 길이 나왔길래 바로 우회전을 했다. 앗. 잘못된 길이었다.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가 생각났다. 집 근처 마트를 간다는 게 계속 직진하다가 샌디에이고 프리웨이를 타 버린 것이다. 남편이 운전하고 있었지만 나도 당황해서 덜덜 떨었다. 깜깜한 저녁이었고 처음 타보는 길이라 긴장이 되었다.퇴근 시간이라 차들은 많았고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차들 때문에 머리가 아찔했다. 갑자기 핸드폰에 연결된 구글맵이 작동을 멈춰 정말 머리가 더 하얘졌다. 뒷좌석에 탄 아이들도 불안해하며 ‘여기가 어디냐고’ 계속 물어보았다. 결국 신경이 곤두선 남편과 나는 프리웨이 길을 달리며 대판 싸웠고 우리의 첫 프리웨이의 추억은 분노와 공포의 기억밖에 없다. 다행히 우회도로가 있어 계속 샌디에고로 가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콩닥거리고 두 손은 운전대를 꽉 움켜쥐고 의자에 기댔던 등을 꼿꼿이 세웠다.
‘정신만 잘 차리면 돼. 빠져나가는 길이 있겠지.’
꼬불꼬불한 길 위를 달리며 내비게이션은 다시 집으로 가는 경로를 가르쳐주었다. 잘못된 길로 들어섰지만 어쨌든 다시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조금 더 돌아갈 뿐이었다.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라는 안도감, 이제 조금만 있으면 집에 도착할 거라는 생각에 긴장이 풀렸다. 그제서야 앞에 있는 표지판의 이름이, 옆에서 달리고 있는 차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슴이 후련해졌다. 나는 다른 차들과 비슷한 속도로 프리웨이를 달리고 있었다.
‘나도 이제 프리웨이 탈 수 있는 여자야.’
누군가는 미국 와서 처음 프리웨이를 탈 때 죽을 각오를 하고 운전했다는데. 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조금 자신감을 얻었다. 침착하고 안전하게 운전하면 어디든지 갈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잘못된 길로 들어섰을 때 다시 빠져나오는 길이 있다는 것도. 매번 고속도로를 타지 않고 먼 거리로 돌아가는 나에게 오늘은 내 운전 경력에 도전장을 내미는 날이었다. 물론 그동안 운전하면서 사고 없이 안전하게 다닌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만 이제는 용기를 내 프리웨이로 달리는 길을 선택하고 싶다. 조금 낯설고 두려운 길이라도 ‘할수 있어’라는 마음으로.
프리웨이를 타기로 마음먹었으면 일단 그 길을 선택해야 한다. 구글맵에 고속도로 경로를 추가해야만 한다. 일단 프리웨이에 올라 섰으면 망설이지않고 직진이다. 적당한 속도를 유지하며 목적지까지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옆에 있는 차가 내 차를 추월해 쌩 달려도 나의 페이스는 흔들리면 안된다.그럴수록 더 침착하게 운전대를 잡고 나의 길을 응시해야 한다. 프리웨이를 탄 것을 후회하는 순간도 있겠지만 너무 자주 멈칫하면 안된다. 길을 잘못 들어서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멈춰 있지만 않으면 다시 새로운 경로로 설정이 되니까. 내가 정한 목적지로 향하는 길은 여러 가지이다. 가장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하면 제일 좋겠지만 조금 돌아간다고 포기하거나 실망하지 않아야 한다. 인생의 방향은 예측할 수가 없지만 내가 마음먹은 곳을 향해 일단 들어가 보는 것이 중요하다. 계속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결국엔 내가 바라는 곳에 도착할 테니까 말이다.
아직은 프리웨이타고 갈 수 있는 곳이 마트일지라도 내일은 더 먼 곳을 꿈꾼다. 아마도 그랜드캐니언이나 옐로스톤이 아닐까.
어쨌든 난 프리웨이 타는 여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