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말고 성장기
“이 책은 향으로 기억될 거 같아.”
여주로 가는 차 안에서 우리는 향에 대해 말했다. 오렌지향, 사이프러스 향, 레몬향... 어떤 향일까 상상하며 읽었다. 이탈리아의 소도시 피에트라달바는 어떤 동네 일까도.
인문학 살롱 9월의 책은 <그녀를 지키다>였다. 이번 모임은 같은 동네에 살다가 여주로 이사 간 민경이네 집에서 했다. 전날 새벽까지 읽고 자느라 눈이 뻑뻑했지만, 책모임 친구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기대된다. 아침 9시 아파트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사고 인혜가 운전하는 차로 한 시간 동안 수다를 떨며 갔다. 조용한 동네에 들어서자 마중 나온 민경이가 손을 흔들고 있다. 동네 도서관 1호 책모임인 인문학 살롱은 꾸준히 한 달에 한번 좋은 책을 읽고 만난다. 살던 동네를 떠나고, 각자의 상황 때문에 건너뛰는 달도 있지만 몇 년 동안 우리는 책으로 이어져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모임을 시작하기 전 유진님이 가져온 꽃다발을 내밀었다. 내 생일 꽃이기도 하고, 민경이를 위한 꽃이기도 한. 모임 때마다 꽃으로 기억되는 그녀. 나를 위한 꽃은 겹백합이었다. 아직 꽃이 만발하지는 않았지만 은은한 백합향이 소설 속 향기와 겹쳐졌다. 초록 유칼립투스 잎사귀에선 상쾌한 향기가 났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의 소설 <그녀를 지키다>는 미모와 비올라가 세상의 규칙과 한계를 넘어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왜소증을 가진 조각가 미모는 세상의 조롱과 편견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며, 귀족 가문의 딸 비올라는 사회가 허락하지 않은 자유를 향해 나아간다. 그녀는 책을 읽을 수 없고, 사랑을 선택할 수 없으며, 여성으로서의 삶마저 통제당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결핍을 통해 연대한다. 두 사람은 한계를 극복하고자 서로의 꿈을 지지하는 동반자가 된다.
트라몬타나, 시로코, 리베치오, 포넨테, 미스트랄. 이탈리아에서 부는 바람의 이름이다.
그냥 “바람이 부네”라고 말하는 미모에게 비올라는 이렇게 말한다. “말에는 의미가 있어. 미모. 명칭을 불러 주는 건 그걸 이해한다는 거야. <바람이 부네>, 그건 아무 의미도 없다고.”
향에도 각기 다른 이름이 있듯이, 바람의 이름도 다양한 명칭이 있다는 걸 미모는 알게 된다. 바람에도 각기 다른 모양과 향이 있다는 것을. 보이지는 않지만 바람은 물결을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의 머릿결을 살랑이고 옷깃을 흔든다. 바다의 내음을 실어오고 숲의 향기를 몰고 온다. 그냥 바람이 아니라, 고유한 색을 드러내는 존재처럼.
어릴 적 살았던 아파트 뒤에는 매봉산이 있었다. 작은 쪽문을 들어서면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 약수터까지 오르는 사람이 많았다. 친구들과 주말이면 정상까지 올라 한참을 놀다가 쉬엄쉬엄 내려온 적이 있다. 초등학생인 나에게도 어렵지 않을 정도의 정상이었다. 그래도 가장 높이까지 올랐다는 뿌듯한 마음에 가만히 서서 저 아래 동네의 모습을 바라보고는 했다. 탁 트인 시야 아래의 동네는 생각보다 작아 보였다. 여름이 시작될 때엔 아카시아 나무에서 진한 향기가 코끝을 찔렀다. 포도송이처럼 하얀 꽃이 송이송이 늘어져 보기만 해도 탐스러웠다. 손으로 하나를 똑 따서 입에 가져다 대고 혀끝으로 달달한 맛을 음미했다. 나에게 매봉산 정상에서의 추억은 아카시아 향기와 함께 떠오른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 호만천길을 따라 산책하는 날이면 어디선가 꽃내음이 바람에 따라 실려온다. 그럴 때면 바람은 살아있는 생명처럼 느껴진다. 바람에도 이름이 있다면, 내가 느끼는 이 바람은 어떤 이름일까. 트라몬타나, 시로코도 아닌, 아마도 나만이 부를 수 있는 바람, 나를 향해 불어오는 바람일 것이다.
둘째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 우산을 쓰고 걸으면서 나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엄마, 비랑 바람 중에 뭐가 더 힘이 센 줄 알아?”
잠깐 고민하는 나에게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바람이 더 세. 비는 보이지만 바람은 안 보이잖아. 그런데 다 날려버리니깐.” 보이지 않지만 무언가 느끼기 시작한 아들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러네, 우산이 다 날아가겠다. 바람 때문에.”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 향처럼, 마음처럼. 어쩌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안에 새겨진 기억과 마음은 계속 남아있으니까.
때로는 ‘나’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 방황한 적이 있다. 나라는 사람은 도대체 왜 이 모양이냐고. 이 나이 되도록 대체 뭐 하며 산 거냐고. 그때의 나는 잘 나가는 누군가의 SNS를 보며, 잘살고 있는 친구와 비교하며 마음을 소진시키며 살았다. 도무지 내가 가진 건 보이지 않으니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지금은 안다.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들이 내 삶을 지탱해 왔다는 걸.
그날 우리는 탁자 위에 꽃과 커피, 책을 놓고 문장을 낭독하며 이야기했다. 책 이야기를 하면 마음속에 감춰두었던 말도 피어오른다. 책에는 묘한 힘이 있다. 과거의 추억을 소환하며 현재에 머물고 다시 미래로 떠나는 여행을 한다. 햇볕을 쬐면 뽀송하게 살아나는 마당 빨랫줄에 걸린 이불처럼 무거웠던 마음이 살아났다.
리베카 솔닛은 <멀고도 가까운>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글을 쓰면서 내 이야기를 전한다. 읽고 쓰면서 나를 알아간다. 쓰지 않으면 뿌옇게 바래질 기억과 생각을 한 글자, 한 글자 새기며 만들어간다. 나를 찾아가는 일은 단번에 완성되는 일이 아니다.
나를 안다는 건 내가 가진 것에 이름을 붙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바람에도, 향에도 이름이 있듯, 우리에게도 각자의 이름이 있으니까. 세상이 지어준 이름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이름 말이다.
나답게 산다는 건 내 안의 향기를 알아차리고 내 마음을 스쳐 가는 바람의 이름을 불러 주는 일이다.
언젠가 나는 고유한 향을 가진 나만의 세계를 가질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온전히 나답게 서 있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그 길 위에 있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