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을 왜 세 번 하나요

갱년기 말고 성장기

by 에세이가주

절을 왜 세 번 하나요


108배를 하고 나니 다리를 후들거렸다. 한여름 선풍기 한 대만 돌아가는 법당에 앉아 눈을 감았다. 열어 놓은 문으로 후덥지근한 바람이 들어왔다.

동네에 있는 작은 절에 갔다. 기도하는 사람은 친구와 나 둘뿐. 오랜만의 108배다. 땀이 삐질 나고 허벅지가 땅겼지만 끝까지 했다. 절을 다하니 친구가 잠깐 앉아서 명상하자고 한다. 그 자리에서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짧은 시간 생각을 비우려고 했지만 여러 가지 잡념들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생각을 버리고, 버리고. 목덜미가 축축해져 손으로 연신 땀을 닦았다. 계단을 내려오는 길 “우리 108배 모임 만들까?” 내가 말했다.

봉선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어린이 법회를 검색했다. 가끔 들어가 템플 스테이 공지도 보고, 문화강좌 모집도 살펴봤었다. 월요일마다 하는 차 수업에 등록할까, 사찰음식 과정을 배워볼까만 생각했다. 어린이 법회가 일요일 10시에 시작한다고 했다. 담당 보살님께 전화를 걸어 확인하고 아들에게 말했다. 내일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절에 갈 거라고. 시큰둥했다. 그럼 늦잠도 못 자는 거냐고 대꾸한다. 토요일 늘어지게 자라고 말했다. 핸드폰 없앤 지 두 달 넘었다. 키즈폰인데도 아침에 일어나면 핸드폰부터 찾았다. 메시지를 확인해야 한다나? 학교 가면서도 손에 쥐고 엘리베이터 앞에서도 머리 숙이고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시간을 정해두고 사용하게 해도 집에 돌아오면 게임앱부터 켰다. 종일 영상과 게임, 메시지를 확인하느라 머리가 쉴 틈이 없었다. 이렇게 지내다간 아무 생각하지 않는 어른이 될 것 같았다. 생각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고, 생각이 없는 것도 문제지. 아들에게도 고요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핸드폰으로 빨려 가는 시간이 아니라 절에서 명상하며 스님 말씀 듣는 조용한 순간이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되기를 바랐다.



절 안으로 들어가 어린이 법당을 찾았다. 문 앞에 앉아있던 보살님과 인사하고 안으로 들여보냈다. 대법당엔 스님이 법문 중이셨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방석을 깔고 절을 세 번 했다. 초심자를 위한 법회였다. “새로 오신 분 앞으로 나오세요.” 많은 사람이 앞으로 나가길래 나도 나갔다. 간단하게 소개하고 스님과 악수했다. 염주 선물 받았다. 검은색 염주를 손목에 차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왜 절을 세 번 하나요?” 질문 시간에 어느 남자분이 말했다. 나는 생각을 많이 안 했어요.라고 시작한 스님 말씀이 좋아서 그대로 남겨본다.


“절에 있으면 출가하려는 사람들이 들어와요. 그래서 상담하고, 출가시키려고 말을 하다 보면 대부분이 너무 고민을 많이 해. 출가해야 할지, 안 해야 할지를. 그러다가 두 달, 세 달 지나면 다시 나가. 생각이 많으면 그렇게 되더라고. 나는 출가했을 때 고민을 안 했어. 생각을 안 했어. 그래서 지금까지 십 년 넘게 그냥 절에 있는 거 같아. 절을 하라면 하고,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면 일어나고. 그렇게 그냥 살았지. 절을 왜 세 번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못 했어요.” 보살님들이 또 어려운 질문 할까 봐 두렵다고 말하는 스님의 말에 모두가 웃었다. 나도 그동안 절 다니면서 절을 왜 세 번 할까 생각 못 했다. 스님과 내가 다른 점은 생각을 안 했으면서도 꾸준히 절에 오지 못한 것뿐.


결혼하고 절에 가기 시작했다. 불교 믿는 시댁이라 불교 대학을 다닌 적이 있다. 매주 두 번, 오전 시간 친정 엄마께 아이를 맡기고 간 불교 대학은 나이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공부했다. 법륜 스님은 고민은 생각이 많아서 생기는 게 아니라, 생각에 끌려가기 때문에 생긴다고 했다. 생각을 흘려보내는 연습, 그게 수행이라는 말이 마음에 남는다. 내 머리로 온갖 ‘상’을 만들면 집착하고 힘들어진다고. 결혼 전 나는 교회도 다니고, 성당도 다녔다. 믿음의 형태는 달라졌지만, 기도하고 싶은 마음은 늘 같았다. 마음이 편안 해지길 기를, 앞으로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마음으로 기도했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고 ‘나이롱 신자’라고 했다. 나이롱 신자면 뭐 어때. 교회에 가든, 절에 가든 믿는다는 건 내 마음을 원래의 자리로 돌리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때 타고 너덜 해진 마음을 보송보송하게 다시 바꾸려면 고요한 기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텅 비어있는 마음의 상태, 번잡한 생각으로부터 거리 두기가 필요할 때마다 절로 달려갔다.


작년부터 금강경을 읽고 있다. 읽다 말다 하루 한 장도 읽고 여러 장도 읽고. 내 맘대로 불경 읽기였다. 법륜 스님이 해설하신 빨강 표지의 금강경 책은 한 문장 한 문장이 주옥같았다. 한 번을 꼼꼼히 보고, 두 번째 읽기 시작할 때 그 의미가 더 마음에 닿았다. 내가 가진 고정관념과 집착인 '상'을 내려놓으라는 의미였다. 맞아. 그 상을 지음으로 화도 나고, 속상하기도 하고, 마음이 편하지 못한 거지. 생각하면서도 그 '상'을 버린다는 게 쉽지 않았다.


‘생각을 많이 안 했어.’ 스님의 말은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생각, 갈팡질팡하는 마음, 부정적인 마음을 흘려버리라는 의미였다. 일단 시작했으면 뒤돌아보지 말라고, 그냥 오늘을 살라고. 생각을 비운다는 건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들 때, 내 마음을 원래의 모습을 되돌리는 거다. 내가 절에 가는 이유는 내 모습을 찾기 위해서였다. 욱 하는 마음을 버리도록, 평온해지도록, 나에게 화풀이하지 않도록. 머릿속에 생각이 꽉 차면 주저하게 된다. 오늘 할 일도 제대로 못 하고, 마음만 무겁다. 그러니 털어버리고 생각을 비우라고. 그냥 오늘을 살라고. 혼자 조용히 불경을 독송하거나 절을 하면 잠깐이라도 텅 비어있는 상태가 되었다. 스님이 말씀하신 고민과 생각은 번뇌다. 우리를 주저앉게 하는 고민과 생각. 생각만 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그냥 오늘을 사는 사람이 낫다.


봉선사 여름 어린이 캠프 공지가 떴다. 2박 3일 절에서 명상도 하고, 물놀이도 하고, 사찰 음식 체험도 한다. 아들에게 물어보니 대번에 “안가” 한다. 뭐 그런 게 어딨어. 그냥 하면 하는 거지.

2박 3일 프로그램 보니 일정이 빡빡하다. 새벽에 일어나 법문도 듣고, 명상도 하고, 염주도 꿰면서 54배 절도하고. 내가 바랐던 시간이었네.


머릿속이 복잡할 땐, 마음을 쓸어내릴 시간이 필요하다.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염주 하나하나를 꿰듯 하루를 다시 꿰어보는 시간. 계속 생각만 하다 보면 아무것도 못 하고 한 주가 훌쩍 지나간다. 이 길이 맞나 틀리나 고민하는 대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에 마음을 둔다. 그냥 지금을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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