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려는 사람은, 지나온 길을 돌아봐야 한다.

그 목동키즈는 어떻게 되었을까?

by 귤껍질


“한 사람의 삶의 여정을 듣는 게 어떤 도움이 될까?”

“내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유의미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 고민하다가 그냥 지금과는 전혀 다른 타인이 되어 있을, 먼 미래의 나를 위해 쓰기로 했다. 이미 확보된 독자 한 명-나 자신-과 이 글을 읽어줄 감사한 분들을 위해서 내 삶을 기록해 보는 것도 꽤나 재밌는 일 같았다.


실용적이지는 않아도, 적어도 이 글을 읽으면 나를 이해할 수밖에 없을 테다, 그리고 이해하는 만큼 애정하게 될 거다. 지나간 시간들을 통해 스스로를 이해하고 애정하게 되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마침 또 앞의 시간을 정리하고 나아가는 방법 중 글쓰기 만한 게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른이 되기 전 의도적으로 앞선 시간들을 정리해 보고 싶었다.


게다가 9년간 떠났던 목동에 다시 돌아왔고, 그리고 조만간 이곳을 완전히 떠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부모님의 집이므로, 두 분의 의사결정에 맡겨야 하는 부분이다.) 이곳에서의 시간과 이 동네에 대한 작별 편지처럼, 써보기로 했다.




나무, 학원, 자전거. 목동은 나에게 몇 가지 단어로 정리된다.


나무 목 자를 써서 목동이라고 한다. 이름에 어울리게 단지 사이 난 길들에는 커다란 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중간중간에 나무 벤치들이 놓여 있어서, 다른 동네보다 앉아서 쉴 곳이 많다. 놀이터에서 노는 우리를 기다리며, 엄마와 친구 엄마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이 떠오른다.


놀이터 입구와 단지 주변에 나무들이 큰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계절마다 송충이, 너도밤나무 열매와 은행, 낙옆이 잔뜩 떨어졌다. 바쁘게 이동하면서도 요리조리 피해 걸었다. 그래도 학원을 오갈 때 적당한 그늘을 만들어줘서, 나무가 우거진 쪽으로 걸어 다니기도 했다.


요즘에는 나무 기둥에 ‘축 재건축’ 같은 포스터가 묶여 있다. 아주 깊게 뿌리내리고, 4층 정도 높이까지 뻗은 나무들은 슬프게도 재건축 과정에서 베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 번 엄청난 태풍이 왔을 때, 커다란 나무들이 부러지고 쓰러졌다. 그 나무들은 어떻게 되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학원을 오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목동의 대표적인 풍경이다. 11시, 12시 혹은 그보다 늦은 시간에도 학원이나 독서실에서 공부를 마치고 오는 학생들이 있었다. 고요한데 안전한 저녁길은 대부분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고민을 끊어내주고, 기분 좋은 사색에 잠기게 했다.


걸어서 등하교할 수 있었던 갈산 초등학교, 목일 중학교와 달리 멀리 있는 명덕외국어 고등학교에서도, 학원을 가기 위해 양천구청역으로 오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 아이들에게 양천구청역은 학원 가는 길로, 목동이라는 지역은 몇몇 학원 건물들로 인식되는 듯 했다.


문화센터 옆 20층 높이의 건물에 정상어학원 같은(당시에는 친구들이 제일 많이 다녔다.) 대형 학원들이 특히 많았다. 밤이 되면 아이들이 우르르 내려오고, 노란 학원 버스가 그들을 태워갔다.


큰 학원들은 합격생 수로 광고하고, 작은 학원은 섬세한 관리로 승부를 봤다. 동생은 큰 학원이 싫다며, 자신이 학원을 돌리기 위한 부품같이 느껴진다고 했다. 나도 동네 학원에서 가끔 야식으로 피자를 주문해주고,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관리해주는 걸 좋아했다.




지금도 단지 앞에 자전거가 가득 주차되어 있고,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을 수 있는 공용 펌프가 있다. 내가 기억하던 바로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던 펌프를 발견했을 때의 반가운 기분이 생생하다.


어릴 때에 자전거를 여러 번 도둑맞기도 했었다. 아무리 튼튼한 자물쇠도 끊어버리고 가져가거나, 혹은 통째로 들고 가기도 했다. 두 어 번 자전거를 잃어버리고 망연자실 했다. 독서실이나 학원 앞에 주차하고, 혹시 훔쳐갈까 봐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떠오른다.


주말에는 가끔 아빠와 안양천을 따라 한강까지 자전거를 탔다. 한강이 나오면 그 앞에 앉아서 빵과 우유를 먹었다. 종종 날벌레가 얼굴에 부딫히고, 한강에 도착할 때쯤에는 허벅지와 종아리가 매우 아팠다. 그럼에도 그 바람과 공기가 가끔 생각난다.


자주 지각을 하는 나와 함께 등교하기 위해, 자전거를 끌고 와서 뒷자리에 나를 태우고 갔던 친구도 있었다. (뒷자리에 앉아서 바람을 맞으며, 등교 중인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며 앞서 갔다. 친구는 내 무게를 감당하느라 고생이었지만, 나는 정말 재밌었다.)




10여 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여름 매미 소리에 아침잠을 깬다. 내가 사용한 것과 같은 잠자리채와 채집망을 들고, 우거진 나무 사이를 오가며 매미를 잡는 아이들도 보인다.


아파트 앞에는 지금도 자전거들이 줄줄이 서 있고, 건널목에 단지가 바뀌는 지점에는 자전거 주차 공간과 바람을 넣을 수 있는 펌프가 있다. 저녁 산책길에는 노란 학원버스들이 줄지어 아이들을 데려간다.


큰 걱정도 이벤트도 없는 작은 마을 같은 곳. 이전에는 섬 같아 답답했는데, 이제는 나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긴 안식처를 찾아 돌아온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