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스텔라 May 01. 2024

단발머리 곱게 빗은 그 사람

누구나 자신만의 취향과 이상형이 있다.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는 취향도 있지만 남몰래 뒤에 숨어서 좋아하는 경우도 많다. 나는 내 취향을 드러냄에 있어 한 점 부끄럼이 없지만 듣는 사람들이 너무 놀라곤 해서 굳이 내가 먼저 말하지 않는 취향이 있다.

바로 ‘단발머리 남자’.


 그렇다. 나는 단발머리 남자가 좋다. 그것도 펌을 했거나 층을 낸 단발머리 말고 정말 똑 떨어지는 일명 ‘칼단발’이 좋다. 아쉽게도 현실에서는 단발머리가 잘 어울리는 남자는 쉽게 보기가 힘들다. 그래서 보통 연예인이나 애니메이션의 등장인물들이 나의 로망을 실현해주고 있다.



 ‘덕질불패’ 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나는 가수 신화를 좋아한다. 신화를 좋아하게 된 계기도 바로 데뷔곡에서 리더였던 에릭이 내가 좋아하던 단발머리였기 때문이다. 왜 갑자기 신화를 좋아하게 됐냐는 질문에 “단발머리가 너무 멋있어서!”라고 답하면 친구들은 기겁을 하고 쳐다보곤 했다.

파릇파릇했던 그 시절 에릭

 사실 나의 단발머리 취향은 에릭 이전에 애니메이션을 통해 완성되었다. 유명한 농구만화인 ‘슬램덩크’에도 단발머리 등장인물이 나온다. 바로 개과천선하기 전의 정대만인데, 나의 최애 캐릭터였던 그는 정신을 차림과 동시에 머리를 자르는 바람에 내가 슬램덩크를 완결까지 보지 못한 데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내용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정대만이 나올 때마다 그의 짧은 머리가 아쉬웠던 나는 결국 완독을 포기하고 말았다.  

치아가 완전한 단발 정대만 사진은 구하기가 어렵다ㅜㅜ


 ‘슬레이어즈’란 애니메이션에도 ‘제로스’라고 하는 단발머리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나는 주인공인 리나의 활약보다도 그를 보기 위해 본방을 사수하곤 했다. 준주연급이라 가끔씩 제로스가 안 나오는 회차도 있었는데 그러면 어딘가 허전하고 봐도 본 것 같지 않았다.

웃고있는 제로스. 눈떠도 멋있지만 이왕이면 웃상


 영화에도 있다. 헤어스타일이 너무나 찰떡이라 좋아한 캐릭터는 바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윌리 웡카’이다. 로얄드 달의 원작소설도, 팀버튼도, 조니뎁도 모두 좋아하는 나는 이미 이 셋의 조합만으로도 넘치게 기대하고 있던 차에 영화 포스터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버렸다. 하얀 얼굴에 약간 컬이 진 단발머리의 조니뎁은 윌리웡카보다 더 윌리웡카 같았다. 어쩌면 이렇게 단발머리가 완벽하게 어울린단 말인가! 이 헤어스타일이 제일 잘 어울리지만 다른 단발머리들도 다 잘 어울리는 조니뎁은 어쩌면 단발머리를 하기 위해 태어난 건지도 모른다.

역시나 멋진 조니뎁♡


이렇게 단발머리 남자들을 좋아하지만 일반적인 남자들 중에서는 단발 헤어스타일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실제로 내 주위에 있었던 단 한 명의 단발머리 남자는 예전 남자친구의 친구였다. 인디밴드에서 기타를 치던 그 오빠는 모름지기 음악 하는 사람이라면 머리를 길러야 한다는 철칙이 있던 사람이었다. 게다가 머릿결도 엄청 좋고 찰랑이던 단발머리였던지라 나는 대놓고 “오빠 말고 오빠의 머리카락이 너무 좋아요!”라고 얘기했을 정도였다. 그 오빠(의 머리)를 보러 홍대 롤링스톤즈에 출퇴근 도장까지 찍었었건만, 정작 그의 헤어스타일을 혐오한 여자친구 때문에 몇 달 지나지 않아 짧은 스포츠컷으로 잘라버리고 말았다. 누구에게나 펌한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던 악성곱슬머리의 남자친구는 본인이 단발머리를 할 수 없기에 늘 친구를 경계하고 질투하던 터라, 그 오빠가 머리를 자를 때 신나서 구경까지 갔다. 미용실 의자에 앉아서도 자르기 싫다고 계속 주저하다 가위가 머리카락에 닿는 순간 눈물까지 보인 그 오빠는 남자친구에 의해 동영상으로 박제되어 친구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놀림을 받았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금세 여자친구에게 차였다는 점이다. 애초에 헤어스타일이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 ‘단발병 퇴치자’로 이름 높은 모 개그맨의 헤어스타일이 정작 내가 좋아하는 칼단발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개그맨을 좋아하지 않는 걸로 봐선 그냥 단순히 ‘잘생긴 단발머리 헤어스타일을 가진 남자’를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난 여전히 단발머리 남자가 좋다.  

작가의 이전글 자립여행기(自立旅行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